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 리뷰

본문

 

 

0. 들어가며

 

7 / 10

닫힌 공간에서 나이 들어가는 사랑이란

한참 어리던 연애를 할 적, 정말 진지하게 주고 받은 질문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연인의 경계일까"

같이 지내다 보면, 생각보다 그 경계를 자주 접하게 된다. 너무 친구 같을 때도, 너무 가족 같을 때도 있고. 연인이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보다도,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왔었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그 중 사랑이 나이 들어 버리는 순간을 보여 준다.

그렇기에 보고난 뒤 감상도 제각각이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모두에게 같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흔한 사랑 이야기이고, 또 불륜 이야기이며, 상처받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보다 선명한 이유는, 앞선 부류의 영화들이 빠져드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러한 형태의 사랑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집념있게 쫓아간다. 

 

짧게 리뷰를 시작해본다.

 

 

 

1. 대비를 통해서야 보이는 이야기들

 

- 새 것도 헌 것이 된다오

 

이 마고의 이야기 속에서, 주변 인물들은 모두 시시각각 경고를 준다.

제일 선명하고 뚜렷한 경고는 근처 수영장에서의 활동 이후 이웃들과 같이 샤워를 하며 듣게 되는 이야기로, '새 것도 헌 것이 된다' 는 말을 건네온다. 직전까지 나오던 이야기는 물론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역시 가감이 없다. 내가 다리를 제모 하든 말든 알아는 볼까, 신경을 쓸까 하던 이야기 중이었으니.

이런 자질구레하고 식상한 이야기는 마고의 상황에 맞물려 무게감을 갖게된다. 이미 결혼을 하고 생활을 5년간 지속 해오던 마고는, 어느날 취재중에 만난 대니얼을 계속 우연히 마주치게 되며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극중 수영장에서 정말 소변을 누는 헤프닝도, 앞선 대니얼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 솔직해지고자 하는 충동감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때마침 듣게 된 이 경고는 너무 선명히 마음에 파고 든다. 이 새로운 사랑 또한, 다시 나이들게 될 것이라고. 물론,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선 그 무게를 알 수 없는게 당연하다.

 

 

 

- 닭 요리 책 만들기와 인력거

 

영상에 담기는 남편 루 와의 생활은, 설렘의 요소를 말하기에 앞서, 어딘가 갇혀버린 듯한 이미지를 준다.

가까이 사는 남편의 가족들과 공유되는 생활들, 집 1층 2층을 오가며 이어지는 생활. 그리고 남편과의 대화는 진지해질 겨를도 없이 실 없는 장난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루 역을 맡은 세스 로건의 혼신의 연기에 힘입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고의 아슬아슬한 감정에 공감하게 만든다. 무언가 오묘한 웃음소리와 아둔해보이는 장난의 연속들. 닭 요리 책이라는, 책에 대한 모호한 열정까지. 어찌보면 루와 그 가족들에 마고는 덜컥 잡혀버린 느낌이라 해야할까.

 

그에 반해 대니얼의 생활은 자유로움을 상상하게 도와준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인력거로 생활하면서 집도 말끔히 갖추고. 보고 있던 가족, 보고 있던 공간을 넘어서 더 넓은 공간으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 바다며, 공원이며, 오전의 커피며 마티니며. 물론 만나는 계기도 좀 더 생동감 있다. 루 와의 만남과 가정을 이루게된 모습들은 우리가 다룰 일이 없지만, 대니얼과의 만남은 이 영화의 시작을 장식한다.

 

그래서 두 남자의 대비는 단순히 설렘과 익숙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5년간 머무르며 나이들어 버린 공간에 갇혀 사는 삶과, 자유롭게 나와 감각에 끌려 사는 삶 그 자체를 대비한다.

이러한 대비되는 구도와 마고의 선택은, 동서인 제럴딘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이 이야기는 다시 뒤에 이어서 가기로 하고.

 

 

 

새 것도 헌 것이 되어가듯 경고를 받았음에도, 그 헌 것을 붙들고 있는게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믿는다.

익숙함에서 조금 더 선을 넘거든, 여기에는 권태로움이 스며 들고 의미없이 다리를 제모하고 같은 수영장을 다니는 10년이 반복될테니까.

마고는 이미 지쳐있음을 말한다. 대니얼에게 30년 뒤에는, 비로소 본인도 남편에게 그만큼 헌신 했으니 키스 정도는 괜찮을거라고 하니까. 

 

 

 

2. 떠나기엔 충분한 이유들

같이 살고, 모든 걸 이미 다 아는데?

 

마고의 일상에 대한 피로함에 대처하는 루의 행동은 어땠어야 옳은 걸까. 이는 모든 연인에게 있어 항상 다가오는 질문이다.

루의 대답은 위와 같다. 같이 살고 있고, 모든 걸 서로 알고 있는 걸.

결혼 기념일을 추억하며 대화를 나눔에도, 새로울 화제는 없다. 결혼한 날을 추억하고자 영화를 보는 일은, 5년 차에 이르러 아름다울 기념이 아닌 빛이 바랜 전통으로 남아버렸다. 이는 연출에서도 교묘하게 바로 식사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정말 영화관 일정이 별 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잠시 영화관 하면 얼마나 그 많은 설렘을 연출해왔는지 생각해보자. 팝콘은 이제 커플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고, 혼자 영화관을 가는 것은 다소 애틋한 감각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는 마고가 닭고기 요리에 대해 지치고, 일상 장난 속에서 성관계로 이으려 하는 루에 대한 불만으로 다시 드러난다. 같이 살고, 모든 걸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며, 그럼에도 일상에 대한 이야기며, 가치에 대한 공유며.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할 텐데. 5년의 시간은 더 새로울 이야기가 없게 만드는 데 충분했지만, 동시에 28살에 다른 미래를 꿈꿀 여지를 빼앗기엔 너무도 짧다. 

 

 

시점은 다르지만 일단 놀이공원.

- 놀이공원, 정적마저 생동감이 있었는데.

 

반면 대니얼과의 하루는 좀 더 새롭고 다름이 있다. 같이 놀이공원에 나서며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이 나오고, 기구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쓸리며 닿을 듯 말 듯 움직이는 장면은 묘한 생동감을 안겨 준다. 

대니얼과의 만나는 순간 하나하나는, 루 와의 대화나 행동과 대비되어 정말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마티니를 시켜둔채 서로 성관계를 상상하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앞선 루와의 긴장감 없는 주방 장면을 연상시키고, 그림을 그리며 자유로이 사는 장면은 닭요리에만 집착하는 루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이어진 놀이공원 장면에서, 마고는 그 여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물론 위의 사진은 마지막 장면이니 참고하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마고와 대니얼 사이의 정적에선,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아쉬움이 전해져 온다.  

 

 

 

이즈음까지 영화를 쫓고나면, 마고의 선택은 자명해보인다.

무료함, 권태로움, 일상을 탈피할 생각이 없는 루와, 새로운 생활과 영감을 안겨다 주는 대니얼. 이 대비와 선택을 통해 영화는 마치 해야할 말을 다 전해주는 듯 하다. 흔하디 흔한 멘트, "마음이 가는대로 행하세요"로 종결을 수식하면, 짜잔! 위대한 현대의 혁명, 인본주의는 승리하고 이 지점에서 어떤 영화들은 끝이 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뒤를 보여준다. 앞서 해온 경고를 그대로 보여주며.

 

 

3. 하지만 모두가 빈 곳을 채우진 않아

- 맘 가는대로 살면 될 것 같지?

 

위 장면에서는 뭔가 기묘한 기운이 오간다.

사랑을 찾아 떠났으나 어딘지 갈피를 못잡고 힘들어 보이는 마고와, 알코올 의존 증세가 돌아와 경찰에 임의 동행을 해야하지만 되려 뚜렷한 제럴딘의 모습은 극명히 대비된다. 약간의 희극적인 부분은, 제럴딘의 금주 축하 행사 다음 장면으로 마고가 마음을 굳히고 루에게 떠나야겠노라 고백하는 것인데, 넘어가고. 

제럴딘은 마고에게 말한다. 맘 가는대로 살면 될거 같냐고. 모두가 인생에서 빈 틈을 느끼지만, 일일히 메우려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하는 제럴딘은 알코올 중독, 금주, 다시 중독을 겪으며 마고와는 다른 의미로 쾌락을 쫓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금주 기간에는 수영장이며 일상의 공유며, 또 조카며 마고에고 많은 이야기를 안겨주었던 인물인데. 이 말을 전해듣는 마고의 표정은 정말 복잡하기 그지 없다.

빈틈을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인가는, 판단하기 조심스럽다. 하지만 다시 그렇게 일상에 지치고 루와의 생활을 그리워할 것이라면, 틈을 채우기위해 버렸던 것이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별하는 순간 루의 고백에 앞서, 조금 더 대화할 여지가 정말 없었을까.

 

 

- 다시 일상이 되어가며

 

마고가 루를 떠나는 장면 전후로, 영화는 마고에게 있어 정말 잔인해진다.

루가 매일 아침 찬 물을 뿌리던게 본인이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며, 대니얼에게 달려가기 전까지의 우는 모습들이며. 정작 그 대니얼과의 생활은 아름다운 피날레로 장식되지 않고, 반복되는 왈츠로 짧게 지나가며 덧없이 시간이 흐르고 이 사랑 또한 나이들어버림을 보여 준다.

그 인상이 선선히 전달되는 장면은, 아무렇지 않게 양치하는 옆에서 속옷을 내려 볼일을 보는 장면. 이는 루 와의 생활에서도 종종 비춰지고 허물없이 샤워하러 들어가는 등 묘사가 되었었다. 대니얼과의 사랑도, 결국 이 시점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슬프기 그지 없다.

 

그 뒤에 위의 말을 듣고, 루에게선 삶에는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며 재결합을 거절 당한다.

마침내 마고는, 그 놀이공원에 혼자 찾아와 그 때 그 기구에 홀로 탑승한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은 다시 울리고, 같은 장소에서 마고는 여느 때보다 슬퍼보인다.

 

 

 

해탈.

4. 결론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글쎄.

먼저 극 중 루의 유머 감각은 선호하지 않는다. 5년을 지낸 것으로도 찬사를 보낸다. 룸메이트였어도 화가 났을텐데. 하물며.

그리고 5년 동안 생활에서 루의 가족 위주로만 펼쳐진 인물 범주는, 정말 갇힌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흔한 오랜 친구 하나 등장하지 않고, 지인은 모두 루의 범주 내에 머물러 있다. 수영장 장면에서 보인 마고는 정말 달아날 수 없는 나이듦에 갇혀버린 듯 보였다. 

 

물론, 감독이 말하는 대로 모든 사랑은 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 방식과 장소가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자유롭게 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니얼과의 생활이 너무도 덧없이 흘러가는 장면은 마고의 빗나간 열망 만을 다루지 않고, 염세적이라는 생각마저 안겨 준다. 차라리 루의 요리책이 성공하는 장면은 생략 했더라면 좀 더 설득력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왈츠 이후는 마고의 비극을 다뤄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충실해서 너무 급히 닫아버린 느낌이다.

 

2019년에 이 영화를 봐서 인지, 중반까지는 마고가 두 남자 모두에게 머무르지 않고 어딘가 다른 직업, 다른 장소로 떠날 것이라 막연히 그리고 있었다. 마고가 바란 것이 다른 남성이 아닌, 미래가 그려지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생각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엔딩의 여운은 보다 깊고 슬프게 다가왔다. 루와 함께 있을 때는 다소 외로운 인상을 주었다면, 이 때의 표정은 그 이상의 공허함을 보여 준다. 

 

 

평점을 정하기에 앞서, 다소의 고민을 필요로 했다.

과연 이 영화를 다시 볼까, 내가 나이가 더 들거든 다른 의미로 다가올까. 다른 로맨스나 불륜, 사랑에 대한 영화들과 차이는 뭘까. 

종합하면 그 여느 방면에서고, 더 큰 울림을 주기 직전에 멈춘 느낌이다. 왈츠의 박자감을 영화의 템포에 가져온 듯하다.

다만 마지막 홀로 놀이공원에 있는 마고의 모습, 그리고 음악의 활용에 찬사를 보내며 7점으로 남긴다.

 

영화를 볼 생각이라면,

연인과는... 보려면 부디 100일 이전에 보는게 어떨까. 4, 5년 씩 연애 하며 찾아오는 권태기 즈음 보면, 헤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선정적인 장면이 있으나 강렬하지 않고, 무던히 연애관, 혹은 결혼관을 염두에 두며 볼만한 영화.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