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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2 (Frozen 2, 2019)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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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스타크래프트 2, 라스트 제다이에서 느낀 익숙한 실망감을 여기서 또 느낄 줄이야.

 

 

4 / 10 

 

 

누군가는 여기서 옆동네 아서스 왕자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했는데, 내 느낌은 그냥 별전쟁2가 떠오른다.

그 게임은 어떠했냐 되짚으면, 입체감이 생긴 그래픽과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로 무장하여 이야, 이거구나! 싶다가. 좀 더 깊게 살펴보면 다가오는 빈약한 내실에, 껍데기 뿐이구나 하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1편에서 굳건히 쌓아올린 인간에 대한 고찰, 배신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가 짐 어서' 라던지, 타락이라던지. 젤나가에 맞서기 위한 필요한 과정이었다던지.

선과 악, 인간의 생명에 대해 고찰하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뭉뚱그려 버린 '그보다 큰 악' 은 정말 게임에 대한 몰입감 마저 줄여버렸다. 사람은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보다 상상하기 쉬울뿐이지, 그 이상을 상상하긴 힘드니까. 

 

겨울왕국2를 볼 때에도, 비슷한 씁쓸함이 입안을 맴돈다. 영화를 보며 우와...하고 나서는 별 감흥이 남지 않는다. 그 때 그 인물은 왜 그랬을까 하는 고민보다는 이야, 이젠 저런 것도 찍어낼 수 있구나. 그러다보니 인물간의 동기를 충돌 시키고 이야 저 나쁜 새끼 하며 어그로를 끌어 당기고, 시대적으로 페미니즘과 같은 이슈를 교묘히 녹여낸 겨울왕국(Frozen, 2014)와는 몰입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래도 영화 내적으로도 다뤄봄직한 이야기들은 있고, 외부적으로도 스크린 배정 때문에 이슈가 있던 만큼, 보고 기록 남겨둘만한 가치는 있다 생각하였다.

 

2019년형 최신 동화 이야기,

기술의 발전이 서사의 발전과는 다름을 여실히 보여준 영화,

내실 없는 아름다움이 주는 공허함.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겨울왕국2 에 대한 리뷰을 간략히 남겨본다.

쿠키는 있다고 들었으나 무언가 피로감에 쓸려 나와버렸다. 혹시 리뷰에서 이런게 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상상한 내용이 쿠키영상에서 나왔다면야, 그러려니 해주시길.

 

 

1. 아름답고 섬세해진 영상, 그러나 보다 쉽게 상상되는 상업적 활용들

디즈니의 근래 상업적인 행보에 새삼 말을 덧붙여 뭘할까.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그런거다. 라푼젤(Tangled, 2010)을 보면서 이야, 이건 돈 벌려고 각 잡았네? 하는 이야기는 아무도 안할 것이다. 음... 풍등? 라푼젤 가발? 나라면 안 산다. 그러나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 2017)를 보면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다. 이야 저거, 인형 장사하려고 이 꽉물었네. 

얘요 얘. 이 인형 산 흑우 없겠지?

그리고 이번 작품은, 그 디즈니의 상업화 내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야 저건 "안나와 올라프의 아찔한 얼음 보트!" 겠고. 저건 "엘사와 함께하는 고요한 얼음 궁전 노래방" 이라던지. "엘사의 3D 얼음 체험 홀" 정도 되겠는걸? 아니면 "안나와 함께하는 스톤 자이언트 피하기" 도 나올지 모르겠다. 굳이 샐러맨더의 필요 이상의 지분과 어필을 제외하고서라도, 이 모든게 디즈니 월드 및 인형을 팔기 위해 최적화 되어 있다는 느낌을 영화 내내 받았다. 전작에서는 스토리에 좀 더 집중하게 되어선지, 아니면 올라프의 역할과 캐릭터 성이 명확해서였는지 딱히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만 유독 본작에서 이 상업화의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공정히 말하자면, 영상미는 훌륭했다.

 

문제는, 어딘가 혼이 빠져나간 듯한 미적 감각이라는 것이다. 굳이 첨언하면 예쁘다와 아름답다의 미묘한 차이.

연출 효과로 인상적이었지만 뭐지 싶은 부분을 짧게 짚자면,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저 가운데 있는 분. 저 분이 참.

- 추억을 잡아주는 크리스토프 솔로, 그래도 왜 넣은걸까

 

글의 다음 소문단에서도 다룰 내용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인상 깊었다. 어딘가 Westlife나 90년대를 아우를 것만 같은 감성에, 순록들의 노래와 자연스러운 표정들, 아카펠라 구성 등 능수능란하게 넘어가는 것에서 감탄했다. 물론 영화 전체적으로는, 이 장면을 보면서 화장실 가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의 영화의 서사를 짚으며 다시 말하겠지만, 굳이 이렇게 까지 시간과 음원적으로 깊게 파고들 위치가 아니다 보니 몰입감이 사라지는 곳으로 전락했다. 

 

왜인지 떠오른 이분들.

 

- 엘사의 솔로 파트와 '소리'를 쫓는 장면들

 

유독 눈에 들어왔던 건, 배경이 모두 어두워지며 엘사의 마법과 정령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차는 장면들이다. 영화의 초반과 엘사가 어머니의 말에 따라 도착한 곳에서 등장하는데, 연이어지는 폭죽쇼를 보는 듯 아름답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영화와 어우러진다기 보다, 오히려 엘사의 시점이 일반인과 동떨어져 있음을 애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되려 이 장면들로 전달되는 것은, 기술적으로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구현가능하다며 외치는 게 느껴진다. 겨울왕국 3 즈음에는 홀로그램, AR, VR로 이 장면 고스란히 연출하겠구나, 싶은 정도.

 

 

위의 두 장면은 뛰어난 장면 구성이나 기술력이 돋보임에도, 유독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특징이 나타난다.

주인공의 감정선이 갑자기 급발진 하는데, 오히려 그 급발진을 오래 해주십사 집중해주고 연출을 길게 잡아준다.

 

거기에 더해 결과들 또한 사실 민폐들이다.

엘사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고민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에잇 몰라 소리를 따라 가겠어 하더니 정령을 깨우고 아렌델은 붕괴위기. 

크리스토프가 청혼각을 재보겠어 한 뒤 순록들과 합을 맞추다 일행 놓치고 리타이어. 

이 감정의 급발진들은 영화 내적으로도 부자연스러운 사건 전환의 장치로 쓰이며, 무언가 이야기 배치가 허술하지 않아?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도, 전달력 있고 공감 된다기 보다 어딘가 울리는 공허함이 느껴진다.

 

 

2. 여행의 동기와 목적을 흐리는 병렬적인 배치들

자, 일단 그렇게 아렌델은 붕괴 위기에 처했다.

물론 붕괴 위기라기엔 미묘하다. 땅이 울리고 돌풍이 불고 불과 물이 사라졌는데, 마을 사람들은 다치고 죽은 이 없이 모두 성 앞의 공터에 나와 캠핑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아렌델 구출 원정대. 혹은 비밀의 숲 원정대에게 있어서도 아주 얕은 행동 동기를 안겨준다. 잠시 옆동네 토르 이야기를 되새겨보자.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닌 사람들이다. 이 원정대는 시작부터 아슬아슬하다. 일단 사람들은 다 살렸잖아.

 

그러다 보니 원정대, 모험가 집단으로서 결집과 구성이 극심하게 허술하다.

그런 의미에서 Fellowship중의 Fellowship, 반지원정대를 잠시 보고 넘어가자.

 

0) 반지의제왕 - 반지원정대 (The Lord Of The Rings : The Fellowship Of The Ring, 2001)

어릴 때는 이 분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줄 알았다. 지금봐도 설레는 거 같긴 하다.

반지 원정대를 다루자니, 벌써 18년 전의 영화라는 것에 식겁했다. 아니 벌써?

혹시 이 영화를 안본 사람은 꼭 보도록 하자. 위의 사진의 화질이 이상하게 낮은 것이지 영화도 훨씬 현대적인 영상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돌아오면, '반지의 제왕'의 그 1편 속 원정대는 명확한 공통의 목적이 있다. 돌아온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인간의 세상을 지키기 것.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각각의 동기와 참여 이유가 켭켭히 쌓여있다. 마법사로서 중간계에 온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이가 있는 반면, 우연히 반지의 주인이 되어 그 책임감으로 참여한 이 또한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과 엘프인 연인과의 삶 사이에 갈등하며 고민하고, 동시에 반지를 차지해 인간의 군주가 되어 승리하고자 하는 이 또한 있고. 엘프와 드워프는 반지도 감시하고 서로를 견제할 겸 참여도 하고.

이렇게 제각각인 동기와 내면이 지나치게 부각 되지는 않는다. 반지가 짧게 울렁이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보로미르를 보여주며 이 흔들림과 균열을 간략하고 강렬하게 보여준다. 아라고른도 순찰자와 원정대의 리더, 인간의 국왕으로서의 정체성 사이를 고뇌하는 것을 구구절절 노래 부르지 않고 표정과 동작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원정대는 강렬한 목적이 있음과 동시에 내면의 균열이 교묘하게 설명되고, 끝내 흩어지고 각자 일을 수행하러 가는 길이 전달력 있게 다가온다.

 

 

반면 비밀의 숲 원정대는, 글쎄.

앞서 말한대로 출발의 목적 또한 영화가 진행되며 흐려지는데, 마을 사람들은 여유로이 캠핑을 하는지 영화 내에서 전혀 재조명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왕국을 구하러 가는건지, 개인의 호기심을 탐색하고자 가는건지 아리송한 상태에서 각각의 동기들 또한 산만하다.

 

1) 크리스토프

이 캐릭터는, 이번 영화에서 철저히 빠졌어도 되었다. 그리고 그게 나았다.

초기부터 영화의 종결까지 자신의 청혼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만 시종일관 고민하는데, 이는 아렌델이 파멸의 위기에 처했고 자신의 일터전임과 동시에 안나의 왕국의 사라지던 말던 상관이 없다. 차라리 마을에 남아서 물자 정비를 하다가, 보다 치명적인 변화가 아렌델에 생기고 이를 전하러 크리스토프가 달려온 거 였으면 낫지 않았을까?

 

2) 올라프

이 또한 안나가 혼자 남겨지는 장면을 위해 비참히 소모되었다.

성장이란 무엇일까 읊조리는 노래는 이미 나이 들어버린 관객에게는 작은 웃음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동작을 수행하냐면 모르겠다. 굳이 왜 숲을 방황해서 단독 노래를 할당 받은 것인가? 하면 모를 만큼 영화 내용에 있어 크리스토프 솔로 다음으로 무의미한 배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흐름을 끊는 캐릭터다.

전작에서는 공주의 시종, 또는 어릿광대와 같은 위치를 절묘히 살렸지만, 이번에는 그나마의 귀여움도 샐러맨더에게 양보하고 따라나선 동기 또한 얕다. 올라프가 가진 성장에 대한 고민과 비밀의 숲을 탐험하여 얻는 성장은 아렌델의 위기감과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생각한다.

 

3) 안나

그나마 극의 흐름을 아렌델을 지켜야 돼, 엘사. 돌아가야지 하며 잡고 있었지만.

대뜸 진실을 밝히고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선 댐과 아렌델이 부서져야 돼, 사람들은 피난해 있으니 괜찮을거야 하며 말한다. 그나마 이 집단을 끝임없이 하나로 묶으려 했으니. 안나는 그래, 빠져 있어.

그럼에도 참가 동기가 엘사를 혼자 보낼 순 없다며 무리한 행동들을 하는 점에서는, 미묘한 답답함을 안겨준다. 

 

4) 엘사

1편에서 갇혀있던 능력과 자아가 간신히 해방되었나 했더니, 이제는 왕국의 여왕이라는 자리에 갇힌 꼴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렌델을 구해야지! 해야하는 사명감에 젖어 있다기 보다 내게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싶어, 혼자 가는게 편하고 쉬워 하며 내부 분열을 유도한다. 사실 옆동네 게임이었으면 공허로 부터 울리는 목소리로 타락할 그림이 보였겠지만, 다행히도 어머니의 노래였다. 동기로 돌아오면, 목소리 탐색하고 어딘지 친근한 정령들을 찾아나서는 것, 이게 핵심 동기다.

 

저 음흉함들과 제각각의 형체가 보이는가. 크리스토프는 그 와중 혼자 따뜻하게 입고있네

이러다 보니 다 같이 느릿느릿 움직이는게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집단이 하나된 단체, 같은 목적을 지닌 이들로 전혀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금 더 나아가면, 각각의 목적이 병렬적으로만 나열 되고 서로 얽혀 있지 않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공통의 객체가 없다.

반지의 제왕을 본 사람이라면, 좀 감이 올 것이다. 그 '절대반지'가 이 영화에서는 없이, 어설프게 뭉쳐만 있다.

위에 반지의 제왕 꼭 보라고 했는데도 아직 안봤다면, 인생의 큰 후회 남기기 전에 가서 보고 오자. 

 

위에 각각 언급한대로, 각각의 의문은 제각각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아렌델을 구한다! 라는 사명감은 영화의 초반 제시 이후 관객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질 만큼 의미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트롤이 보살펴주며 저 안전한 고지대에서 캠핑하고 있을텐데 뭐. 이는 안나의 결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정령들이 마을을 비우게 했으니, 홍수가 일어나도 괜찮다니.

 

이러다 보니, 이 아렌델 수호 원정대의 4인방(스벤아 미안하다) 에서 사실 '등장인물' 대우 받을만 한 것은 안나와 엘사 정도다. 갈등의 계층이 이 둘만을 두고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나서고 싶고 안나를 지키지 못할까 고민하는 엘사와, 아렌델을 구하고 싶고 또한 엘사와 떨어질 수 없다 말하는 안나. 딱 이 정도만 갈등을 구성한다. 크리스토프와 올라프는 갈등도, 감초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노래만 할당 받았다. 결과적으로, 크리스토프와 올라프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주의가 산만해진다. 익살맞구나, 웃기구나, 하는 것도 한순간이지. 특히 영화 속 역할을 따져보면, 크리스토프의 솔로는 2019년 뮤지컬 영화 및 노래속 OST 중 최악의 솔로로 다뤄질만하다. 

 

 

정리하면, 깊게 엮이지 못한 인물간의 동기로 인해

시간만 때우는 인물 서사가 배치 되어 몰입감을 엄청 깬다.

여기에 더해 극의 장치 또한 전혀 긴박감을 주지 못해 관객들도, 등장인물들도 아렌델이 위급한 상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어기여차 아토할란 가자 이러고 있으니. 

그래도 1편에서는 한가닥 하셨던 그 분.

이는 1편에서 한스의 배신이나, 안나의 시한부 상황, 짙은 눈보라로 인해 아슬아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등 극적인 장치를 여럿 쌓아둔 것에 대비하면,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 허망한 대단원

스토리 구성이 아쉬워도 결말이 빼어나면, 어떻게 좋은 기억들은 남는다.

이 영화는 그 마저도 실패했다.

 

절대자 1과 절대자 2가 만난 모습.

댐을 무너뜨렸더니 엘사가 생환하고, 물의 정령을 타고 쏜살 같이 달려와 아렌델을 지켜낸다.

아 물론 안나가 그 전에 스톤 자이언트들을 유인해서 댐을 부수긴 했다만, 그럴거면 조금 더 모든 정령들이 합심해서 구해내는 장면을 연출하거나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댐의 목적에 대한 진실 또한 엘사만이 그 기억을 고스란히 보지 않았나 생각도 된다.

 

앞선 갈등들이 만약 조금 더 첨예하게 쌓였더라면, 이 댐의 붕괴와 질주하는 강물, 이를 막아서 아렌델을 수호하는 엘사의 모습들은 조금 더 극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렌델을 수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나와 정령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엘사, 어찌보면 이 둘의 시작 위치는 정반대이지 않던가. 그런데 주된 갈등의 지점마다 알았어, 네 말이 옳아.하는 식으로 지나가 버리고 감정이 고조되지 않으니 쏟아지는 강물에 비해 감정이 시원해지지는 않는다. 댐을 부숴야 한다는 안나의 말에는 비장감이 전해지지 않고, 그에 수긍하는 호위대장의 말 또한 감정이 전해지기엔 부족함이 있다.

 

앞선 두번째 단락과 연관 시키면 이렇게 정리된다.

1) 인물들 분량을 채워주기 위한 구성으로 인해

2) 영화를 관통하는 갈등 구조가 쌓이지 못하고

3) 결말이 풀어줄 갈등이 존재하지 않으니

4) 허탈하다.

 

자, 여기서 끝이 나면 아쉽다. 아직 무언가 빛이 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아직 무언가 더 있지 않을까.

전작의 빛이 나던 지점 중 하나는 페미니즘 이슈를 부드럽게 녹여낸 것이 있지 않던가. 

흔한 왕자와 공주 클리셰를 비틀어 악역으로 다가온 왕자,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어 자매간, 가족간의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시사하는 부분은 기존의 클리셰를 부숨과 동시에 남성 인물들의 역할을 효과적이고 재치있게 축소시켰다.

본작에서도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깊은 실망으로 다가온다.

 

4. 얕게 다가오는 '균형'에 대한 고민들

표정들을 보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흠.

PC에 대한 정말 얕고 설픈 반영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화의 지명과 인물, 문화가 서로 조화가 안되고 모든 민족이 등장해야지! 하는 신념하에 억지로 우겨넣어진다. 그러다보니 실제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충돌 지점을 만들고, 이는 본작 에서 꾸준히 드러난 서사적 디테일에 대한 실패를 부각시킨다.

 

자, 먼저 지명과 지도로 살펴보자.

아토할란이라는 강이 언급되며, 저 너머 미지의 영역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묘사된다.

안개속의 비밀의 숲, 거대한 돌과 각인된 정령의 기호. 마법 및 자연과 친화된 사람들. 노덜드라. 이드나와 같은 이름들. 포괄적으로는 북유럽 스러운 느낌을 주고, 좀 더 찾아보면 켈트족의 드루이드 신앙과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정령 소환과 나무들이 주는 이미지, 그리고 거대한 비석이 숲의 입구에 세워진 모습들이 이런 연상을 강화시켜준다. 반면 바다에 대한 친숙성이나 전사적인 묘사는 덜 되고 있고, 한명의 신관을 위주로 사회가 돌아가는 지점에서 '드루이드' 라는 개념은 친숙히 겹쳐보인다.

 

아렌델의 주변 지도를 보아도 북유럽과 영국을 해안섬 따라 비슷하게 압축한 모습으로 보인다. 뭐 굳이 말하면, 싱가포르 모습과도 닮았지만 여긴 추운 동네니까. 노덜드라 (Northuldra) 는 보다 북쪽의 땅, 북쪽에 사는 이를 지칭하며 지리적으로는 스코틀랜드, 민족으로는 켈트가 떠오르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구글에서 저 단어를 검색해도, 덴마크나 스웨덴 쪽 언어로 1차로 추정한다. 

 

그래서, 위의 장면을 보며 순간 멈칫했다.

물론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켈트족에는 검은 머리도 있었다지만.. 일단 동양인의 모습 아닌가.

그래, 다시 마음을 잡고 생각하면 이누이트와 같은 정말 극지의 민족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겠다만, 그런데 노덜드라 인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또 뜬금 맞아졌다. 이런 노래는 어디 잉카라거나 인디언 묘사할 때 듣던 노래 같은데? 그래서 혹시나 내 음악적 견문이 좁아 위화감을 느끼는건지 켈트 민속노래나 스코틀랜드 전통 노래를 찾아봤지만, 가까워 보이는 노래는 찾을 수 없었다. 

 

 

나 누구 딸이에요 하고 묻는건가 이것은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이 위화감은, Politically Correct 흐름에 따른 쿼터제를 실행한 것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너무도 뜬금 맞다는 것이다. 그래 아무리 이누이트로 확장해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이미 안나와 엘사의 어머니는 극중에서 수차례 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적갈색의 머리로 연출되며, 그 머리색은 안나에게도 이어진다. 이는 굳이 Scottish red hair에 대한 긴 역사를 언급할 것 까지도 없다. 옆동네 왕좌의 게임을 잠시 보자.

 

왕좌의 게임, 이그리트. 이런 느낌이라 보면 된다. 
왼쪽의 저런 머리색 느낌. 

자, 이미지가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북구권, 켈트족, 스코틀랜드 인의 붉은 머리카락에 대한 인식은 꾸준히 내려온 선입견과 같은 것이다. 

즉 노덜드라인, 노덜드라라는 지역은 북유럽, 그 중에서도 켈트 문화권을 암시하며  지리적으로는 아렌델이 정통적인 영국의 위치, 그에 반해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부근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뜸, 아무리 가깝게 해석해도 이누이트인 인물군을 노덜드라에 굳이, 부자연스럽게 접합하는 것이다.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여왕도 같은 민족으로 설정했으면 위화감도 없었을텐데. 이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상업화를 진행하는 디즈니의 마수에 맞춰, 억지로 할당한 쿼터제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분량도 낮디 낮은 역할로 굳이 위의 3명이 대응 되어 나타난다. 남자 1 여자 1 지도자 1. 그러다 보니 트롤도 애초에 남자 1, 여자 1, 지도자 1로 맞춰서 묘사하지 그랬어.

 

물론 이러한 할당을 통해서, 모든 민족의 관객들이 영화에 모두 이입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본작품에서는, 철저히 단역이고 소모되는 인물들로 투입될 뿐인데 그나마 역사적, 문화적인 연상을 공유하지도 않고 들어와 있다.

이는 되려 노덜드라는 실제로 어디 있을까? 와 같은 상상과 추론을 막고 동양인들은 조연으로 소모된다, 하는 하나의 관습을 만들지 않을까. 이걸 PC가 잘 고려되고 투영된 작품이라 보기엔 너무나 처참한 이용이다.

1편에서는 동양인 할당이 있었나?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기에 거북했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저 북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하지 않을까 상상에 살을 붙여주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진짜 있어?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이 하나 밖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상상의 나라야. 왜? 저 인종 구성이 동시에 모인 로케이션이 도저히 없거든.

 

이 옅은 PC를 다루는 디즈니의 행보는, 스타워즈 8 라스트 제다이에서도 선명히 드러났고 비판받았었다. 혹자는 백인 남성의 자리를 백인 여성으로 치환한 것 뿐이다고 비판했었고 그 말이 옳다 생각한다.

본 작에서도 놀랍도록 스타워즈 8의 인물 구성과 비슷함을 보면, 디즈니가 거대한 프로젝트로 확장한 뒤 서사의 빈약함과 인권에 대한 고민의 부재를 어떻게 기술력으로 커버하는지 감탄이 생길 뿐이다. 

 

 

5. 결론.

문제점을 고루 짚고 보니 영화의 특징이 다시 보인다.

볼 때는 이런 리뷰를 남기는 나 또한 이야 영상 잘 뽑네 하며 감탄했었는데,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 무언가 이상한 거다.

해서 기록을 시작할 때는 그래도 5점을 줄만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정리를 끝내가니 4점도 아깝다. 기술자의 노고에 찬사를 바치고자 4점으로 일단 매듭짓는다.

 

종합적하면 서사의 깊이가 얕고, 그 갭을 노래와 효과로 메웠으며

그렇기에 노래들이 마음 깊이 닿는걸 떠나 공허하게 울린다.

 

이 정도 영화면 다음 영화에서 엘사, 스타일 바뀌었네? 하며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 되지 싶고,

스타워즈 전통의 1문단 텍스트 처리 해도 무난하다. 

정령들의 공격으로 엘사는 자신의 기억을 찾아 아토할란으로 떠나 갔으며, 이후 정령과 교감을 맡으며 안나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끝.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 겨울왕국 2에 대한 리뷰는 평점 4점으로 매듭 짓는다.

이 영화는 특히 PC와 관련된 디즈니의 불안한 행보가 더욱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백인 여성 우월주의, 메리 수 이슈는 전작에선 나타나진 않았지만 본작과 혹시 나올 속편은 피해갈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제발 스타워즈 9편은 멀쩡하게 나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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