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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2016)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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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0

 

눈이 먼 퇴역 군인이 총을 빼앗아 드는 순간, 관객 또한 제압되었더랬지

문득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가 뭐 있지? 하고 생각했더니, 애증하는 영화들이 먼저 떠오르고 정작 재미있게 봤다 싶은 영화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래서 학창시절에 선생님들 속 썩인 제자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걸까.

 

그래서 남겨보는 정말 재밌게 봐서 기억에 남던 영화.

한국 제목 맨 인 더 다크. 북미 원제 Don't Breathe. 간략히 남겨본다. 

 

 

 

1.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이전, 감각으로 압도하는 영화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비로소 영화다 주장하는 친구가 있다.

좀처럼 여기에는 깊게 찬성하지 않는다. 영화는 휴대폰으로 본들 영화다. 화면의 크기나 서라운드 음원이야, 영화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디테일의 차이일 뿐이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여기에 주시할 수 있는 화면이 넓지 않다보니 화면이 너무 커져도 영화를 고스란히 감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을 볼 때 화면 구석을 살펴보는 시간이 아까웠고, 덩케르크를 볼 때 또 그러했다. 그럴 바에야 스크린의 크기가 좀 더 작더라도 온전히 살펴볼 수 있는 화면을 즐기는 것도, 괜찮다 이거지. 

 

다만 어떤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보면 좀 더 그 무게감이 깊어진다. 특히 영상을 오밀 조밀 배치한 것보다 소리, 어둠, 밤. 이런 요소를 많이 사용한 영화들이 더 그렇다. 그 완벽한 예시로, 이 맨 인 더 다크가 영화관에서 보면 더 매력적인 영화라 말할 수 있겠다.

 

어딜 보고 쏘냐고 묻지 말자. 충분히 잘 쏜다.

자. 여기서 가장 큰 적은 장님인 퇴역 군인이다. 이미 눈이 먼 상태로 지낸지 좀 되었는지, 어둠속에서 소리를 이용해 기가 막히게 주인공 일행을 탐지하고 추격 해낸다. 필연적으로 따르는 어두워지는 영화속 장면들, 그리고 숨소리 하나하나 두려워지는 적막감과 긴장감의 사이에서, 영화는 관객의 감각을 압도한다. 

 

이 감각의 압도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근래에 꽤 청각에 몰두하는 시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몇 편 있었다.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괴물들과 투쟁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이라던가, 산드라 블록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던 버드 박스(2018)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영화들은, 상대가 고스란히 인간은 아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야 대놓고 괴물이고, 버드 박스는 인간들과 대치하긴 해도 미지의 존재가 앞선다.

그렇기에 소리를 영화 런타임에 걸쳐 장시간 집중했다 뿐이지, 영화의 본질은 크게 앞선 공포영화나 괴수 영화들과 다름이 없다. 나를 쫓고 있는게 미스트(2008)의 안개속 괴물이건, 우주전쟁(2005)에 나오는 오징어 모양 기계건, 큐브2(2003)에 나오는 갈아버리는 육방체건 소리가 나면 찢어버린다는 것은 같다.

 

맨 인 더 다크는, 영화속의 추격자가 사람, 그것도 아주 능숙한 장님인 것에서 강점을 갖는다.

앞선 영화들은 몰입의 대상을 고스란히 주인공으로 이끌어준다. 반면 이 영화는, 추격자 또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장님 또한 인간의 감각으로 상대방을 탐색하고 추격한다. 이 퇴역 군인이 발로 문 걸쇠를 확인하고 손으로 더듬으며 다시 확인하는 장면. 그리고 몸싸움 과정에서 상대방이 확인이 안되니 손으로 더듬으며 목을 조르거나 격투하는 장면들 까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기에 행동하는 장면들은 이 가차없는 추격자의 감각 또한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의 절망감 또한 더 크게 공감할 수 있도록 관객을 이끌어준다. 와 괴물이 쫓아오네는 이미 자포자기 하면서 처참히 죽어나가는 장면들로 가득 찼을 텐데, 나이든 장님 노인이 돈이 많다네? 하고 방심 잔뜩하고 들어왔다가 현란한 근접 무술로 제압 당하곤 즉사. 어떻게 잘 숨어서 살아 나가겠지 하다가 신발로 인해서 다시 추격 시작. 아슬아슬하게 이대로만 있으면 벗어날 수 있겠지 하는 환상은 상대방이 인간이기에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머니가 최초로 죽으면서 생기는 그 갑작스런 적막의 순간은, 정말 영화를 보던 중 본인의 감각 또한 압도됨을 느낄 수 있다. 웅장함으로 인한 압도가 아닌 무언가 다른 감각인데, 이건 정말 영화관에서 느껴볼 만 하다.

 

 

2. 약간의 비틀어냄을 모으고 모아낸 이야기

 

여기에 영화는 작은 비틈을 모으고 모아서, 보고 있는 이로 하여금 불편할 만치 고민하게 만든다.

 

나홀로 집에가 떠오른다. 사실 영화적 플롯은 큰 차이가 없는게 아닐까.

주인공 일행은 무장 강도다. 

그리고 좋든 나쁘든 집주인인 눈 먼 노인에게 총기로 위협하며 제압을 시도했다.

그럼 고스란히 악인이냐 하면, 또 설득력을 주기 위해 아스라지는 도시에서 동생과 벗어나기 위한 누나의 마지막 범행. 으로 수식어를 장식했다.

 

그래도 도둑질은 나쁘고, 강도질은 더 나쁜데, 총기를 동반한 무장 강도잖아? 하는 타당한 도덕적 질문에 대비해서, 이번엔 노인에게 엄청난 비밀을 숨겨놨다.

자신의 딸을 사고로 죽인 이를 납치해서, 임신을 시킨 뒤 자신의 아이를 낳을 때까지 감금하고 있던 것.

이 쯤 되면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노인이 뭔가 죗값을 치르긴 치러야 될 거 같고, 아니 그 전에 감금 되신 분도 그렇게 선한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딸이 죽어 받은 합의금을 도둑질 하려는 주인공 일행은 여기서 제일 죄인은 맞는 것 같고.

이렇게 뭔가 조금씩 비틀고 악역 선역을 섞어 놓고 보니, 영화는 이제 그런 고민 접어두고 생존 부터 해보자 하고 강렬하게 던져온다.

 

그래서 열심히 어둠을 헤쳐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앞서 미루어 두었던 질문들이 나타나며 찝찝한 감각이 남는다.

결국 잘한 것 없는 강도인 주인공이 생존해서 저렇게 딸 죽음에 대한 보상금 들고 도망친게 과연 합당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며, 그렇다고 주인공이 대신 감금 당해서 노인의 새로운 자식을 낳을 때까지 있어야 했나 싶은 원초적인 공포가 뒷덜미에서 아른거린다.

 

그리고 사실 이 배경만 하더라도, 뭔가 뼈를 치는 배경 들이다.

산업이 쇠퇴해서 몰락 해버린 도시, 앞선 퇴역과 보상금만 남아 폐쇄적인 삶을 유지하는 노인. 새로운 삶을 꿈꾸고자 다른 도시로 나가고 싶어하는 청년들이며. 이미 가정으로서 기능이 무너져가는 도시 주민들의 모습. 딸의 죽음에도 합의로 넘어가는 부자들의 행태까지.

사실이라기 보다, 미국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의 단편을 오려 모아붙인 모습이다.

그래서 찝찝함으로 인해 영화 내용과 인물의 배경 들을 돌이키고 보면, 아까의 덜 풀려난 감각은 씁쓸함으로 돌아서며 영화의 끝맛을 완성시켜 준다. 세상에.

 

인생은 실전이란다, 아이야.

 

 

 

3. 결론

영화가 주는 긴장감은 강력하다. 여느 추격 영화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오라를 풍기는 할아버지가, 은신술을 쓴 듯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물론 영화가 이어지며, 필요 이상으로 끌어 지치는 감각은 다소 있다. 아무래도 주인공의 수도 적고, 적도 노인 한 명인데 정말 감당 안 되게 끈질긴 것도 한 몫 한다. 이 정도 근성이면 할로윈(2018)의 마이클 마이어스도 속이 쫄깃 해질 거다. 다시 위 사진의 팔근육을 보자. 저 나이에 저 정도 피지컬이라니. 

 

영화 평점은 7점으로 기록한다.

후반부에 다소 억지로 늘인 듯 지치는 지점이 있어 더 높이 주기는 아깝고,

그럼에도 관객과 영화관 안을 모두 압도하던 눈먼 노인 (스티븐 랭)의 위엄에는 찬사를 보낼만 하다.

촉각부터 청각까지 잘근잘근 압도하는 영화를 찾는다면, 맨 인 더 다크를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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