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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You call it passion, 2015)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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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작이라서 다행이었던 영화. 과거의 기억으로 덮어둘만 하지 않을까.

 

집에서 영화를 본다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와 결이 다른 고민을 갖게 된다.

인간이 발표에 집중을 이을 수 있는 시간은 18분이라고 한다. 영화를 발표의 연장으로 생각한다면, 20분 내외 남짓 되는 시간마다 적절한 강약이 있어야 영화로서 관람이 성립되는 것이다. 

영화관은 런타임 중 18분의 텀마다 그 사이를 적막으로 이어줄 수 있지만, 집에서 영화 관람은 그렇지 않다. 가뜩이나 개인 pc로 본다면야. 일시정지. 냉장고. 맥주. 아까 돌렸는데 빨래 널어두고 올까, 와 같은 세속의 이슈가 있는데 감히 그 공백을 붙잡고 이을 수 있을까. 

결국 집에서 보는 영화는 그 무엇보다도 20여분 단위의 이야기를 얼마나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가, 바꿔말하면 서사와 플롯이 알찬가. 또는 그 18분 내에 강렬한 이미지와 소리로 때려부수며 일시정지하고 다시봐도 흥겹게 만들 수 있는가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주말의 선정은 처참했다.

영화관에서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아 돈 아까웠네 라는 후회는 나오지만 시간 아까웠네 까지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바로 옆에 대용 가능한 목적들이 있는 멀티 플렉스의 시대니까. 그렇지만 집에서는 나올 수 있는 후회의 방향이 하나 뿐이다. 물론 이 영화도 그런 후회를 안겨다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2020년의 작품이 아닌 2015년의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박보영은 이미 그 해에 '오 나의 귀신님'으로 매력을 충분히 전달했다는게 아닐까. 그러니 이 영화를 새로 볼 사람이 있다면, 오나귀 정주행이나 하자. 그 드라마를 보고 굳이 이 영화로 넘어올 필요는 없다.

 

2015년 11월 25일. 여러모로 잊지 못할 날에 개봉한 영화.

지금에서야 작게 기록 남겨본다.

 

 

 

 

1. 대충 이런 영화 만들건데 인물을 모셔볼까

 

인물의 이미지로 영화의 전개를 끌어가는 영화가 가능할까 싶은 경이감이 든다.

뮤직비디오 말고 이게 가능해? 싶은데, 다만 뮤직비디오는 영상미나 음악 구성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던가. 뮤직비디오에서 음악을 뺀 뒤 1시간 30여분으로 늘여내고 소리를 대사로 채우면. 이런 감성이지 싶다.

 

조금 더 생각하면, 콘티 너머의 구성에서 양적으로 부실한 느낌이다. 

몇 가지 정형화 된 인물상을 대충 스케치한 뒤 콘티에 맞게 순서대로 배치한 후, 급하게 영상으로 담아낸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러다 보니 인물에 좀 더 깊게 빠져들거나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없이, 영화의 대부분이 인물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전달로 소진된다.

 

정재영이 그려낸 하재관 부장. 내가 살인범이다는 재밌게 봤는데.

자. 어떤 모습이 연상되는게 하면 자명하다. 배에 힘 딱 주고 소리 빡빡 지르는 그런 꼰대 이미지. 하지만 내 팀원에게는 사실 따뜻하겠지.

 

 

오달수가 그려낸 이하 생략. 익숙한 포지션이다. 사건의 트리거는 아니었네

자. 사진인가 그림인가 감이 안올 정도로 생생한 전달력. 물론 생각한 그 모습 그대로 연기로 드러낸다.

 

물론 위의 두 분 말고도 배성우, 박보영, 윤균상까지. 철저히 짧게 연상되는 인물의 이미지와 성격으로 밀어붙인다. 툴툴거리지만 어딘가 듬직한 사수라던지. 새로 들어온 대찬 수습사원이라던지. 뮤직비디오 찍는 무휼이라던지. 생각해보니 육룡이 나르샤도 2015년에 한창이었는데 말야.

수습기자의 회사 적응과 코미디라는 무게를 지키기 위해선지, 인물의 배경 뒤에 머문 깊은 이야기를 파고 들어갈 틈을 주질 않는다. 하재관은 과거 우지한의 루머 생성 때 어디까지 닿았는가? 국회의원을 잘못 건드렸던 선우는 정의감을 온전히 상실한걸까? 도라희의 급 남자친구가 된 그 분은 대체 어떤 맥락으로 중간중간 아련한 눈빛으로 돌아보나? 도라희는 부모님이 직전까지 오피스텔 월세 내줄 정돈데 굳이 이 직장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나 등.

 

2019년의 "복동아, 지금이야" 가 있기에 우린 행복했지만 솔직히 이 영화도 만만치 않다. 폭발하는 cg를 넣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지.

 

 

2. 영화를 찍고 주제의식을 씌운 듯한 갑갑함

 

박보영을 위한 영화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닌거 같다. 2012년의 늑대소년도 있는데.

 

영화의 시작과 끝에 하재관은 열정을 강조하지만, 영화는 전혀 열정을 강조하는 늬앙스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열정이란 사회와 꼰대의 허상임을 강조하는게 아닐까. 수 세기를 충과 효를 논해 사회를 유지했다면 지금 세대는 열정이 그 자리를 대체했구나 폭로하는 영화구나 뒤늦게 경애심이 든다. 

 

그래도 영화 구조에서 '열정'이 어떤 자리인지는 마저 짚고 넘어가자.

 

일단, 열정으로 사건이 심화되었는가? 도라희와 하재관의 대립은 열정의 무게감 차이는 아닌듯 싶다.

열정이라 하면 보통 일에 매진하여 추가로 자신의 모든걸 투입해가는 과정을 말하지 않던가. 둘의 대립은 이런 일에 대한 집념의 여부보다도, 직업의식 혹은 직업에 따른 정의감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그 정의감의 저변에는 생계를 포기하고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기자로서의 열정'을 되묻긴 한다만 이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가뜩이나 흔히 사용하는 수습 사원으로서의 열정과는 단어의 결이 사뭇 다르지 않은가. 옆에선 꼰대연기를 통해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갉아먹고 있는데, 심지어 의미가 모호하게 쓰이는 단어를 수시로 남발하니 극 내내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결국 극 중 주인공의 열정을 통해 사건이 해결되었나? 하면 그것도 아닌거 같다. 

도라희가 심도 깊게 추적하고 뒤를 밟아서 기사를 캐낸 것도 아니고, 선배의 조언을 통해 추측성 기사를 쓴 뒤 팀원들의 도움으로 화제가 되어 이슈가 되고. 마침내 증인이 신문사에 다시 찾아와 이야기가 매듭지어진다. 이 사이에 열정이 끼어들 공간이 어디있나. 주인공은 담담히 짐을 싸야했고 주인공 통제 밖의 이야기로 일이 해결되었을 뿐인데.

비관에 빠진 우지한이 자살하려 하는데 도라희의 질문으로 멈칫하고 기사를 보고, 마침내 전담 매니저가 지한아, 이 기사 봤어? 이제 괜찮아! 하며 아찔한 시간에 딱 찾아오기라도 해야 도라희의 열정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영화 제목은 짓긴 지어야겠고 포스터는 만들어야 되니, 일단 열정으로 캐치프레이즈 따볼까 하는 의혹이 강하게 남는 것이다.

마케팅은 참 쉽지 않구나. 

 

 

3. 결론

 

사실 '꼰대' 라는 인물상의 전달도 마냥 직관적이진 않다. 여기에 더해 직장내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한 접근도 매우 불편한 영화였다. 

강남역의 그 살인사건이 일어난게 16년 5월, 그리고 그 후로 사회는 급물살을 탔기에 그 후에 이 영화가 나왔다면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다. 물론 되려 현대의 여성들이 여전히 직장내 이런 대우를 받구나,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만은.

 

그럼에도, 이번 영화는 보여주고자 무엇일까 싶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공허함이 감돈다. 

박보영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다각도로 조명하지도 않고,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느냐? 그런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마음에 울리느냐 그것도 아니다. 아, 수습 기자나 인턴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처음 30여분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만. 그나마 짚자면 기자 생활의 부조리를 좀 드러냈다, 이 정도 아닐까.

 

아, 대사의 규모도 무지막지하다.

"안녕 귀염둥이 아가씨"를 듣고는 내 귀가 고장난건가 싶었는데, 스피커가 고장난거겠지 아마. 노이즈가 잘 배치되어 저런 단어를 만든 것이라 믿고 싶다.

마지막 카톡이 띠링 거리는건 어딘가 어벤져스4 : 엔드 게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일 하이드라라고 도라희가 말했다면 짜릿했겠지만, 2015년의 영화에서 2020년의 영화를 예견하고 대사를 구성할 순 없겠지. 심히 아쉽다.

 

본 작에 대한 개인적인 평점은, 1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1점은 어딘가 친숙한 배우들을 골라 섭외해낸 조직력, 실행력에 바친다. 

하다못해 스릴러로 넘어갔다면 극이 풍부해졌을텐데. 

 

영화 전반적으로는 당대 인지도 있는 배우 모아모아 급하게 영화하나 찍어봅시다 하고 멈춰버린 각본은 아니었을까 심히 의심스럽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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