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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러브 앤 썬더(Thor : Love and Thunder, 2022)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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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파워레인저의 향기. 이것은 그러했다.

0. 들어가며

 

4 / 10 

 

적절한 은퇴 시기를 놓친 신의 황혼 육아 시작 스토리

 

비가 오기 직전의 저녁이었다. 

일기예보에는 뇌우. 그렇다면 썬더. 썬더 하면 이매진 드래곤. 아니, 레드 제플린의 이미그런트 송인가?

그런 마음으로 영화 현황을 뒤적이다가, 토르가 그 날 개봉했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비도 오고 어딘가 마음이 꿀꿀한데, 토르라고? 토르 3정도의 팝콘 무비 정점을 다시 발견할 수 있나? 이 온갖 호기심 및 궁금증과 함께, 토르 3의 토르가 들고 있었을 법한 장우산을 팔에 끼고 길에 나섰다.

 

도착한 그 방주에는 쉽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영화관에 한껏 모여 자신의 다리길이를 자랑하듯 앞좌석에 다리를 걸치는 잼민이들, 웅성웅성. 비가 오려나 해서 8시 반에 영화를 예약한게 패착이었던 것인가.

그리곤 깨달았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고, 이 영화는 내가 찾던 영화가 아니었으며, 이 영화의 관람 시점은 내가 필요로 하던 그 시점이 아니었음을.

영화 상영이 끝나자, 기적같이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는 다시 깨달았다.

인생은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진다. 기대하지 말 것. 이건 그 어느 순간, 어느 상태건 최우선 되야할 생활 규칙이구나.

 

짧게 기록 남겨본다.

 

 

1. 산만한 진행과 예산 절감의 냄새

보통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더 담아내려 했나 고민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걸 찾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작게는 정신 없는 씬과 이야기 전환. 크게는 어라 이게 맞나 싶은 허전함이 있다고 해야하나.

 

전체적인 서사는 댄 브라운의 몇몇 저서를 읽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갑작스러운 고난과 사랑? 아니다. 2~3명의 주된 인물과 각각의 서사, 화면 구성을 짧게 구성하여 20여개 혹은 +@의 씬들로 엮어내는, 패치워크스러운 전개 기법과 유사한 느낌이다. 책으로 읽을 때의 강점이 있다면, 한 명, 한 사건, 한 화자를 쫓으며 느껴지는 피로감을 좀 더 속도감 있게 읽도록 만들어주는 강점이 있다. A이야기가 이랬는데, 전후해서 B는 어땠구나. C는 동시에 이런 일을 하다가 A를 마주했구나. 하는 현장감을 안겨주는데. 문제는 이게 영화에 이식되어도 괜찮은 기법인가? 에서 다가온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무언가 기나긴 여정을 쌓아가다 고르 이슈를 만나서 이탈하는가 싶더니, 대뜸 그냥 염소 덩그러니 받고는 이탈한다.

동시에 시작은 고르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후죽순 신들이 썰려나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제인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면서 아스가르드의 발키리 이야기도 풀어야만 했다. 주된 관찰의 대상은 3명, 여기서 추가적인 화자로 발키리까지. 3.5명을 밀도 있게 관찰하며 보내는 시간은 고작 119분이다. 그나마 앞부분은 가디언즈 오브 갤러시와 토르의 헤어짐 이야기이니. 아무리 시간과 공간을 분할해 인물을 묘사했다 한들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으로는 제인 이야기. 촬영씬 중에는 제인의 각성 장면도 있었다 했는데, 가차없이 편집되었으니.

 

 

고르는 역설적이게도, 조커 스러운 광기가 엿보인다. 크리스천 베일 사랑합니다.

그 서술의 방식도. 고르 잠깐. 토르 잠깐. 다시 제인으로. 다시 토르로 왔는데 제인을 마주했네? 와 같이 시시각각 변화를 요구한다. 초반의 고르에 관한 시퀀스가 제일 몰입감 있었을 정도인 만큼, 인물의 수와 씬 전환으로 인한 산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맥락을 짚어보면, 코로나 사태 전후로 인해 촬영현장이 혼란해지며, 예산과 기간을 헛되이 소모한 시간이 있어서 많은 묘사와 연출 역량을 줄여야 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남는다. 인물들은 그 웅장함을 묘사하기 어렵게 가차없이 클로즈를 당기고, 영화라는 거대한 묘사의 캔버스는 자그마한 연극의 스테이지로 전락해버린다. 여기에 더해  토르는 망치의 신이 아 번개의 신이지 않느냐 하는 말이 무색하게 극의 전개 사이사이 끼어드는 스톰브레이커와 묠니르 사이 갈등하는 토르의 모습, 그리고 직접 변변찮은 번개하나 뽑아내지 못하는 허전함까지. 전작의 감독이 이렇게 번개 연출은 허전하게 했다는 것은 예산 문제 말고 있을까? 싶은 대목이다.

 

그리고 이 허전함, 다급함, 영화 촬영 시간이 부족했음은, 저 악랄한 클로즈업과 주된 대사가 모두 농담 따먹기에서 보다 강렬하게 드러난다.

 

 

2. 같은 농담은 1번만 해라. 2번은 재미없으니까.

이러한 클래식 '토르 어드벤처'가 다급한 순간까지 이어질줄 알았지.

일단 전여친-묠니르와 현여친-스톰 브레이커로 빗대는 자아가 있는 무기 농담은, 한 두 번 정도면 그러려니 싶었다.

그러나 극의 초중반, 말미까지 같은 레파토리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묠니르를 그리워하는 토르, 이를 질투하는 스톰 브레이커. 여기에 이어 토르가 막바지 묠니르를 사용하는 쿠키영상까지. 허탈함이 마음을 잡아챈다. 그 기나긴 타노스와의 전투가 관객의 시각에선 더 익숙할 텐데, 굳이 이 시점에, 굳이 여기서.

 

다 모르겠고 너만은 죽이겠다는 저 깡다구. 그렇다. 토르의 머리는 빨리 자라는 것이었다.

물론 1500년 정도 묠니르를 안고 살다가, 수년 정도 스톰브레이커를 쓰다가 다시 묠니르를 마주하게 되면 그럴 수 있지. 솔직히 그리울법하긴하다. 그런데 타노스에 대한 분노, 죽기 직전까지 무기를 제련하기 위해 각오한 그 처절함, 그루트의 극적인 도움까지. 마블코믹스 팬이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팬들이게는 너무 간략히 지나간 각오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망치의 신이 아닌 번개의 신이라면서. 

 

여기에 극의 사이사이 짧게 이어지는 토르의 농담이나 코르그의 만담쇼들은 어딘가, 이걸 보러 영화관에 왔나 싶은 현타를 안겨주었다.

특히 싸우다 죽어서야만 발할라 갈 수 있다고 시프에게 말하는 대목이라던지. 원전에서는 토르의 아내가 금발, 아름다운 머리결을 자랑하는 시프였고 그 머리카락을 잘라낸 로키 때문에 싸운 마당에, 싸우다 죽지 않으면 발할라에 가지 못한다고 처절하게 쓰러져있는 동료에게 농담을 건네? 그런 마인드면 왜 타노스 잡아야지 하고 그렇게 분기 충전했던걸까. 이런 느슨한 농담이, 고르를 막아보겠다는 토르의 의지를 희석시킨다. 어딘가 4명이서 소풍가는 감각으로 제우스 만나러 간다해야하나. 다급함, 진중함, 필사적이 빠진 토르는 토르 3편에서는 납득될만한 범주였지만, 이번 작에서는 그 선을 넘어버렸다.

 

 

3. 결론

 

북유럽은 맥주가 근본이었을거 같은데, 주변은 위스키가 보이는 듯하다.

코로나는 투자 관점에서 쉽지 않은 장벽이었을 것이다.

촬영 올스탑. 국가간 이동 제약. 프로젝트의 추진은 무슨 망연히 기다리며 예산을 소모하는 날들. 거기에 예산의 절감.

투자자, 감독, 배우들의 공통된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 어떻게든 살아남을 영화를 뽑아야한다는 다급함. 그 다급함이 모이고 그 해석이 각자의 의향이 많이 반영될 때, 소위 말하듯 배는 산으로 간다. 배가 이쪽으로 가야 살아남는데, 아냐, 다른쪽으로 가야 살아남아. 모두가 필사의 의지로 자신이 본 방향을 가리키니, 결과적으로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산 중턱에 배는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전체 플롯에서는 다음과 같은 냄새가 느껴진다.

1) 제작자, 투자자의 개입이 심해서 어디 한 번 엿먹어봐라 하는 감독과 배우진의 깡다구

2) 이 정도 예산이면 이걸로 만족하자는 타협.

 

마지막 장면, 고르가 네크로소드도 잃었지만 처절하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이터니티와 상봉했을 때.

좀 더 이 장면의 호흡을 길고 느리게 가져갔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든다. 

아무리 타락의 여지인 네크로소드가 없어져도 그렇지, 고작 신 한 명과 인간 하나의 설득으로 마지막 소망이 그렇게 빨리 바뀌다니.

그나마도 자신의 딸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이터니티에서 파생된 어떤 개체이지 않았나? 

 

포스터를 다시봐도, 번개는 정말 아니다. 왜저랬어.

다시 영화 전반적인 관점으로 돌아와, 액션도 어딘가 아쉽고 제우스의 번개는 더더욱 허접해보였다.

묠니르가 돌아왔네, 토르에게 사이드킥이 생겼네, 제인이 가버렸네 등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서사적인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영화가 소모된 느낌이다.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는 이걸 교묘히 잘 깎아내어 인물의 성장과 영화의 쾌감을 다 잡아냈다면, 여기서는 인물의 성장도, 영화의 쾌감도 보이지 않는다.

 

평점은 4점 정도로 우선 마무리 해본다.

1,2,3 점을 유독 안주는 버릇이 있는데, 이 영화는 거기까지 내려갈 위험도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와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라고 영화 끝내는 건 좀 아니잖아.

그런걸 찾을거면 007 같이 비장하게 토르를 은퇴 시켜주기라도 했어야지. 이터니티가 막 큰 소원을 빌기 위해선, 그만큼의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라던지, 대응은 유연하게 나올 법 했다. 아니면 타노스는 얼마나 아는게 없었길래 이터니티를 만나려 안했을까. 스페이스 스톤 찾자마자 이터니티 찾고 말지. 

앞으로 어떤 장면, 어떤 방식으로 토르가 소모될지 불안해지는 대목이다. 나중에 헤라클레스와 동성애 연출이 들어가며 우주를 항행하러 떠나갔다했대도 믿을 수 있겠다. 물론 그런 시나리오도 나쁘진 않지만, 기존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움이 있으니까. 본 작의 발키리도 전작에는 전우를 그리워했다면, 본 작에서는 좋은 의미로 심오해졌다. 하지만 당혹스러울 순 있잖아. 갑자기? 지금?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는 각각 명예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은퇴를 다졌고, 호크아이는 그래도 살아남은 이들의 노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토르와 헐크는, 과연 이 험난한 중년의 시기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취업하는 이들은 그들의 학생 시절을 빨리 잊어가듯, 은퇴한 이들은 은퇴 직전의 험난함을 빨리 지워간다. 토르의 이 은퇴하지 못한 고난은, 더이상 흥미진진한 토르 어드벤처로 남기 어려워 보인다. 황혼 육아라니,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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