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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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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7 / 10 

 

사형선고를 감각적으로 안겨주는 방법론

 

킬링디어라는 한국에서의 상영이름은 다소 아쉽다. 

원제인 the Killing of a Sacred Deer은 이 자체만으로 상상의 문을 노크하고, 그 원제에 얽힌 이야기도 고대 그리스의 아가멤논의 출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다면, 그 뒤에 이어질 가족 내의 참상 또한 겹쳐보이며 영화의 풍미는 깊어질 것이다.

 

이 외로 무감각한 응시에서 어딘가 마음을 끄는 음향까지 착실히 누적 시키며,

이 영화가 줄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허탈함을 교묘하게 다듬어 완성시킨 느낌이다. 

그렇기에 킬링 디어는 어딘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가지만 남은 나무가 연상된다.

 

이야기는 짧게 남겨본다. 

 

 

 

 

 

영화의 종장으로 나아가는 걸음

1. 사냥꾼의 이야기

:: 어떻게 덫과 목줄을 걸어야 하나

 

마틴은 사냥꾼의 형상을 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스티븐의 주변 시선에서 관찰할 것이 아닌, 마틴의 고요한 응징의 시선에서 따라가야 한다.

영화 러닝타임의 첫 절반은 이런 마틴의 교묘한 은닉과 탐색으로 흘러간다.

가족 구성원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스티븐과 약속을 하고 또 불쑥 찾아가며 약점과 대상을 판단해 나간다. 이 과정은 너무도 교묘하게 은닉 되고 마틴이 사회적으로 보다 약자임을 노출시켜, 마치 스티븐과 마틴 사이에 숨겨진 관계가 있고, 마틴이 여기에 묶여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다. 간략히 말해, 동성애적 관계, 혹은 그루밍을 연상 시키는 구도가 자주 노출된다.

그러나 마틴의 갈망은 그 형태를 좀 더 깊게 갖추고 있음이 드러난다. 기본은 복수이다. 아버지를 잃는 과정에서, 스티븐은 크나큰 역할을 맡았다. 물론 마틴의 수술과 그에 따른 관리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이는 또한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신의 어머니와 스티븐이 잘 될 수 있을거라 덤덤히 말하는 모습들에서 보이는 마틴은 단순한 복수를 바라고 있지 않다. 이 첫 절반, 탐색의 과정은 한편으로 스티븐을 자신의 '가족' 범주내로 포섭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악의는 숨겨질 수 있었고 스티븐 또한 그렇게 철저히 당한 게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짧게 보고 이별한다는 늬앙스를 풍기며 만난 10분 사이에, 극적으로 바뀌며 영화의 전개는 거대한 급류를 타게 된다.  사냥의 무대는 잘 조성 되었고, 사냥감은 덫에 걸려 약해져 있다. 마틴을 피할 수 없는 죄책감, 그 사이에 킴을 비롯해 가족에 파고든 마틴. 그리고 선명한 저주와 그 결과. 여기에 더해, 사냥꾼의 거죽은 스티븐에게 씌워낸다. 총을 들고 쏴야 하는 이는, 마틴이 아니라 스티븐이다.

 

 

 

 

 

:: 신탁을 받은 듯 경건하고 확실하게

 

스티븐은 철저히 의사고,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 그렇기에 밥의 갑작스런 걷지 못하는 행동에 대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의사적 역량을 동원하지만 치료는 커녕 진단 조차 확실히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스티븐이 고군분투 하는 반면에, 다른 가족들의 태도는 그에 반해 스티븐이 연기를 하고 있나 먼저 의심할 정도로 덤덤하고 순응적이다. 안나는 밥과 킴의 어머니로서, 스티븐의 아내로서, 또 그 스스로의 동기로 인해 스티븐의 행동의 전말을 찾아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종장에 가까워지며 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명에 순응하게 된다. 안나는 영화내에서 사지 마비나 거식증과 같은 행동이 뚜렷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안나는 마틴의 상처를 치료하고, 발에 입을 맞춘다. 어딘가 구약의 선지자를 만난 신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킴과 밥의 말을 안나의 행위들 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원인과 대처를 몰라 당황하고 성급해하는 스티븐의 앞에서, 덤덤하게 자신이 쓰러질 것이라 말하고 죽어감을 말한다. 그리고 마틴이 제시한 선택을 하라고, 조용히 건넨다. 이들 각각이 마틴에게 계시를 받는 부분은 영상내에서도 설명 되지 않아, 정말 모두가 스티븐을 둘러싸고 거대한 거짓말을 하는 듯한 감각까지 안겨 준다.

 

2. 희생제를 꾸미는 방법

 

그리고 이어지는 희생제는, 정말 다채롭게 꾸며진다. 제일 인상 깊은 건 역시 시각적인 효과지만, 돌이켜보면 음악과 영상의 배치 또한 인상깊었다.

 

 

:: 소리의 활용은 혼란감을

 

밥이 처음 쓰러지는 상황, 그리고 하체가 마비된 킴의 도주 장면에서 소리를 이용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음악은 소리로 확대되어, 불편하거나 단순한 소리, 상이한 소리를 긴장감을 심어주는데 활용한다. 특히 킴의 도주 장면에서는, 응시하는 시점을 섞어내어 갑작스런 다리 치료 -> 그 이유를 되짚어 회상 -> 킴의 대사 등을 교묘히 섞어낸다. 이 연출의 기법들은 혼란을 꾸며내는 데에 있어 엄청난 효과를 보여 준다. 그리고 불편한 혼란이 아니다.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 느끼는 혼란감이 아닌, 순수한 인지적인 혼란스러움을 선사한다.

 

 

 

이런 구도, 이런 표정, 이런 응시. 이는 정말 기묘한 몰입을 안겨준다.

:: 교묘한 응시는 몰입을

 

이 영화는 정적으로 응시하는 시점을 정직하게 사용하는데, 각각에서 기묘한 무게감이 있다. 

먼저, 나체를 이용해 긴장감을 주고 푸는 것이 흥미롭다.

어떤 의미로건, 나체를 보는 것은 긴장감을 안겨 준다. 그리고 나신은 각각 안나, 킴, 마틴,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스티븐을 설명하는데 있어 사용된다. 특히 안나는 본인의 관능과 스티븐과 어울리는 완벽함에서, 스티븐을 마지막에 설득하는 방식으로도 유감없이 본인을 드러낸다. 킴은 자신이 성숙했음을, 그리고 마틴과 함께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마틴은 스티븐과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흉터자국을 보여달라거나 심장 상태를 확인해달라며 몸을 드러낸다. 각각의 장면에서 고유한 의미가 부여되며, 화면을 따라가는 것으로 영화에 좀 더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과연.

 

이 외에도, 마틴에 대한 응시는 유독 흥미롭게 나타난다.

스티븐은 표정에서 감정이 드러날 일이 좀처럼 없다. 덥수룩한 수염과 항상 정돈된 머리. 그리고 말끔한 옷들. 그리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기묘하게 표정이 빠져있다. 가장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잘 드러내는 것은 오롯히 안나의 몫이다.

그렇기에, 절제 없이 공허감을 드러내는 마틴을 바라보는 것은 기묘한 감각을 준다. 감정을 공유하는 듯 하는데, 그 너머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틴의 표정을 가만히 응시하는 카메라는, 마치 연금술사에서 읊조리듯 '마크툽' 하며 이것이 쓰여진 일이라 말해주는 듯 하다.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이 배우를 다른 영화에서 다시보거든 먼저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세상에나.

 

 

 

3. 공감이 적어지는 선택들

 

물론 영화가 우와, 어떻게 이런 연출과 구성을 했지 하며 찬사만 일으키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몰입이 크게 떨어지는 순간은, 영화의 전개를 결정짓는 선택들에 대해 공감이 되지 않는 지점이었다.

 

만약 스티븐 머피의 선택들에 대해, 안나 머피의 선택들에 대해 공감이 되었다면

이 영화는 보이지 않는 뱀이 목을 조르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어떠했을까? 혹 둘의, 어쩌면 각 구성원들의 선택 중 하나에 라도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면 이어지는 장면은 어떻게 보일까. 그 때부터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힘을 잃고 기괴한 이미지와 사운드에 이름을 빼앗긴 영화로 전락한다. 

 

가장 핵심인 스티븐은, 합리성 이전에 자신의 권위를 쫓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고도, 지금 선택을 잘못하면 1명을 쏘면서 4명이 죽는걸 보게 될 것이라는 말에 넘어갈 만큼 약해진다. 애초에 거기까지 생각할 거였으면 납치를 하지 않던가. 먼저 사과하던가.

안나는, 스티븐과 닮았다 할만큼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해결해나간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자신의 선택지를 고스란히 줄여나간다. 경찰은 쓸모 없을 것이다. 마틴은 풀어주었다. 찾아가서 묻는 거라곤 왜 다른 3명인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는가. 이 엇나간 주도성은, 알고자 하는 호기심으로 인해 타인의 성욕을 채워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직전에 스티븐에게 자식은 또 낳으면 된다고 말하는 안나는, 앞선 행동의 이유가 모성이 아니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럼 대체 뭘 하고자 한거야.

 

이 중 그나마 돋보이는 인물은 킴이다.

음악 연습을 하며 저녁마다 스티븐과 대화를 하던 킴이, 부모에게 자신이 희생하겠노라 거짓말하고 마틴과 같이 살 것이다 덤덤히 말하는 장면들이며, 하나하나 자라나는 악녀와 같은 기묘한 감각을 준다. 여기에 마틴의 치유마저 실패하자 생존을 위해 도망하는 장면까지. 마치 메데이아의 성장기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밥은, 밥이다.

희생제의 제물로 선택된 밥에게는, 이 영화의 러닝 타임에서 더 큰 배분을 주기 힘들었을까.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스스로 잘라낸 장면에서, 황금 양털을 스스로 벗어내는 양을 떠오르게는 해준다.

 

 

 

4. 결론

 

시작 장면은 강렬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묘사될 모든 것을 덤덤히 응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 대상은 그렇게 매혹적이지 않다.

스티븐을 깨물고 나서 마틴은 말한다.

용서를 구하고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방법은 하나라고.

자신의 팔을 보다 강렬히, 통렬히 깨물어 내는 마틴은 여기서 이미 모순을 그려낸다.

 

자신의 자식 혹은 아내를 직접 선택해 죽이는 고통은, 앞서 마틴이 겪어야 했을 고통과 너무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겪고난 스티븐의 가족은 그 전과 과연 같을 수 있을까.

 

무덤덤히, 차갑게 일어서 나가는 스티븐, 안나의 표정을 보며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일어나는 관객들의 표정도, 그들과 같아도 용서되지 않을까.

 

 

평점은 7 / 10으로 기록한다.

영화를 되짚으며 상상하고 돌이켜볼 여지는 충분히 주었고, 이는 영화의 또 다른 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마틴이 위의 말을 전달하는 장면에 비해 메세지가 얕다고 생각한다.

이미 동류의 메세지는, 2000여년 전에 한 인물이 보다 멋진 말을 남겨줬으니까.

 

표지를 다시 보면 참 교묘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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