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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2009)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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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7 / 10

타인의 연애담을 듣고 정신 차리라는 소리를 하고 싶을 때, 직접 표현하는 대신 권장해봄직하다

 

영화 뭐보면 좋을까, 추천 부탁해로 시작한 대화였다.

묻고 답하며 들은 영화는 저 어느 프랑스 영화였는데, 정작 그 영화보다 지나가듯 흘리고 간 이 영화가 뇌리에 박혔다.

500일의 썸머는 어때? 아, 그 영화가 있었지 참. 때 마침 여름도 끝나고 으슬한 마당에 다시 봐볼까.

 

500일의 썸머는 앞서 3번을 보았고, 그 때마다 마음에 닿는 감정은 제각각이었다.

연애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고민하던 시절부터, 이별 후 어떻게 욕을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도, 그리곤 다시 연애를 감히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뇌하던 시기에도, 이 영화는 다채로운 이미지와 조언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와 유사하게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로맨스 영화들은 무궁무진하다. 어바웃타임(About Time, 2013)은 영화의 매력과 더불어 연애에 관한 가치관을 스케치 해주고, 인생이 고단하거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2012) 같은 영화도 있으니까.

이 쟁쟁한 영화들 사이에서 썸머가 돋보이는 이유를 꼽자면, 그 여느 로맨스 영화보다도 다시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기 때문 아닐까.

썅년.

 

그런 의미에서 작게 리뷰를 남겨본다.

 

 

1. 다시 생각해보자, 톰 한센의 기대는 합당했는지.

 

링고스타는 들어보지 않았다. 이렇게 To do 리스트는 늘어가는구나.

고백컨데 앞선 영화 관람들 중 나의 시각은, 철저히 톰의 시각이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여실히 보여주는 와중 어린 클로이 모레츠의 조언을 들으며 성장해가는 톰의 모습에는 자연스레 감정 이입이 된다. 그 정점은 퇴사하는 순간의 일장 연설 아닐까.  정말 경이로울 만큼 마음을 울린다. 사랑 같은게 어디있어, 다 거짓이지. 

조셉 고든 래빗의 처절한, 또는 찌질한 연기에 더불어 주이 디샤넬의 매력이 섞이니, 이야, 저 썅년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고 마는 것이다. 그래, 고생했다. 엔딩에 이르러 이름이 가을인 분을 만날 때 이야, 운명인가, 하고 덩달아 설레는건 당연한 흐름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니, 조금 다른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톰의 저 거대하고 뭉글한 기대감은 과연 합당했을까. 타인의 감정에 저렇게 기대감을 품어도 되는걸까.

친구로서의 범주가 어디인지, 연애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둘째 치고, 톰의 기대는 엄밀히 말하면 급발진하는 경향이 있다. 듣고 있는 음악을 물어오자 설레기 시작해선, 불꽃 같은 키스를 기점으로 데이트를 시작하니 250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인생에 한 번 있을까 싶은 운명의 여성임을 확신하고선 말야.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한 레이첼은 시기적절히 조언해준다. 취향이 몇 개 겹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운명의 사람인 것은 아냐.

 

이후 연애를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이 소통되지 않은 기대는 여실히 들어난다. 

술집에서 다른 남자가 작업을 걸어오자 먼저 주먹질을 하는 톰의 모습은, 그 애처로운 결과 보다도 굳이 그랬어야 했냐는 썸머의 태도가 깊은 울림을 준다. 너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런 사이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게, 친구와 연애라는 경계를 넘어 연애와 소유라는 간극을 다시 보여준다. 만약 확고히 서로 연애한다는 인식이 확고 했다면, 저렇게 추파를 던져오는 다른 남자 앞에서 톰은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물론 저런 상황에서 나서서 지켜야 한다! 는 모든 남성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겠지만서도, 지금의 사회적 관념으로는 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톰에게 몰입을 잠시 멈춰두고, 한 발짝 뒤에서 영화를 보면 썸머의 행동은 다시 보인다. 연애를 하고 깊이 교감하려 한다기 보단, 어딘가 우울증이 있을법한 기묘한 공허감이 먼저 와닿는다. 연애에 앞서, 일상을 나눌 사람이 필요한 느낌이랄까.

 

 

2. 그래도 한 마디는 남겨야지, 대체 왜 저러는거야. 

 

이 표정에서 많은게 전달이 된다.

톰의 기대에 대해 재평가를 하고 톰의 감정선에서 한 걸음 물러섰을 때, 썸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는가?

그건 또 아니다. 썸머의 선 넘는 행위들은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영화가 개봉한지 11년이 흘렀고 연애에 대한 사회적 관념이 바뀌었으니, 최대한 납득하고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고 해도 말야. 그러니까, 복사실에서 불꽃같은 키스를 해도 연애와는 또 다를 수 있지, 해도 마음에 걸리는 행위들이 있는 것이다. 약혼 전 후에 굳이 파티에 초대한 것은 서구적 가치관은 저런 것인가, 반지 자랑하는 건가 생각도 되었지만, 극의 종반 공원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도통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널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톰이 애정하던 공원에서 다시 만난 순간은, 정말이지 세상에 정의란 어디있는가 되묻게 되는 장면이었다. 인생을 파멸시켰다, 수십억을 들고 도망쳤다, 이런 건 아니니 덤덤하게 재회할 순 있었다곤 해도 말야. 굳이 결혼하는 마당에 전남친을 만나서 본인의 묵은 마음을 해소해야만 했을까. 그리곤 톰 보고 아직 어리구나, 하는 따스한 시선을 건내는건, 과도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갔기에, 톰이 면접장에서 만난 여성은 좀 더 운명적으로 느껴지지만 말야. 극 중 장치라고 덤덤히 넘어가기엔 너무 비참하잖아. 그 뒤 혼자 보드카를 병나발로 부는 장면이 나왔어도,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3. 결론

엔딩의 여운에 잠겨 있자니, 작은 의문이 하나 더 생겼다.

어바웃타임의 팀처럼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과거에 한 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다면, 톰은 썸머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다시 시도를 했을까. 했다면, 썸머와 더 나은 연애가 가능했을까, 아니면 결국 안 맞는 지점을 깨닫게 되었을까. 톰의 행동에 따라 썸머의 생각이 바뀌었을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말야.

 

평점은 7로 기록을 매듭짓는다.

일자를 섞으며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는 기법은 훌륭했고, 틈틈히 보이는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비롯해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힐링과 몰입, 인생에 대한 고찰을 이처럼 잘 섞을 순 없지 않을까. 배우들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연기들 또한 대단했다. 영어 농담도 익살 맞았고.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짧은 러닝타임에서 다가오는 어딘가 부족한 감각 때문이 아닐까. 러닝타임이 95분인 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과감히 잘라낸 것이 느껴진다. 썸머의 관점에서 후속작이 나왔다면, 어딘가 덜 알아낸 듯한 부족한 감각이 사라질텐데.

영화 전체적으로는 친구의 옛 연애담을 실시간으로 중계 받는 것과 짜임새 있는 소설을 읽는 경계에 걸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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