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917 (1917, 2019) 리뷰

본문

0. 들어가며

 

6 / 10

 

독일적인 문화 장치를 영국 시점의 전쟁 영화에 녹여낸 기묘한 결과물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자꾸 반지의 제왕이 떠오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무심히 왜 떠오르지? 싶다가. 또 다른 장면에선 또 어, 이거 낯익은 요소들인데 싶고. 영상미와 색채감에 더해, 어딘가 웅장한 소리까지. 그렇게 하나둘 모으다 보니 기억 속에 닿는 지점이 있었다. 예전에 교양 강의로 들었던 북유럽 신화, 그리고 재창조된 이야기의 사례로 바그너가 다루어졌었다. 이 영화와 반지의 제왕 사이에는, 바그너와 니벨룽겐의 반지, 독일 가극들의 향이 남아있었다.

한편으로 가극 / 오페라의 도구들을 영화에 참 잘 녹여낸 듯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로서, 다뤄봄직 하지 않을까. 

작게 기록 남겨본다.

 

 

1. 연출의 집념에 일단 찬사를 보냅니다

 

자, 일단 부비 트랩을 이보다 리얼하게 담아낸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쥐가 앗, 하더니 펑과 함께 함몰되는 순간이란. 물론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것도 신기하지만 말야. 

 

 

그 시절 전장의 모든 요소를 하나씩 보여주마 하고 이를 악문게 보여진다. 그러다 보니, 독일과 영국군의 사뭇 다른 진지 내부 모습과 철조망, 무너진 도시며 군데 군데 보이는 시체들 까지. 사실 이 영화의 절반은 그 시체들의 참상들이 다 꾸며준다. 단순히 끔찍하다, 징그럽다가 아닌 죽음 이후의 모습을 무심히 지나가는 듯 보여준다.

잠시 이 이야기를 이어보면, 이 영화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새로웠다. 전쟁 영화에서 시체나 훼손된 신체의 묘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하기에 최적의 도구지 않던가. 대개 그래서 악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거나, 시체를 좀 세밀히 줌을 하거나 선혈이 낭자하거나. 그런 식의 묘사가 이어진다. 자극적이고, 위험하고, 꺼려져야 한다.

그런데 1917에서는 몸을 가누기 위해 옆에 손을 짚었더니 이미 부패한 시체가 있다던지. 앞으로 전진하는데 알고보니 시체였다던지. 심지어 같이 길을 나선 블레이크(동생)의 죽음도, 선홍빛 낭자한 죽음이 아닌 검붉은 피가 소리없이 빠져나가며 하얗게 굳어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작은 장치들에서 그 말이 낭낭하게 퍼지는 원 테이크로 속이는 기법까지. 영화는 2시간 안에 어떻게든 그 시절의 전장이 무엇인가 다양한 장소에서 보여준다. 그래서 불타는 폐허와 들판 , 늪지대. 온갖 장소를 주인공 뒷편에서 따라보고, 다시 가까운 3인칭 시점을 오가다 보니 어린 시절 벽난로 옆에 앉아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물론 그런적은 난 없었지만, 영화의 톤은 마치 그런 느낌이라 이거지.

 

다만 이 장소, 전장을 조명해내는 이 연출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다가오는데,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큰 강점인 시간 감각을 설프게 버리기 때문이다.

 

 

2. '시간'이라는 요소를 고정 시켰을 때 상실하는 것들

마법의 문이라도 주시하는 느낌. 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인물의 구도는 우리에게 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말한다.

영화, 소설, 수필 등 이야기라는 분류를 모아 놓고 생각해보자.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시간으로 플래그를 꽂게 된다.

다음 날 아침이었단다. 그러던 와중 날이 밝아지더구나. 해가 저물기 시작했단다. 이는 독자, 청자, 관객의 관심을 환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머릿 속에 내용의 순서와 앞전까지 무슨 이야기였고, 이제 시간이 흘러 다음 사건을 진행하겠다는 플래그를 세워주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감독이 심어주는 책갈피랄까.

서사가 길어지며 이야기가 담는 사건이 많아질 수록, 이런 플래그는 보다 유용해진다. 자질구레한 사건 -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들은 밥을 먹고 설거지를 언제 했을까, 엘프는 양치질을 하는가 같은 건 통째로 건너뛸 수 있으니까, 보다 밀도 있는 이야기 전달이 되잖은가. 아니면 장소의 급격한 전환도 시간이 흐름을 알리고 씬을 분리하며 설득력이 높아진다.

 

 

이 영화의 취약점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다양한 전장을 보여주는 기법은 뛰어났지만, 아무리 차량을 탑승하고 총에 맞아 기절을 했다더라도, 원 테이크를 모사한 연속적인 시간 흐름 때문에 장소의 변화가 와닿지가 않는다. 조금 걸으니 참호가 끝나고, 조금 걸으니 죽음의 늪지대와 숲, 그리고 시가지. 물론 그 사이 사이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잇기 위해, 차량을 탑승하거나 폭포에 실려 떠나오는 식으로 극적 장치는 준비되어 있다. 그럼에도 위화감이 드는 것은, 이 연속적인 연출에 의해 장소 뿐 아니라 사건의 발생도 작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쉴틈 없는 퀘스트의 연속이다. 지휘관이 불렀으니 만나러 간다 - 새로운 임무를 받고 이동 - 첫 번째 전장 장소 - 이동 - 두번째 전장 - 이동 - 세번째 전장 - 총 맞고 기절 등. 그러면서 이어지는 맥락 또한, 우연히 부비트랩을 쥐가 건드렸으며 우연히도 적비행기가 코앞에 떨어지고, 우연히도 강에 실려 떠밀려온 곳이 찾아나선 부대다.

 

이렇듯 측면에서, 좌에서 우로 보는 구도는 자주 연출된다. 극적인 느낌을 주는 또 다른 요소.

 

이렇듯 개연성을 살짝 줄이고 압축적으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영화로서는 다소 낯설다 생각한다. 또한 취향에 맞는가 아닌가를 떠나서, 이렇게 우연한 사건과 장소의 전환을 배치한 것이 이 작품이 영화라는 생각보다는 연극의 느낌을 주는 또 다른 이유라 생각한다. 블레이크를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는 스코필드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 구도, 영화도 영화지만 어딘가 레 미제라블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가 아닌가. 뮤지컬 영화로 재구성했다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아닌 극으로 시선을 돌리자, 해석의 여지는 풍부해진다. 사이 사이 들려오는 음악들은 무료해질 수 있는 청각적 신호를 환기시켜줄 뿐 아니라, 극의 흐름, 위기 상황, 영혼이 정화되는 순간 등 오페라의 기법을 가져온 감각을 준다. 물론, 영화관에서 기대한 것이다 아니다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원 테이크식 연출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 다소 아쉬운 모양이 남았다 생각한다. 인물이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빠져들고 해석할 여지가 남아 있지만, 연출 기법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영화사에 기록될 뿐이다. 전장을 애써 꾸미고 기획했음에도, 보다 먼 시점에서 전장을 두루 조명하는 장면이 부족함은 정말 아쉬웠다. 또한 서사를 좀 더 집중하고 갈등 구조를 좋아하는 관객인지라, 영화의 이야기는 너무도 짧았다.

 

 

3. 세심하지 못한 자막 구성은 좀 아쉽지만

 

 

 

감히 번역을 지적할 영어실력은 아니라 자부할 수 있다. 영어, 그게 뭐더라.

다만 이 2차 대전의 영화를 번역하고 자막을 구성함에 있어, 보다 세밀함은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 언어를 해석하고 구분하는 것으로, 영화의  긴장감은 보다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문자를 해석하여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에서는 차이를 두긴 힘들기에, 자막의 구성에서 영화는 더 노력할 여지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어릴 때 보던 첩보물 영화들. 러시아 어를 말하면 꼭 자막을 추가로 달지 않던가. 그렇게 국적을 구분해줌으로서 다른 문화권의 관객은 주인공이 느끼는 피아식별, 위기감을 고스란히 공유할 수 있다.

 

1917에서는 이 국적과 언어에 따른 긴장감이 극대화 된다. 어둠속에서 서로 마주쳐 피아식별이 안되는 상황, 내뱉는 첫 마디와 단어로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많은 동양인에게 있어 이 언어의 차이는 선명히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군과 마주하는 장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하의 은신처에서 프랑스인과 마주하는 장면은 정말 아쉬웠다. 서로 짧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주고 받으며 아이를 통해 소통하는 장면은, 조금 더 감동을 전해줄 수 있었을텐데 말야. 

하다 못해 독일어는 별도 표기, 프랑스어는 이탤릭체 표기 등을 해줬다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지 싶다. 서양인들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다 나오는 영화 보면서 언어 구분 없이 번역되는걸 보면 이런 느낌일까.

 

 

이 외에 번역에서도 사소히 몰입을 흐리는 부분이 있다.

초반의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그리고 상관과 대화에서는 조금 더 딱딱하고 엄격한 느낌으로 번역할 법 했고. sub trench를 굳이 청음초로 번역해야했나 싶었다. 처음에 듣곤 무슨 귀가 좋아지는 풀 이름인가 싶었다. 초소면 초소고 trench면 trench고. sub면 sub지. 

 

 

4. 결론

시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특이점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린 느낌이다. 좋은 의미로 특이점이 아닌, 보다 걸리는 돌부리 같은 느낌.

 

그리고 맥거핀이 너무 많다. 이 또한 밀도 있는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는건가 싶지만서도.

먼저 계절이나 날씨와 관련된 묘사가 그러하다. 칠면조 이야기 한껏 하고 차가운 느낌에 간이 화로까지 다 구성했지만, 음.

그리고 상처난 손을 시체에 짚는 장면 또한, 후반에 뭔가 터지는 복선이겠거니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아홉 손가락의 스코필드 이야기라도 재편하는 줄 알았지. 

총검을 낀 총은 어느 틈에 일반 소총이 되었는지는 감도 안온다. 아, 부비트랩으로 땅에 매몰되도 용케

총은 끝까지 놓지 않았더라. 

메켄지 장군에 대한 경고 또한 사실 무의미 했다. 사람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보고하라길래 이야 끝내 돌격하나 싶었는데. 결국 별 의미 없는 조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테이크처럼 보이기 위한 서사를 구성하는데 러닝타임을 채우기가 어려워, 억지로 우겨넣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좀 넣었으면 써야지. 이쯤되면 영화의 분위기는 친할아버지의 오랜 전쟁 이야기가 아닌, 동네 여느 할아버지가 내가 말이야, 하고 으스대듯 말하는 이야기로 톤이 바뀐다.

 

여러 모로 배우들 또한 고생했을 듯 하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번 작에서는 미스매치라 생각한다. 매우.

얼굴과 눈빛에서, 앞서 경고 받았던 완고함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크 스트롱과 배역을 서로 바꿨다면 좀 더 어울렸지 싶었다.

 

평점은 6점으로 매듭짓는다.

영화사에선 신선한 시도인 작품이겠지만, 덩케르크가 갖는 품위나 묘사하고 싶은 대상이 없다. 그래서 볼 땐 이야 하게 되지만 그 뒤엔 헛점이 느껴지는 작품.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