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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Tenet, 2020)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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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5 / 10

 

 패션쇼에 마감이 덜 된 옷을 입고 나왔으니, 평가는 각자에게 맡겨야지

 

이걸 너무 큰 기대가 부른 참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기대가 너무 크다는 말은 부당한 표현이다. 

덩케르크(2017), 인터스텔라(2014), 인셉션(2010), 다크 나이트(2008), 메멘토(2000) 까지. 그 무구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작품 아니던가. 감독을 고려하면 기대치는 높아야 마땅하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인 기회비용도 상당히 컸으니, 1편의 영화 관람에 실리는 의미는 커져간다.

유료 시사회의 형태로 최초 개봉한 8월 22일에는, 하필 용산 IMAX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여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을 키워주기만 했다.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을 앞둔 저 첫 개봉 주말에, 이 영화를 나서서 보기 까지는 주의와 고민을 필요로 했으니, 그만큼 기대되는, 상응하는 가치는 높아지는게 순리 아닐까. 물론 마스크를 성실히 끼고 좌석을 비워가며, 손소독제와 함게 영화를 보았노라 고백한다.

 

상황적 요소도, 제작자에 대한 확신도 굳건히 쌓아 올렸으니 어떤 영화가 나와도 기대치를 채우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아니 대체, 왜 하필 이 영화였어 그런데. 마치 덩케르크 전후의 기대감을 가지고 앉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앞선 덩케르크의 호불호보다 강렬하고 좀 더 다채롭게 지치게 된다.

물론 덩케르크는 개인적으로 좋았지만, 테넷은 그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짧게 기록 남겨본다.

 

1. 옅은 설정인지, 전달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표정을 보면 서로 눈으로 욕하는 것 같다. 기분 탓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중에서, 이처럼 설명과 씬 전환이 많았던 영화가 있었을까.

전작 덩케르크의 긴 호흡을 생각놓고 이 영화를 비교한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산만한지 선선히 와닿는다.

그리고 그 산만함의 근원은, 설명이다. 설명.

 

영화가 설명을 해야하는 지점은 무구히 많고, 단 하나도 사소히 지나갈 수 없었다.

엔트로피와 시간 역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물건들은 움직이는게 마땅하지만, 어디선가 공급된 신비로운 물건들은 그 흐름에 역행한다더라. 그냥 총알을 떨어뜨린 것처럼 행동하면 알아서 총알이 손에 감긴다. 착착. 

 

이게 정상 시간 흐름이라면

 

 

이게 보통 말하는 시간 여행에서 과거로 이동

 

그런데 어라, 이게 흔히 말하는 과거로의 이동과는 또 미묘하게 다르다. 총알이 손에서 떨어지는 행위를 역재생한 것처럼 손에 감기는데, 이건 시간 축에 대해서는 같은 시간 흐름이잖아.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고, 총알은 책상에서 탭댄스를 춘다. 우리는 여기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인버젼'된 물건들이 시간선상에서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설명 받는다. 그러니까, 비가역적인 반응이고 자시고 일단 영상 되감기 하듯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나오는 인버젼

 

그리고 이를 관객에게 납득 시키기 위해, 영화적 장치를 총동원하며 시각화한다.

마지막 결전의 순간에는 빨갛고 파란 견장으로 어느 시간흐름의 인물인지 시각적으로 표시하고, 중간에 인버젼 장치에서도 붉고 파란 조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애초에 인버전 장치도 직관적으로 뱅글 뱅글 돌아간다. 이제 시간 방향 바뀝니다~ 긴장하세요~ 하고 말야.

다만 이걸 엔트로피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는 이유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불에 닿았더니 냉각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인버젼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옮긴것이 되려 해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덜 직관적이니까.

 

 

이 영화가 얼마나 설명을 중요시 하는지는 주인공의 참전 동기를 설명하는 것에도 드러난다.

모두가 실패한 테스트 과정에서 자살까지 선택하며 의지를 보여주었고, 세계를 구하는 보다 큰 작전에 참가를 결심한다. 그리고 극 중 꾸준히 이 모든 작전이 누가 기획하고 누가 운영하는 것인지 되묻는다. 왜 저런 질문을 하는건지 의문일 정도로 집착하는데, 알고보니 주인공이 이 모든 일을 기획한 사람이라더라. 

사토르를 쫓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설명을 빙자한 복선이 그득하다. 매 순간 순간이 지나치게 디테일 한 느낌이다. 지금 캣을 만나는 이유는 앞서 인도에서 지시 받았기 때문이고, 캣을 만나는 방법은 그림이고. 그림을 찾기 위해선 인버전 장치가 마침 위치한 오슬로의 프리포트고. 

시간에 순행하던 복선을 역행하며 맞춰나가기 위해서, 영화는 틀리지 않는 정교한 서사를 설정하고 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 강조의 지점에서, 메멘토에서 드러난 세련됨은 어디 간데 없이 사라져있다.

 

그 결과로 명쾌히 사용되지 않은 설정들 만이 남게 된다. 예를 들자면,

- 자살시 사용된 은색의 캡슐은, 가사 상태 이외에 어떤 효과가 있는가? 사토르는 어떻게 취득하게 되었나. 만약 주인공의 캡슐을 습득한 것이라면, 그 효과가 불완전한 것도 알고 있을까?


- 주인공의 치아는 어떻게 수복되었나, 알약과는 관계 없나. 불타는 차량에서 나온 뒤 회복은 어떻게 한걸까.

- 깍지끼고 테넷이라 말하는 건 상호 식별하는 신호 이외에 아무런 효과가 없나?

- 사토르는 어떻게 테넷 내부의 암구어 전반부를 알게 되었나

- 인버전된 사람은 정상 시간 흐름의 사물과 상호작용시, 또 다른 제약이 없나?

- 인버전된 총알은 이미 수행된 동작만 역순으로 보여지는게 아닌가? 어떻게 원격으로 조종하는듯 움직였나. 

  (박사가 흑막아닐까, 이쯤되면)

- 물리적으로 가공된 알고리즘은 좀 더 세련된 설정이 없었나. 왜 하필 그 단어야.

 

옅은 설정과 설명의 사이에도, 불편한 요소는 여전히 있었다.

알고리즘 풀이가 보편화된 시대에 세계를 멸망 시킬 알고리즘이 물리적 실체로 가공되어 분리해서 저장한다 같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 받는게, 도저히 와닿지 않는다. 뭐지, 마그네틱 디스큰가. 아니면 SSD보다 진보된 미래의 저장소인가. 아니면 각인해서 정보를 새긴건가. 시간 역행 장치가 곳곳에 산재된 마당에, 알고리즘을 쫓는 것보다 시간 역행 장치를 찾아 파괴하는게 낫지 않았나 싶다. 출구를 막으면 되는거아냐. 옆동네 아이언맨은 블랙홀 타고들어가 핵미사일로 군단을 터뜨리기라도 했지. 이건 너무 찝찝하다.

게다가 알고리즘이라니, 대체가. 지구 멸망 프로토콜이라 하면 너무 스카이넷 같은 느낌이었을까. 알고리즘은 개인적으로 엔트로피 만큼 지구 멸망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단어다. 엔트로피 때문에 지구가 멸망합니다! 는 위화감이 있지 않은가. 알고리즘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위급해보이는 단어를 설정할 수는 없었을까. 

 

 

2. 청량감과 가벼움이 필요한 전개

좌측의 물리학 석사 이지만 어딘가 목숨을 걸고 요원 하는 양반

농담이 농담처럼 읽히지 않는 이유, 웃음이 웃음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물리학 석사가 아니기 때문 아니었을까.

 

물론 이 영화의 최고 명언은, 단언코 나 물리학 석사야 일 것이다. 돈 많고 잠입 및 유격전이 가능한 특수부대원이지만, 물리학 석사 정도는 거뜬하지. 이쯤 되면 박사학위 7개 있는 헐크가 그리워진다.

영화 곳곳에는 영국인에 대한 밈 부터 양복이며 수트를 놓고 오가는 대화라던지, 다채로운 농을 주고 받는 지점이 있다. 물론 앞선 물리학 석사도 적당히 그런 농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농담들은 세련되고 여유있게 전달 되지 않고, 급히 전개되는 대사로만 도달한다.

이 이유로는 앞서 말한 설명 위주, 급한 영화 전개와 더불어 배우들이 대본을 해석할 여지가 없던 것도 한 몫한 듯 하다. 대본을 분할해서 보여준다던지, 직전에 해당 씬에 대한 대본만 보여줬다던지 하는 배우 인터뷰 들이 있었던 만큼, 캐릭터가 풍기는 여유를 드러내긴 힘들지 않았을까.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48097

 

<테넷>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26가지 사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테넷>이 드디어 8월 26일 개봉한다. 지금까지 <테넷>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모두 정리해봤다. 1. 〈테넷〉의 러닝 타임은 2시간 30분이다.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2

www.esquirekorea.co.kr

 

음악 또한 기존의 작품들에 비하면, 감정의 고조 보다도 서사를 설명하기 위한 매체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적절한 여백 보다도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사운드와 긴박함, 웅장함을 일으키는 음악들이 배치되는데, 어딘가 급박하게 소리를 채우는 감각이다. 총괄적인 하모니를 보여준 덩케르크와 사뭇 대조 된다고 해야하나.

 

영화의 각 요소는 감독이 그려낸 세계와 서사를 철저히 설명하기 위한 매체로 전락해버렸으니 설명이 아닌 청량감, 짜릿함이 절절히 그리워 지는 순간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물론 그 청량감은, 액션, 폭발, 멋짐, 공백, 여유. 그런 것들에 해당 된다.

그리고 본 작품의 감독에게 유일하게 기대하지 말아야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액션이 아닐까.

 

 

베인과의 묵직한 결투씬, 그럼에도 어딘가 합이 안맞는 동작을 보여주었던 그 작품

액션에 대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 기준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격투 씬이 인상 깊었다고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영화 도입부의 총격전은 어딘가 인셉션 마지막 전투도 떠오르고, 인버젼된 군인과 격투씬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위해서는, 그조차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고속도로 탈취 장면, 비행기 충돌 장면 등 다크나이트에서는 감독의 강점이었던 사실적인 연출이, 비현실성을 강조해야하는 이번 영화에서는 되려 약점이 되어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느리고 답답하다. 인버젼된 총알을 제어하던 모습들이 좀 더 고도화되어 결투 장면에, 추격 장면에, 응용되었다면 인상 깊었겠지만 영화 내에서는 한번씩 기묘한 트릭 무빙을 하는 것 이상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이 답답함, 이 설명충을 풀어낼 강렬함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냥 시간 앞에서 전능한 이가 나타나서 모든걸 초기화 시켰다, 이랬어도 영화는 차라리 명쾌했을 것이다. 이 어정쩡한 인버젼 능력, 어정쩡한 인버젼 병사들, 불분명하고 적은 규모의 적들.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으로도 부족할 만큼 과도한 설정이 영화를 집어삼켜버렸다. 이 영화와 동시에 토르 : 라그나로크를 상영했다면, 1시간 정도 본 뒤 못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레드 제펄린의 샤우팅을 들으러 갈만큼의 답답함이다. 

 

 

3. 결론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끼고 건너건너 앉아가며 영화를 설레며 본 것은, 그 익숙한 설렘을 필요로 했기 때문 아닐까 반성해본다.

그랬기에 더욱 더 이 설명들에 답답한 느낌을 받고, 갑자기 환경이 무너져 미래인들이 현재를 침략한다는 영화의 전개에 분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인셉션은 환경을 사랑합시다 없이 멀쩡히 재밌었잖아. 동기의 약함은 이런 곳에서도 선선히 비교된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5편 정도의 짧은 드라마에 적합해보이고, 2시간 30분으로 압축하기 위해 설명으로 채우는 길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처참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과장의 묘미가 사라진 SF영화.

테넷은 평점 5점도 아쉬운 감이 있다.

어차피 설명할 거면 칠판에 그림 그리면서 설명하는 장면이라도 우겨 넣지 그랬어. 애써 석사, 박사까지 등장시켜놓고.

굳이 음향, 대사, 인버전 장치등 영화적 요소로 채우려고 하다보니 불필요한 씬과 러닝타임만 길어져 버렸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CG를 좀 더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전투장면에서 역재생인지 실제 연기인지, 뒤로 뛰는 장면을 볼 때는 이질감이 아닌 어색함이 감돌았다. 전투 투입 장면에서 어떻게 뛰어야 하지 우왕좌왕하는 엑스트라들의 열연과 고충이 전달된 것은 기분 탓일까. 

 

배우의 커리어적으로는 괜찮은 영화였다. 로버트 패틴슨은 적당히 너디한 보조 역할을 매력적으로 수행했고, 이후 007의 Q 같은 역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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