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너의 이름은 (Your name, 2016) 리뷰

본문

 

 

0. 들어가며

 

 

7 / 10

 

내가 왜 이걸 재미있게 봤지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데, 나만 그런거 아니겠지

 

솔직히 말해서 과몰입해서 보았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일 하면, 2012년도에 레미제라블을 극장에서 보면서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그에 준할 만큼 위험했다.

이 영화는 오묘하게 감정을 쌓아 올리고선 다양하게 해소시키며, 완급 조절이 무엇인가 보여준 느낌이다.

음악, 영상미, 오글거림 등. 마지막 요소는 개인적으로 불호였지만, 그 덕에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유의 가벼움이 전달되지 않았나 않았나 싶기도 하고.

 

시국이 시국인 만큼 지금 이 리뷰를 작성해도 괜찮을까 조심스럽지만,

미제 자본주의의 현역이신 넷플릭스는 최근에 일본 애니메이션과 제휴를 맺으셨고 집에 있던 시간이 길었던 김에 겸사 겸사.

 

이정도는 모두 용서해주기를 바라면서. 

아, 이번 세기에서 제일 밝은 아틀라스 혜성이 다가온단다. 관측은 4월 말에서 5월 초순까지.

보고나니 시기가 절묘했네.

 

간략히 리뷰를 남겨본다.

 

 

 

 

1. '다음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가 설득되는 이유

 

사실 이 더벅머리 학생 보고 꽃미남이라 해도 되는가는 다른 문제다

 

일단 먼저 드는 생각은 실제 인물이 그려낸 극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이었다.

바꿔 말해,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강점이 다시 보였다. 

 

주인공인 미츠하는 시골 마을의 삶을 지겨워하다 문득,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외친다. 그리고 일어나고 보니 아니? 도쿄의 학생이네. 보통 속도감 있는 전개가 아니다.

도통 설명이 될 수 없는 극적인 전개에, 일단 꿈이구나 하면서 주인공도 납득하고 넘어간다. 바로 이어서 미츠하에 몸에 들어간 타키의 모습과 행동 또한 빠르게 보여주며 그래, 무언가 알 수 없는 특별한 일이 있었구나 하고 넘어가게 만든다. 

 

 

 

물론 소녀는 아니지만, 언젠가의 에뛰드 광고를 떠오르게 한다

이게 좀 신묘한 일이었던게, 실제에선 아무리 배우가 열연을 해도 한계가 있다.

눈을 떴더니 몸이 바뀌었다? 하면 연기에 몰입할 여지가 없다보니, 억지로 교통사고를 일으킨다던지. 관객도 납득할 수 있는 트리거를 만들어주고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몸이 뒤바뀌는 걸 연기한다는 건 말투를 모사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얼굴을 달고 불편한 골짜기를 정면으로 건너는 일이니, 연기를 잘할수록 거리감이 생긴다. 소녀 연기를 기가 막히가 잘하는 마동석을 생각해보면, 불편한 골짜기는 인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구나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직접 사람이 연기하는 건 얼굴의 인상마저 완전히 가져올 수는 없으니 제약이 더 커진다. 반면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본 작에선, 말투를 구현하는 데에만 성우의 연기를 고스란히 사용하고 표정의 결은 그림을 통해 상대 주인공에 맞춰가 효과적으로 설득한다. 그 결과로는  짜잔! 다른 이의 영혼이 들어온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가 기묘하게 납득이 된다. 

 

이렇게 돌이켜 보니,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강점은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 외 서양화 인상파, 입체주의 그림들 볼 때 사실적이지 않다라고 비난하는게 아니라, 미적인 접점을 찾아내잖아. 그런 맥락 아닐까.

 

 

 

 

2. 클리셰를 통한 속도감

 

내용적으로는, 정말 정직하고 직관적인 클리셰를 통해 관객이 상상할 지점을 효과적으로 압축시켰다. 이로 인해 표절의혹이 강하게 있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미츠하가 전생에 타키의 부모님의 원수였고 그 악연으로 인해 운명이 엮였다, 이런 내용을 억지로 구겨넣을 필요는 없잖은가. 운명적으로 얽힌건 분명한데, 왜, 어떻게,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질문을 효과적으로 제한시킨다.

 

다시말해, 사실 포스에는 라이트 사이드와 다크 사이드가 있고 이 중 라이트 사이드의 포스의 영 능력을 통해 다른 시대의 누군가와 우연히 닿았다와 같은 설정을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클리셰 부수기와 복구하기 사이에 갇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내용적으로 관객이 해석해야할 지점이 단순화 되니, 이제 남은건 감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고조시키는가로 영화의 초점이 모아진다.

예를 들면 시간 감각.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늘리고 줄이며 관객의 감정을 한 점으로 수렴하게 만든다. 노래와 더불어 빠르게 일상이나 변화를 담아내는 장면이라던지, 쉴새 없이 타키와 미츠하를 교차 시키며 또 다른 하루가 지났음을 보여주며 빠른 속도감을 자아내는 한편, 운석이 떨어지기 바로 전날, 타키가 미츠하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되려 역동적인 화면을 통해 정지한 시간에 대해 묘사한다.

이런 완급 조절을 통해 극의 전반부와 극의 중반, 후반의 에필로그 단의 시간 흐름은 정말 상이한 구성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이기에 이런 흐름 구성이 보다 용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보기에도 거부감이 적지 않았나. 어벤져스4 정도의 설계가 아니면 실제 사람들이 연기하며 이런 구성을 주긴 힘들지 않았을까.

 

 

3. 빛에 대한 찬사

 

리뷰를 작성하기 직전만 해도, 해수면이 너무 아름답게 묘사되어 수면에 대한 찬사를 바치는 것인줄 알았다.

다시 정리해가며 보니, 해수면 뿐이 아닌 빛에 대한 찬사가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잔잔하고 윤곽을 따지 않은 배경 위로 빛의 질감이 그려지니 무언가 마음이 포근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4. 결론

서사의 전달과 표현 기법, 시간 구성에서 애니메이션으로서 강점을 잘 살렸고, 개인적으로는 효과적이었다 생각한다.

황혼의 시간 직전에 미츠하와 타키가 서로 목소리만 들으며 헤매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으면 저게 뭐지 싶었을거 아냐. 

물론 그러고도 내공이 부족한 이들은 내상을 입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미츠하와 타키가 동시에 같은 대사를 외치는 장면들은 버티질 못하겠더라. 이건 감정을 격화시킨다기 보다 오글거리잖아. 동시에 같은 대사를 읊조리는 건 파워레인저만 허용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같은 대사를 외쳐도 자연스러운 유일무이한 존재들에 찬사를 바칩니다

 

영화는 시간의 산업이라 생각한다.

어찌 되었던 간에, 타인의 시간을 빼앗아 내는게 이 산업의 목적이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이 이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하면 찬사를 바칠 영화가 되고, 

어우 시간 좀 많이 되었네? 하고 되물으면 영화로서 핵심을 놓친 작품이 되는 것 아닐까.

 

익숙한 클리셰와 영상미를 통해 남긴 여운, 아침햇살 판매량의 증가를 남긴 이 영화는 7점으로 기록을 마무리해도 아쉽진 않을 듯 싶다.

 

아니 그래도 한마디는 더 남겨야지.

8년 지나서 재회 했는데 운명적으로 알아본다는 에필로그는 좀 아니지 않냐.

그냥 스쳐 지나 가면서 아련히 돌아보는 정도로 끝내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