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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7)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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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6 / 10 

 

한껏 불태우고 난 뒤, 왠지 그 남은 재에 더 눈길이 간단 말이지

 

바흐보다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면, 해석의 지점을 잘못짚은 걸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은, 티모시 살라메의 이름으로 선선히 기억에 남았다. 올해 개봉했어야 했을 듄 (Dune, 2020)의 주연으로 그 이름을 처음 접했고, 찾다 보니 그분의 대표작으로 이 영화가 꼽혔는데 때마침 영화 추천도 받았고. 그리곤 이 인물이 갖는 화제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대체 어떤 영화였길래, 어떤 인물로 나왔길래 그렇게 찬사를 받았나 싶었지.

 

보고 난 뒤 명쾌함이나 먹먹함 보다는, 어딘가 색채가 옅은 느낌이다.

퀴어 영화 라기엔 고민이 옅어 보이고, 로맨스 영화 라기엔 서사가 짧다고 해야 할까. 배우들에 집중할 때 영화는 조금 더 빛이 나고, 그 배우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원망과 질투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동성애자들은 이런 로맨스 이야기를 덤덤히 그려내지 못했지, 당연히 저런 사랑이 가능할 텐데 말하는 듯하다. 다만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향연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작게 기록을 남겨본다.

 

1. 신화 한편을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들

배구하는 모습은 사진이 안 나왔지만, 강렬한 인상이다

인물들의 매력이 강렬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으로 인물의 매력이 참 강렬하네, 하는 감각을 갖기란 쉽지 않은데 말야.

예를 들어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의 조커를 생각해보면 이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조커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히스레저의 연기가 대단했다 하는 찬사는 쉽게 보이지만, 히스레저의 강렬한 매력이 느껴졌다는 평은 결이 사뭇 다르지 않던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은  매력적인 캐릭터 설계와 대사를 설계하기보단, 배우들이 갖는 매력에 고스란히 영화의 키를 넘긴다.

 

그 매력은 물론, 두 주연 배우가 갖춘 모습에서 기인한다.

올리버라는 이름은 왠지 굳건한 이미지로 뇌리에 남아 있는데, 여지없이 이번 영화의 올리버 또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헬레니즘 미술을 그대로 옮겨낸 듯이 길쭉하고 듬직한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24살이라는 나이가 이렇게 관록이 있어야만 했나 의문과 죄책감이 남을 정도다. 아무리 봐도 최소 30인데 말야. 

 

저 올리버와 대비되어, 여린 듯 섬세함이 돋보이는 엘리오가 그려지며 균형감을 찾는다.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이자 동성으로서 멘토, 그리고 애정의 대상으로 까지 닿아가며 다양한 감정을 오가는데, 얼핏 보면 카드캡터 체리의 청명과 체리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감정선이 엿보인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애정으로 넘어가는 지점까지, 영화는 끊임없이 엘리오를 관찰하며 둘의 매력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주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래, 저런 첫사랑도 있겠구나 싶은 청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반지의 제왕 중 작가가 생각한 프로도의 모습이 이런 이미지 아니었을까. 괜히 배우가 그렇게 화제가 된 게 아니었다.

다만 저렇게 파티와 피구, 만찬과 수영을 오가며 저 아름다운 이탈리아 저택의 삶을 쫓고 나면, 어딘가 위화감이 감돈다. 그 위화감은, 주연 외에 철저히 소모된 다른 이들에게서 비롯된다.

 

2. 둘의 이야기를 지켜주는 동화 속 세상

조명을 몰아준 두 주인공을 옆에 두고 보면, 주변 인물들은 지나친 면이 있다. 너무 평면적이라고 해야 할지, 꿈꾸는 정원을 아늑히 지켜준다 해야 할지. 그러다 보니, 가족이며 친구들은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보여준다. 

 

엘리오와 올리버 각각의 여자 친구들은 정말 소모되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영화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02)의 사제들도 이보다는 감정이 살아있던 것 같은데.

특히 마르치아는 올리버의 질투심을 유발하기도 하며 엘리오의 첫 애인이 되는데, 그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면 씁쓸하기만 하다. 사랑한다며, 좋은 친구로 남자고 악수할 건 뭐야. 마르치아와 엘리오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오와 올리버와 관계가 급진전되고, 그러는 와중에 엘리오가 잠수 타며 영문도 모르고 이별을 경험한 사람 치고는 덤덤하고 신사적인 반응이다. 보통 저기선 뺨을 짝 치고 다신 아는 척 말라고 할 텐데 말야.

올리버가 교제한 그분도 만만치 않다. 마지막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고, 그 옆자리는 엘리오에게 고스란히 빼앗긴다. 이게 엘리오와 올리버의 이야기였기에 망정이지.

 

부모님 각각의 모습도 한편으로는 대단하지만, 실제로 저렇게 덤덤한 부모가 있을 수 있나 싶다.

그러니까 자신의 조수가 자식과 연애를 하는데, 연애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게 확연한 시점인데 저렇게 응원하고 여행도 다녀오게끔 유도해준다는 게 말야. 너희들의 우정을 존중한다는 아버지의 말은 울림이 크게 다가오긴 하지만, 보통 저기선 올리버를 찾아가 멱살 잡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3. 이상을 통해 보는 결핍의 무게

세상 편안해보인다.

사실 영화의 종반에 다가설수록, 이 순수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지향하는 첫사랑 이야기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한국적인 매운 맛이 한 숟갈 정도 그리워졌다고 할까. 

일단 아버지의 보조로 왔지만 어딘가 지적으로 번뜩이는 듯한 올리버. 사실 이 저택의 숨겨진 보물과 엘리오 가족의 재산을 노리고 음흉한 접근을 했다 하면, 얼마나 이야기가 풍부해졌겠어. 그렇게 영화가 전개되며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 올리버는 사생아였고 복수하기 위해 찾아왔다 등등. 한국 드라마가 환하게 타오르는 청년들의 사랑을 담기에는 너무 강한 플롯을 지녀온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저 둘의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첫사랑을 그려내기 위해 모든 인물들이 양보해주고 찬사를 바치는 모습은 여전히 불안하다. 부모와 오랜 소꿉친구로도 해소되지 않는 위화감이 일렁이며, 영화의 서사가 짧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렇게 아늑한 장막을 쳐주는 이들이 왜 굳이 등장해야만 했나. 

한편으로 얼마나 동성애자들이 이런 환경을 갈망하는지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덤덤히 이해하고 조언해주는 부모의 모습과 더불어, 대외적으로 가림막이 되어줄 이성 친구. 유대인임을 드러내는 것조차 조심하는 마당에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한 차원 더 복잡한 문제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헌신적인 주변 인물들은, 결국 그런 지원과 공감을 받지 못한 동성애자들의 소망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4. 결론

왜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나 돌이켜보면, 나이 든 이와 어린 남성 간의 교제, 동성애에 대한 너그러운 인식. 향연의 여느 구절에서 이런 대목들을 접했던 듯하다. 그리고 담론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니까 떠오를만하네. 불멸성을 가진 사랑일지는, 좀 더 고민해서 뜯어봐야겠고. 

 

인물과 이탈리아의 경관에 몰입해서 본다면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 주지만, 외적으로는 재고될 여지가 많은 영화라 생각한다. 일단 미성년에 대한 범죄 행위인가? 생각하면 또 복잡해지고. 거기에 더해 퀴어 영화는 되고 이성 간의 영화였다면 안 되는 장르인가? 생각하면 더 복잡해진다. 

퀴어 영화의 담론을 쫓기란 쉽지 않다. 최근 2년간의 젊은 작가상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리벽을 만난 느낌이랄까. 불꽃같은 사랑을 그려내었을 때 성을 떼놓고 보면 평범한 이야기로 다가오고. 사회적 맥락을 합치고 보면 장애, 비극, 편견 극복이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처럼 덤덤히 애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찬사를 받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 동성 간이라는 벽 의식이 없을 때는, 바람피우는 영화가 아름답게 묘사되었네로 아슬아슬하게 걸칠 수 있는 영화였다.

 

평점은 6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조금 더 갈등구조를 쌓아나갈 여지가 있어 보였고, 코로나 시국의 가을에 저 휴양지의 아름다움은 마음에 닿지 못했다. 초여름에 보면 더 인상 깊게 와 닿지 않을까.

마지막, 아버지와의 대화는 먹먹함이 남아 재고할 여지가 있다. 서른이 되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해서 무섭다.

아, 하나 더. 엔딩 시퀀스가 인상 깊었다. 도입부로 도치해서 구성했어도 좋았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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