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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Brooklyn, 2016)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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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5 / 10

 

한국식 신파와 매운맛이 그리워지는 모호한 메세지

 

영화를 보며 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애정 표현으로 그리 느끼한 영화는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 구운 감자, 찐 감자, 치즈를 얹은 감자만 먹다가 어딘가 김치가 그리운 순간이 있었다고 할까. 이민자의 억양이 녹아든 언어와 조심스럽게 선택한 단어들로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표현은 인상 깊었지만, 그럼에도 이 뭉근한 영화를 감상하기에 여름 날씨는 적합하지 않았다. 캐나다의 11월 즈음에 이불 돌돌 말아 웅크려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그 땐 아마 9점 즈음 기록하지 않았을까.

 

영화 평점을 기록할 때 주관이 깊이 반영된다면 날씨에 따라 평점의 변화폭이 크더라도 이해 받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타지살이와 사랑을 놓고 이민자의 삶을 교묘히 그려내는 영화지만, 아쉬움이 짙게 남았던 브루클린.

짧게 기록해본다.

 

 

1. 이민자를 위한 페어리 테일

우리가 주의해야만 하는 것은, 야구 이야기를 줄창 늘어놓지 않는 이탈리아 남자는 저시대에 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토니가 갖는 애정의 깊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장치가 되지만, 결국 야구 이야기가 스믈스믈 나오는 걸 보니 결국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이탈리아 남자는 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비슷한 평가인지 의문이다만.

 

일단 이민자로서 보면,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어마어마한 스토리 라인이다. 행복회로를 최대한 돌려도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지인의 추천으로 채용이 보장된 채 미국으로 간 뒤, 업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도 해고가 아닌 교육의 기회를 받는 에일리스. 노예 계약서급 혹독한 근무조건도 없고, 야학이 가능할 정도로 워라밸은 보장된 듯 하다. 어디 교육 뿐일까, 경리에서 회계사로 이어지는 명확한 비전까지 제시해 주는 조언자가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보통 회로가 아닌데, 아직 부족한 감이 있다. 지나치게 실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야기를 했으니, 달달함 한 스푼 정도 넣어야 영화의 밸런스가 잡히는 것을 이젠 모두가 알지 않던가.

이렇게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무렵, 때마침 이탈리아 억양의 끈적한 영어로, 아일랜드 사람이 좋다고 말을 건네 오는 남자가 있다. 사실 위험한 남자일까 걱정은 되지만, 알고보니 직업도 있고 건실한 사랑을 나누고자 다가온 토니. 그렇게 그들은 미국에서 미래를 기약하며 행복한 삶을 살았답니다. 1막 끝.

 

자연스럽게 2막의 내용은, 영화를 보지 않아도 유추가 된다. 갑작스런 본국에서의 소식과 귀국전의 뜨거운 사랑. 돌아오고 보니 고향의 친숙함과 미국 유학파 회계사로 급격한 커리어 전환. 대서양 건너에 있는 토니는 점차 잊혀지며 아일랜드의 삶에 희망을 갖게 되는데... 과연 에일리스는 미국으로 돌아갈까요, 안 돌아갈까요. 이게 다 한국의 드라마 조기 교육으로 인한 폐해인게 아닐까. 너무 친숙한 스토리잖아. 

 

이민 생활에 대해 이 정도로 운과 맥락이 맞아 떨어져야 행복할 수 있다 냉소를 보내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는 정교하게 행복회로를 굴린다. 다만 그 과정 중에 무언가 놓친 것이 있는 듯 한데, 주인공의 주관이 산산히 부서져있다. 그래서 행복 회로를 열심히 굴렸음에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의 순간이 뒷덜미를 잡을까 두려워진다. 

 

 

2. 사실 상자를 열고 보면, 해결된 것은 없다

환불 받으러 출발할 듯한 강인한 느낌. 이게 바로 미국 유학파다.

아일랜드 부유층과 결혼을 고민하다 급히 돌아온 에일리쉬. 토니와 감동의 재회를 하며 영화를 끝내지만 어딘가 텁텁한 느낌이 감돈다. 

굳이 이 불안한 감정의 근원을 따지면 토니는 그 사이에 다른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하나. 그리고 에일리쉬의 기연은 어디까지 이어질까가 또 하나. 마지막으로 아직 아일랜드에 돌아올 이유는 남았을텐데, 그 땐 어찌하려고 하는 의문까지. 총체적으로는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믿을 수가 없다보니, 그리 희망찬 결말로 와닿지가 않는 것이다.

 

대개의 모험을 그려내는 영화는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통해, 유사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극복할 수 있어! 하는 신뢰를 심어준다. 부모님과의 갈등? 정면 충돌해서 이겨내었으니 당당히 미국 생활 할꺼야, 아일랜드는 다시는 안돌아가도 돼! 라던지. 미국 정착 중에 그런 힘든 일도 해냈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 해도 거뜬하지, 라던지. 아니면 이미 나쁜 남자들은 선별할 수 있으니 보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어. 라던지.

극 중 전개에서 주인공은 이 모든 요소에 대해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심지어 토니의 편지는 한동안 열어보지도 않다가, 결혼 했다는 소식이 본의치 않게 공개될뻔 하자 도피하듯 미국으로 떠나는데, 마냥 편안한 결말은 아니다.

 

 

3. 결론

보고 나니 어라 이거, 소설 '한국이 싫어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장강명 작가의 저 소설은 2015년 작이구나. 표절의혹은 상호 거두어도 될 것 같다.

 

결국 이민자의 삶은 대개 정형화 되는게 아닐까.

알듯 모를듯한 눈칫밥과 적응의 세월 후, 악바리 같이 취득한 자격증과 개선된 삶의 질.

모국에 살그머니 왔다가 현실의 벽을 느낀뒤, 다시 돌아가서 다른 이민자를 만나 행복한 미래 구상.

 

이래저래 회계 자격 따는 건 또 비슷하다.

여러분, AICPA 땁시다. 사실 이런게 PPL 아닌가, 뒷광고 아닌가 의심받아야 하는게 아닐까.

용접공도 있고 그럴텐데 말야.

 

영화의 외적으로는 꽤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사학적으로 오히려 재조명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삶이 어떠 했는지, 왜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에게 차별의 시선이 오갔는지는 고민해볼만하다.

 

찾다보니 이런 글도 있었다.

https://www.history.com/news/when-america-despised-the-irish-the-19th-centurys-refugee-crisis

 

When America Despised the Irish: The 19th Century’s Refugee Crisis

More than 150 years ago, it was the Irish who were refugees forced into exile by a humanitarian and political disaster. Explore this era of scorn the Irish initially encountered and find out how they became part of the American mainstream.

www.history.com

 

괜히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이 아직도 회자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었구나.

 

역사적 가치는 잠시 덮어두고, 영화는 5 / 10으로 기록을 마무리 짓는다.

자극적인 맛이 떨어진다고 할지, 간접적인 교훈을 안겨줄 틈도 없었다고 할지, 여러모로 아쉽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마지막 엔딩 장면에, 토니가 동생과 가게를 나오던 와중 다른 여성이 나타나 토니에게 다가서길 작게나마 기도했다.

그래도 가톨릭인데 신이 균형감은 맞춰줬어야지.

 

또 하나 더. 

짐 패럴 역의 도널 글리슨은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자 스타워즈의 헉스 장군 역을 맡았었다.

왠지 낯이 익더라니, 그래도 어바웃 타임에서 성공했으니 괜찮은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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