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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The Matrix, 1999)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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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9 / 10

인본주의적 질문에 대한 영화적인 답변, 가히 기록 남길만 하다

 

모든 서사에는 시작이 있다.

3부작에서 이 매트릭스 1편이 차지한 입지가 그러하고, 내 영화를 쫓는 이야기의 시작 또한 이 명작으로 시작된다. 어릴 때 하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봐서 그런지, 1999년이라는 이 영화 상영 기간이 쉬이 와닿지 않았다. 세기말 중에 세기말 아냐. 그래선지, 저 시기 전후로는 쟁쟁한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산재해있다. 공포영화의 걸작, 링(The Ring Virus, 1999)라던가, 미이라가 세상을 멸망시켜르드는 미이라 (The Mummy, 1999),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개척자인 블레어 윗치(The Blaire Witch Project, 1999). 국내에서는 여고괴담 2편이 저 해에 개봉했었다. 다시보니 공포영화의 한 해 였네. 아,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도 있던 년도다. 이걸 놔두고 갈 순 없지.

 

그 쟁쟁한 영화들 사이에서, 저렇게 듬직하게 서있는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와 모피어스가. 로렌스 피시번은 최근 마블에도 나오면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왜인지 자꾸 모피어스로 기억나더라.

 

매트릭스 1편은 그 쟁쟁한 1999년을 아울러 세대를 전율케 했던 수작이다. 그리고 세기말 이라는 1999년, 그 환상적인 시점과 아우러져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1997 외환위기만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많은 이들이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은 남는다.

 

조심스럽게, 시작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자. 

 

 

 

1. 시대를 보여주는 인물상, 해커와 구세주

위 사진을 다시 봐도, 한 눈에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다.

정상인은 아니다.

 

매트릭스는 통상 알 수 없는 일에 몰두한, 해커로 묘사되는 이들로 주인공들을 제한한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이미 각각의 전설적인 해킹으로 저 너머에서 이름 날리던 이들이었고, 네오는 보자마자 찬사를 바친다. 

그리고 주인공인 네오는 직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일로 항상 피로해 보이고, 밤에는 그렇다고 파티나 사교를 제한하며 해킹에 몰두하는 - 혹은 '그 때 부탁한 그 것'을 처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네오에게 변화의 순간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모니터에 나타난 메세지들. 그리고 그 내용은, 토끼를 따라가라는, 자신에게 닥칠 일을 먼저 내다보는 듯한 지시였다. 토끼를 따라나서면, 저 너머 어딘가 엘리스가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겠지.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그 세계가 네트워크를 거쳐 나타나는 실제 세계라는 것에서, 그 당시 세대의 갈증이 느껴진다.

 

1999년을 직접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감각이었을지 한번쯤 생각해 본다. 단순히 한 종교, 혹은 로마 라는 한 국가 체제에서 기인한 연도 체계일 뿐이지만, 생각 보다 많은 이들이 1999, 세기의 종결을 알리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유명한 세계 멸망에 대한 예언도 세기말 분위기를 일조 하는데 한 몫 했고.

다른 특이점이라면, 시기적으로도 닷컴버블의 정점에 위치했다. 모두가 인터넷의 파급력을 예찬 했고 해커들에 대해 기묘한 존경의 감각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인식은 매트릭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밖에서는 평범한 회사원, 밤마다 자신의 분야에 매진해서 역량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네트워크 상의 전설. 이런 환상은 베이트 (Bait, 2001)에서도 드러난다.  

 

종합하여 정리하면, 와우 신규 확장팩 런칭 직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지금 세기가 끝나며 무언가 거대한, 새로운 변화가 있길 바라는 막연한 소망과 세계 종말이라는 예언에 대한 작은 기대감, 그리고 닷컴 버블로 이어지는 새로운 기술과 새 직업에 대한 예찬까지. 매트릭스의 핵심 세계관과 인물설정은 이 지점에서 관객의 상상력과 마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다시 봐도 괜찮지 않을까. 

다만, 저 때 저 패션은 저 당시에서 강인한 인상을 남겼음을 명확히 하고 싶다. 모두 저렇게 입진 않았다.

 

 

2. 사이퍼의 선택, 인본주의에서 바라본 자유주의의 단편

시대를 거듭하며 재조명 받는 아저씨. 이름도 싸이퍼.

:: 인본주의의 극단, '인류'의 해방

 

모피어스는 지극히 광신자다. 네오, 혹은 the Chosen One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신봉하고 또 그가 돌아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믿고 있다. 이 믿음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 인데, 인간을 초월하는 '그'가 존재할 것이라는 존재의 믿음. 그리고 그의 권능을 행사에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행동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들 각각의 의의와 가능성은 매트릭스 2편을 관통하는 질문이 되니 살짝 덮어두기로 하자. 여기서 핵심은 구원의 주체가 인간이며, 구원의 대상 또한 인간이며, 방향성 또한 인간에 대한 기계문명의 구속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 인간, 인간에 대한 신봉이며 이 신념이야 말로 모피어스를 고스란히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그 자체로 고귀한 가치가 있으며, 그를 해방하는 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라는 굳건한 가치관이 기반한다. 인본주의의 확장에서 신격을 갖는 구세주를 믿는 것도 아이러니 하지만, 인류의 해방을 최우선 하는 가치관을 이 글에서는 인본주의의 범주로 보고 논의를 이어간다.

 

다시 보니 '광신'으로 두기에 그만큼 악한 신념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해방하는 것은 많은 영화나 매체에서 선하거나 위대한 일로 다루어져 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만 해도 주인공의 굴곡 있는 인생사와 더불어 해방이라는 투쟁을 잘 담아내어 성공했고.

자유에 대한 예찬과 인간에 대한 예찬은, 근현대에는 거의 동격으로 다루어져 왔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각 개인의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자유의 끝에 비참한 삶이 있다면 어떠할까. 그리고 이를 미리 설명하지 않은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 받았다면 이는 공정한 선택 이었을까. 이 영화에서는 광신자의 반대편에 유다를 배치하고, 다음 세대의 구세주에게 각각 영향을 주고 대립하며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의 깊은 결합을 조금씩 뜯어낸다.

 

 

 

 

옥수수쌀죽 같은 무언가. 이는 후대에 이르러 설국 열차의 그 바로 대체된다.

:: 오로지 진실 뿐인 고귀한 삶의 모습

 

선택의 끝에 다가온 자유는 새롭지만 아늑하진 않다. 유일한 식량은 무슨 맛인지 모를 몸에 좋은 미네랄이 혼합된 죽이고, 일상은 함선 내로 한정되며 인간학살기계인 센티넬을 피해 다닌다. 기껏 새로운 경험이라곤, 다시 가상세계로 들어가서 허상 속에 경험하는 것이 전부다. 쿵푸를 할 수 있지만, 정작 현실에선 쓸 일도 없다. 미래에 다가올 ar / vr 게임들을 미리 예견하고 풍자한게 아닐까?

복장 또한 눈에 띄는데, 매트릭스 안에서 입은 검은 코트와 선글라스는 무색할 만치 뜯어지고 헤진 옷만을 입고 다닌다. 또 열추적 회피 및 금속재로 구성된 함선의 한계인지, 내부는 다소 추운듯 묘사되는 장면이 많다. 이 궁핍한 현실 속에서 사이퍼는 네오에게 되묻듯 말한다. 진실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자유의 개념은 시대 마다 미묘하게 대상이 바뀌어왔다. 근래 가장 이슈가 되었던건 노동 시간의 자유지만, 조금 더 올라가면 표현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이 다루어졌던 것 같고. 이런 인간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개별 선택을 존중하자와 맥락이 같다. 하고 싶은걸 해라, 하고자 하는 것을 선택해라. 만약 선택이 불가능한 이들이 있다면? 나름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행위라 믿는 것이고. 

 

모피어스의 구도자적 시점에서는, 저 기계안에 갇힌 이들은 모두 선택이 불가능한 이들이다. 기계로부터 현실에서의 삶을 박탈 당하고 선택할 기회를 빼앗긴 이들. 저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야 말로, 인간 위에 서서 인간을 억제하는 게 없어야 한다는 거룩한 믿음의 실천이다.

그러나 그 뒤는 앞서 서술하듯, 비참한 현실이다. 가난과 궁핍, 죽음에 대한 위협. 이를 만약 알고도 속칭 자유를 선택하는 이들 뿐일까? 모피어스는 인본주의에 종교적 광신을 더해 다가왔다면, 그 대척점에는 지극히 선택의 자유와 현실성을 대표하는 사이퍼가 있다.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 본 저 인자한 미소를 보라. 

::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한다면, 사이퍼의 선택은?

 

사이퍼는 현실 세계의 이 척박함은 견디지 못하고, 매트릭스 안으로 돌아가 부귀와 권력을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시대를 거듭해가며 재조명 받고 있다. 영화를 처음 봤던 시기만 해도 동료를 팔아 넘기고 저럴까 하는 도덕성 비판이 보이곤 했는데. 요새는 마냥 그렇진 않은 듯하다. 

 

인간의 자유에 있어서, 대략의 한도가 있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모피어스를 넘기는 것 또는 시온을 넘기는 것 외에는 매트릭스로 돌아가는 방법이 없다면 어떡해야할까. 그 와중에 모피어스에게 사기 계약 당했다 생각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모피어스는 적어도 불완전 거래를 행했다고 생각한다. 알약을 선택하고 따라오는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의 선택에 따라 생명의 위협과 함께 비가역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으며, 지급되는 보수는 없고 생명 수당 또한 없다고 사전 공지 했어야지. 아, 머리도 대머리 부터 다시 길러야 한다 공지해야 했다. 거기다 이후 생활하는 곳 또한 말이 함선이지 하는 일은 원양 어선과 다르지 않다. 물자가 부족한 환경에서, 언제 재보급이 가능할지 모르는 여정을 떠나며 물속에서 거대한 생명체를 건져내지 않던가.

 

다시 돌아와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이퍼의 선택을 바라보자.

지금 시대에 이르러, 생각보다 설득력 있다 생각한다. 일단 인간의 고귀함 위에 존재하는 선택이다. 내 구속되지 않은 삶을 버려서 라도, 안정적인 행복과 쾌락을 누리고 싶다는 의지인데 요새 다들 그러지 않은가. 그렇게 수험 공부를 하며 버티고, 친구 돈 다 떼어먹고 해외로 도피하는 사람도 있고. 사이퍼 유형의 인물은 비난 받기 이전에, 이미 사회에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또 성공한 사례가 보인다. 극 중 사이퍼 또한 다른 동료의 생명을 팔아서 실제로 성공할 뻔 했다. 모피어스는 사로잡혔고 네오나 트리니티 까지 생명을 위협당했으니. 정리하면, 사이퍼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 되묻기 이전에, 실재하는 선택이다. 

 

 

이 사이퍼와 모피어스는 각각 네오에게 영향을 끼쳤다. 사이퍼가 보여준 욕망을 부정 하기엔 모피어스의 신념은 방향을 잃기 쉽다. 실제로 길을 잃고 불공정 거래에 빠지지 않았나. 반면 사이퍼처럼 사는 이만 있었다면 정보의 이득을 통해 타인을 헤치며 성공하는 이만 남았을 것이다. 이 둘을 모두 겪고 나서야, 네오는 매트릭스 3편에 이르러 아키텍쳐에게 '자유'가 아닌 '평화'를 바란다 말한다. 이 정도면 설득력 있는 절충 아닐까. 

다만 매트릭스 1편만 놓고 보았을 때, 네오의 구세주로서 각성을 다뤄야 하는 만큼 사이퍼는 악역으로, 모피어스는 구출해야 되는 대상이자 스승으로 다루어짐이 되려 아쉽다. 자유주의 물결의 끝에 인간으로서 가치를 잃어가는 것을 경고 하고자 함 이었을까. 

 

3. 실험적인, 그리고 전설이 된 효과들

:: 불릿 타임.

 

매트릭스는 몰라도 이 효과나 이 자세는 알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서 요원들은 총알을 회피함을 보여주며, 빠른 몸의 움직임에 잔상이 남는 듯 묘사되고 그려졌다. 

그러나 네오의 이 옥상에서 총알 회피 장면에 이르러, 총알의 움직임과 맞춰 시간을 한없이 느리게 진행하도록 바꾸고, 시점은 총알의 경로를 추적하며 절묘하게 총알을 피하는 모습을 담아 냈다.

물론 영화 시작 부터 거미나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자세를 취하며 발차기 하는 트리니티의 모습도 있지만, 이 장면이야 말로 매트릭스를 상징하는 장면 아닐까. 이후 트리니티가 요원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Dodge this' 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 또한 완벽하다. 특수효과 이야기 하다가 뜬금 맞지만, 저게 진정 걸크러쉬 아닐까. 

 

요원은 이렇다. 요샛말론 둠칫둠칫

 

구도와 썬글라스, 블랙수트, 총의 선으로 이어지는 압도적인 장면

 

물론 저 bullet-time. 혹은 bullet-dodge 장면이 유독 강렬한 것이지 다른 빼어난 효과들도 많다.

초기의 기계 벌레를 삽입하고 적출하는 장면은 정말 뒷덜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처음으로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장면은 어딘가 터미네이터2의 향수도 난다. 모피어스를 구출하며 헬기가 빌딩에 충돌하는 장면은 또 어떠한가. 매트릭스는 이 시간을 늘이고 줄이며, 인물의 초월성, 충돌의 무게감 등 모든 것을 담아낸다. 

 

작게 음악에 대해서도 예찬하고자 한다. 오라클을 만나러 전 크루가 매트릭스로 이동할 때, 그 때의 음악은 강렬하고 짜릿하기 그지 없다. 지금 돌이켜 보니 왜인지 토르 : 라그나로크(Thor: Ragnarok, 2017) 가 연상된다. 

 

 

4. 인간에 대한 예찬

매트릭스는 생각과 상상, 꿈의 세계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네오는 각성하며 죽음에서 돌아오고, 매트릭스 내에서는 총알도 멈추고 날아다니는 능력을 보여 준다. 시스템의 관리자이자 프로그램인 요원들을 뛰어넘는 인간의 가능성을 말하는데, 오늘날 AI와 자동화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희망적 이지 않은가.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 전하는 것이 있다더니, 매트릭스가 그렇다.

 

그리고 이 각성의 계기도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렇다. 사랑이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기계들이 불쌍..한 게 아니라 죽음에서 회귀할 만큼 강한 동력이라는 거겠지. 트리니티의 고백에 힘입어 다시 깨어난 네오는 스미스 요원을 간략히 제압하고 현실로 돌아온다. 앞선 모피어스의 구출에 이어 매트릭스 속에 홀로 남아 죽어가는 네오, 그를 구해낸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외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끝없는 인간에 대한 예찬의 결말은 네오로 완성이 된다. 숨은 출생 비화, 혈통의 특이성도 없이 온전히 깨달음을 통해 매트릭스에서 가장 자유로운 힘을 얻는 과정이란. 물론 2편, 3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론의 여지는 있다. 그 각성에도 구멍이 있어 스미스 요원이라는 오류를 만들어 냈고, 생각과 상상의 자유라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일 힘에서 실제 기계를 터뜨리는 물리적인 힘으로 변모하며, 네오라는 인물이 주는 메세지는 약해진다.

그럼에도 모피어스를 구출하고 홀로 남겨진 매트릭스에서, 사랑을 통해 생명을 회복하고 각성하는 장면은 당시에는 오그라들기 보단 가슴 깊이 먹먹한 울림을 남겼다. 물론 지금은 살짝 과도한 사랑 예찬 아닌가 생각도 들고.

 

 

 

5. 결론

이름들 또한 제각각 재미있다.

꿈을 주관하는 신인 모르페우스에, 삼위일체. 주인공은 부활한, 새로운을 뜻하는 네오다. 트리니티와 네오, chosen one에서 다가오듯이 영화는 기독교적 상징에 기대어 해석해도 재미있게 읽힌다. 아, 배 이름은 또 느부갓네살 - 바빌론 왕국의 왕 이름이다. 이래저래 다양한 곳에서 상징과 이름, 암시들을 숨겨놨으니 어지간한 덕후들이 옹기종기 모여 만든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상상을 증폭시켜주고 시작하게 해준 영화라 정말 감사한 작품이다. 이때의 숫자와 기호들이 비처럼 내리는 장면은 오늘날에도 방송의 효과에 응용될만큼 영감을 주곤 했으니 나만 감사를 느끼진 않는 듯하다.

 

평점은 9 / 10, 감히 그 무언가의 시작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도 내가 영화를 아직도 좋아하는 이유를 평가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었다.

썬글라스나 기계 문명 지배를 보고 이거 터미네이터2 아류작인가요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싶기도 하고, 메리 수 까진 아니더라도 명확한 인과관계없이 주인공이 다 부수는건가요 묻는다면 또 할 말이 없다.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고 해야하나. 네오의 뉴런은 특수한 구조다 라고 하면 스타워즈 미디클로리언이랑 무슨차이야.

그럼에도 3편까지 쌓아나가는 영화의 시작으로 이 영화는 그 광채와 무게감을 더하고, 그 뛰어난 특수효과와 액션씬들에서 주는 쾌감. 서양의 영화에서 재해석한 근접 격투장면들까지. 여러모로, 다시 뜯어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그리고 AI에 대해 연구가 활발한 지금, 다시한 번 특집으로 재조명 한다 생각하면야.

1점의 여백은 마지막 총알을 멈추는 것까진 좋았으나, 스미스 요원에 들어가 터뜨리는 장면, 하늘을 나는 장면이 짜릿함 보단 허탈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남긴다. 2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하긴 하지만서도, 어딘가 1편으로 끝나지 못할 이야기가 결말과 함께 풀림은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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