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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Gattaca, 1997)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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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6 / 10

 

지금 보기엔 답답할 수 있는, 자유주의로 채운 상상력의 한계

 

1990년대의 극장과 영화 감상 분위기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안된다.

내게 영화란 멀티플렉스의 큰 화면이 첫인상으로 남았고, 그 후에는 집으로 넘어와 초점을 잃은 눈으로 48cm 간극의 모니터, 30cm 간극의 휴대폰 화면에서 본 게 대부분이니까.

 

그렇기에 과거의 영화를 볼 때는 분석하는 이의 시간적 위치를 어디에 두고 볼지 조심스럽다. 이 영화가 대형 스크린을 위해 설계된 영화였나,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였을까 또한 고민을 해야 하나? 그걸 간과하면 과거의 영화는 정말 허술한 영화로만 남곤 하잖아.

 

하필 이 시대 전후로 쟁쟁한 영화들도 많지 않던가. 매트릭스 (The Matrix, 1999)가 좀 더 상상력과 너디함을 붙잡았다면, 근본적으로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와 같은 향기의 메세지를 전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에 와서 과거 명작을 돌이키는 이는 통시적으로 보게 되고 메세지는 옅은 쪽이 잊힌다. 이 영화의 비교군에 1년 2년 뒤에 나온 작품이 포함되는 건데, 대개는 나중에 나온 영화가 좀 더 강렬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타카는 조금 더 옅은 쪽이라 생각한다. 1997년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작게 기록을 남겨본다.

 

 

1. 차별을 다루는 세련된 방식, 김 빠진 핵심 플롯

 

 

사실 유전적 결함보다는 헤어스타일의 문제 아니었을까.

 

 

우선 차별을 다루는 영화로서, 주된 메세지보다 은은히 지나가는 배경들이 인상 깊다. 주변 인물, 억양, 역할의 디테일에서 인간 사회에서 차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 좀 더 강조해주는 느낌이랄까. 크런치를 뿌린 요거트를 먹는 감각으로 메세지를 전달해온다.

 

영화 내의 주된 차별은 피부색, 인종도 아닌 태아 단계부터의 유전자 수정 여부다.

결점을 확인하고 제거한 이들이 사회의 상류층에 머물러 있는 세상에서, 주인공 빈센트는 부모님의 가치관으로 인해 치명적인 결점들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백인이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술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핵심이지. 또한 우회적으로 영화 내 직업을 통해, 인종은 별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고위직으로 상징되는 외행성 파견에 인종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짧지만 인상 깊다. 

이 세심한 배치가, 각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일로 차별하고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전달을 도와준다. 그 외에도 몇몇 작은 장치들이 돋보인다. 예로는 에단 호크와 주드 로의 사뭇 다른 영어 억양. 그 미묘한 부의 계급 차이를 억양으로 슬쩍 보여주고, 그럼에도 서로 굳은 신뢰관계를 쌓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먹먹한 감동을 주며 계급을 우회해서 보여주며 메세지를 강화한다.

 

하지만 정작, 이 세련된 방식에도 불구하고 주된 플롯은 다소 눅눅하다. 형사로 돌아온 동생과의 대립 구도는, 너무 친숙한 구도다 보니 아무런 긴장감을 안겨주지 못한다. 알고 보니 날 쫓는 형사가 동생이었다? 그리고 그 동생과 어릴 적 승부를 다시 하며 회심의 역전을 한다? 어딘가 영웅본색을 순한 맛으로 덮은 느낌이다.

 

 

2. 편향적인 상상력은 예산 문제였을까

 

다들 한 방향을 보는 이유는 감시와 처벌 맥락인걸까

 

이 순한 맛을 쫓다 보면, 아쉬운 지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아쉬움은 스타워즈6 - 제다이의 귀환 이후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상상력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구체적으로는,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굳이 종이로 출력하는 것에서 닿는 묘한 아쉬움.

이미 홀로그램이라던지, 패드형 디스플레이라던지, 기술적 상상력은 이미 동시대 다른 작품들에서 모두 제시되었다. 그 뒤에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확보한 시대를 다루는데, 실제 생활과 바뀐 게 없다. 하늘을 나는 차량까지는 안 바래도, 어느 정도 기술적인 균형감을 갖출 필요는 있지 않았나 싶다. 그 정점은 토성 탐사선을 굳이 양복을 입고 타는 장면인데,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아니, 부족하다기 보다도 예산이 없던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된다. 제롬과 처음 만난 공간도 미묘하게 빈 공간에 계단 하나 덩그러니 놓인 느낌인데, 부유층의 비밀 실험실을 꾸미기 위해서 돈을 다 쓰고 대형 저택을 구하지 못한 게 아닐까.

 

결국 겉으로는 SF영화인가 두근거리게 꾸몄는데 정작 외형은 90년대의 클래식한 양복, 그 속은 더 오래된 전통의 능력 있는 동생과 집 나온 형, 그것만 남는 것이다. 이런 서사가 끝이며는 그냥 토르와 로키가 난동 부리는 북유럽 신화를 다시 정독해도 될 텐데 말이야. 여기에 반복되어서 사용되는 배경 장소들은, 영화보다는 연극에 가까운 시각적 요소를 꾸미며 영화가 갖는 강점을 살리지 못한다. 

 

 

3. 결론

유전자에 초점을 맞추어, 편견과 차별을 비꼬아내는 영화. 

한 개인이 시스템을 뚫고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어내는 건, 익숙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익숙한 카타르시스임에도, 이 개인의 극복 일화가 공감이 잘 되는 편은 아니다.

일단 에단 호크는 잘 생겼고, 주드로도 잘 생겼으니까. 더러운 세상.

 

이 영화의 플롯이 패배자 두 명이 의기투합해서 세상을 뒤집어주마! 가 아닌, 잘난 놈 두 명이 허술한 사회를 엿 먹여 주마 같이 다가오는 건 배역 선정의 미스매치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극적 장치를 좀 더 교묘하게 꾸밀 필요가 있었다. 삐딱하게 서서 껌 씹는 에단 호크를 보면, 어디선가 바이크를 몰고 오는 하이틴 배역이 되려 떠오르는 마당이니.

 

영화 평점은 6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1997년대에 예산이 부족한 시점에서 cg와 인력을 갈아넣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차별에 대한 메세지는 그래도 전달은 된다.

하지만 상상력의 한계는 예산을 떠나서, 지금 우리가 보며 추억하기에도 답답한 감이 있다. 결국 동시대보다 강렬한 영화들에 잊혀지는 수순 아닐까. 맨 인 블랙 1 (Men in Black, 1997), 큐브 (Cube, 1997), 타이타닉(Titanic, 1997)과 같은 쟁쟁한 영화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결말이 바뀌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관리 층의 비리로 인해 강행된 우주 파견 과정과 빈센트의 시한을 넘긴 심장 문제. 특히 20여분 달리며 심각한 호흡 곤란을 겪었던 빈센트인 만큼, 둘 중 하나가 터지며 꿈을 이루다 죽었다면 여운이 더 깊지 않았을까. 

아니면 둘 다 터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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