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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Parasite, 2019)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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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8 / 10

 

직설적인 표현들로 감각을 건드리는 범주에서, 이 영화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괴물(The Host, 2006), 설국 열차(Snowpiercer, 2013)로 봉준호 감독을 기억한다. 아, 살인의 추억(Memories Of Murder, 2003)도 있네. 연도를 살펴보면, 영화를 이것저것 보던 시기도 아니었고, 나이도 어렸고. 해서 앞선 영화들을 보며 자연스레 이런 이미지만 남았다.

송강호 나오는 영화 찍는 분이신가. 여러모로 무례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 땐 몰랐다. 이렇게 줄을 타는 감독인 줄은. 사실 전후관계도 바뀌는게 맞다. 이 분이 찍는 영화에 송강호씨가 출연하는 거니까.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냄새를 통한 직관적인 표현, 기묘한 감각을 주는 전개, 개개인의 표정을 진하게 담아주며 선을 넘나든다. 아쉽게 영화관에서의 관람은 놓쳤지만, 되려 선을 타는 느낌을 그래서 더 강하게 받았던 게 아닐까. 뭔가 아, 여기서 다음 장면을 차마 못 보겠다 하는 느낌은 영화관보단 집에서 생생한 것 같다. 일시정지 누르고 싶어지잖아.

 

기억에 남는 요소들은 분명 많다. 경이로운 분위기 전환에 더불어 얼굴의 홍조까지 연기를 하는 듯한 배우의 모습이며. 

반면 극의 시간 흐름이 짧은 나머지 영화를 본다기 보단 단막극을 보는 듯하고, 끝나고 난 뒤 허무함 마저 남겨주었다. 

 

작게 기록 남겨본다. 무엇부터 써야하려나.

 

 

1.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습인데 말야

영화를 보면서 먼저 든 생각은,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들인데... 싶었다.

영화에 나타나는 인물상들이 어째 마냥 멀지만은 않다. 이게 참 기묘한 감각이다. 보통은 배우가 대사를 옮기는 것을 보며, 아 저런 캐릭터를 연기 하구나 같은 느낌이 오는데. 이 영화에선 아, 저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 이전에, 저런 유형의 사람의 영화를 위해 순화된 행위를 하는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는 생동감, 매력의 문제를 떠나 진짜 어디서 본 듯, 어딘가 있을 법한 조각들을 맞춰주고 기묘한 몰입감을 형성해준다.

 

하나씩 뜯어 보자면, 극중 기택이 식사 전에 다소 격식을 차리며 이야기를 잡는 장면이 있다. 자, 우리 가족이 이렇게 또..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그 톤이, 기우에게 조언을 하는 바로 그 톤이 억울할 만큼 친숙하다. 60년대생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특징인가? 발성, 박자, 시작하는 말투 모두가 아버지, 옆집 아저씨, 외삼촌, 큰아버지등 모든 라인업을 연상시킨다. 아니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찾아보니 송강호 씨는 김해 출신이셨구나. 아이고, 그래서구나.

 

리뷰의 첫 묶음을 이렇듯 배우에 대한 찬사로 남기는 것은, 바로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찬사를 바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명 최근 영화에서는 왕도 하고, 택시 운전사도 하고, 관상쟁이도 하셨을텐데 말야. 각각의 영화에서, 놀랍도록 '아버지'라는 인물로 돌아가 재현해내는 모습은 경이롭다. 그러나 마냥 이 아버지를 재현해내는 연기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극중 기택의 감정 변화는 송강호의 표정으로 여실히 전달되는데, 특히 영화의 종반에 다다르며 '냄새'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화가 누적되어가는 모습은, 얼굴색과 얼어붙은 눈빛으로 전달되며 보는 이가 움츠러들게 만든다. 

아, 술에 취한 연기도 매번 강렬하다. 관상에서 나온 모습과 여기서 나온 모습을 대비하며 보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다. 분에 맞지 않은 술자리에 덩실거리며 춤사위를 시도하던 모습과, 이번 작품에서 가난한 삶에 대한 자격지심이며 분노가 취중에 은근히 녹아나는 모습을 비교하며 보자니 슬프기 마저 하다. 여느 쪽이건 비극으로 끝나긴 한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 또한 무언가 녹아있다. 습관이 녹아있다 해야할까, 일상이 녹아있다 해야할까.

기정 역을 맡은 박소담의 모습이 송강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데, 연기가 뛰어났다라는 인식 이전에 기억의 어딘가를 자극한다. 빈정거리듯 말을 끊고 요구하는 모습이 학교나 공공기관 행정실에 문의 전화를 했을 때와 똑같은 어조, 톤으로 재생된다. 이야. 심지어 표정까지 세상 만사 귀찮은 표정이다. 완벽하다. 이 배우는 정말 아무리 못해도 보이스 피싱으로 대성했겠구나.

반면 되려 어디서 본 것 같긴 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배역 또한 있다.

동익이라는 인물이 주는 기묘한 감각. 알 수 없는 유리감을 준다. 극중 인물 자체에 녹아 있는 냉소적인 면모와 이선균의 발성이 어우러져 등장할 때 마다 영상이며 소리를 덥썩덥썩 삼키는 느낌이다. 여기에 더해 역할 또한 녹록치 않다. 여유롭지 않은 내면 같지만 때때로 여유로운 표정, 관대하지 않은 성격 같지만 관대한 표정. 배역의 유리감 뿐 아니라 인물 자체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그렇다고 극 중에서 악행을 한 것은 딱히 없었는데 말야. 감독이 의도한 캐릭터를 보다 깊게 구현해내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심어준게 아닐까. 

 

이렇듯 어딘가서 본 듯한 인물들을 녹여내며 영화는 관객에게 낚싯대를 드리운다. 이 중 한 명에게는 뭔가 닿겠지. 그래서 되짚어 보면 말이 안되는 악행들인데도 불구하고, 기우의 가족을 중심으로 영화를 지켜보게 설득한다. 사문서 위조에 부터 시작해 어마어마한 취업 사기를 한 것 아닌가. 감옥 이전에 도의적인 문제 같은데도 말야. 그 와중에 과외 학생과 잘 되어서 사돈이 된다는 둥 헛소리를 하는데도, 마냥 불편하거나 마냥 웃기지가 않다. 그 저변의 깔린 거리감, 불안함, 언제고 다가올 진실의 순간에 대한 감각까지 스크린을 넘어 스믈스믈 전달이 된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을 깊게 전달하는 도구는 보다 독특했다. 글쎄, 내 생각엔 비겁한 방식이었다만.

  

2. 영화에서 비겁하게 냄새로 공격하다니

4DX의 다양한 효과들. 출처는 cgv

영화관을 오다 보면 참 별의별 시도를 하구나 생각된다.

사운드 플렉스니, 휘어진 화면이라던지. 보다 거대한 화면은 이젠 흔한 경쟁 요소고. 간혹 물이 튄다던지 바람이 분다던지 하는 영화관도 있었다. 여기에 더해 또 뭐가 있더라. 아, 근래에는 셰프의 요리와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던데. 다만 이 많은 시도 중에서, 후각으로의 확장은 아직까진 성공적인 예시가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의도한 영상미는 구현하더라도, 의도한 향을 모든 영화관에서 완벽히 재현하기도 힘들 것이다. 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관객들은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시각과 청각을 따라가기도 바쁜데 말야. 다시말하면 시각과 청각,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감정들은 영화가 이용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이자 수단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냄새로 공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우면서 한편으로 비겁한 방법이다. 아무리 말과 소리로 각주를 달아도, 이를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냄새, 향을 사용하는 것은 엄청 직관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색해진다. 화재 현장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데, 라던지. 향수를 뿌린 장면 뒤에 향에 대한 언급을 한다던지. 저 정도의 세밀함이 없다면 대사부터 힘이 빠진다.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하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두리번 두리번. 동시에 관객은 벙 뜨게 된다. 감독의 상상력 또한 그 이상한 냄새를 정의하지 못하고, 관객에게 상상하라고 억지로 떠넘기게 되다 보니 영화의 설득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아이고 저런.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 향에 대한 묘사를 교묘하게 돌리고 반복한다.

시작은 기택이지만, 점차 가족으로 이야기가 확장되며 냄새에 대한 추측은 풍부해진다. 홀아비 냄새? 아니라는데. 뭔가 퀴퀴한 냄새? 그것도 뭔가 덜한 표현 같고. 반지하 냄새? 그게 옷이나 체취로 밴다는 거지? 하면서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면, 어느새 저 땅아래의 냄새들을 켭켭히 쌓은 덩어리가 머릿속에 연상된다. 온 가족에 스며든 냄새의 덩어리. 이 덩어리는 반복되어 보여지는 노상 방뇨, 폭우가 내리며 역류하는 하수도, 물 난리 후 채 마르지도 않았을 옷들을 통해 강렬하게 조각된다. 어딘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나왔던 황정은 작가의 '상류엔 맹금류'의 한 장면과도 닮은 듯 하고.

 

 

그러다 보니, 기택이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이야 이 새끼야, 이건 아니지. 선 넘네?' 하는 표정을 짓는 것 또한 기묘하게 와 닿는다.

아니 비겁하게 냄새가지고 그러냐. 이건 아니지.

그러나 이 시점까지, 관객들은 그 냄새에 대해 온갖 상상을 이미 더하도록 유도되고 있었다. 개중에는 그래 체취가 너무 심한가 생각할 수도, 얼마나 그랬길래 그 시점에 얼굴을 찡그릴까 싶기도 하지 않을까. 뒤이어 벌어진 살인만 아니었으면 희극과 비극을 아슬아슬하게 오갔을 것이다. 

 

 

3. 결국 잘못은 대만 카스테라인가

 

 

영화를 보면서 정말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역시 이것이다.

잘못은 누구의 것인가.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은 각각의 위치에서 선을 탄다. 기만질 한 번, 뒷담 한 번.  

 

기택의 가족이 하는 일을 보자니 갈수록 공감과 동정에서 멀어져만 갔다. 주인이 집을 비웠다는 이유로 온가족이 오손도손 술과 음식을 빼먹질 않나, 그러면서 철두철미하지도 않다. 비가 오는걸보며 주인이 돌아오진 않을까? 집에 문은 닫고 왔던가? 하는 생각 까지 닿지 못한다. 물론 영화의 시작이었던 서류 위조 자체로도 크나 큰 범죄다. 이상한 가족임을 떠나서, 순수히 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부족하다... 고 생각했는데. 막상 문광이 머리를 다쳐 기절하자 어찌 행동해야될까 안절부절한다. 어설픈 죄의식과 어설픈 계획 끝에 결국 기정은 죽고 기택은 홀로 은둔한다.

그래서 이런 전개를 보면서, 불편하다 못해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택의 가족이 풍기던 냄새라는 것은, 행동의 묘사로는 부족할 이 상이한 특성을 감각으로 구체화 한 것이 아닐까. 가난의 냄새라기보다도, 기생하는 이들의 냄새. 어딘가 불운하며 어딘가 계획이 없고, 어딘가 결단력이 설프게 부족했던 이들의 모습. 마냥 이상한 가족이라 칭하기엔 낯익은 모습이 곳곳에 박혀있고, 마냥 친근한 가족이라 칭하기엔 불합리한 행동과 그에 따른 결말을 맞는다.

 

 

그래도 영화에서, 기택의 가족은 마지막 장면까지 선택지들이 있었다. 

저 아래 문광의 죽음은 끝끝내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만큼, 동익을 기택이 죽이지 않았다면 그래도 적절한 엔딩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참고인 조사를 하며 각각의 가족관계가 드러나고, 결국 비참히 쫓겨났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그 전에 굳이 그 가족행사에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기우나 기정에게는 적어도 선택지가 있었으니까. 

또 아니면, 애초에 주인의 집이지 않던가. 비 오는 날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아늑했을 일이다. 그 모든 선택지의 끝에 최악만을 골라간다는 것은, 마치 영화 시작 무렵부터 주어진 배경인 대만 카스테라로 인해 망한 것과 같은 감각을 안겨다준다. 그들이 제한된 합리성으로 선택은 했지만 - 결국 외부 환경이 사정없이 잡고 뒤흔든다.

해서 묘하게 동정이 갈 듯 말 듯. 역겨울 듯 말 듯 선을 탄다.

 

 

고놈의 대만 카스테라. 정말 망한게 한 둘이 아니네.

정작 대만가니 그 카스테라는 많이 보이지도 않더라만은.

 

 

4. 결론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

오마주인가 싶을 정도의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눈이 내리는 엔딩은 어딘가 괴물(The Host, 2006)을 과도하게 연상시킨다. 엔딩에 마음을 잠기게 하는 눈 내리는 장면은, 봉준호라는 감독이 사랑하는 장면 중 하나인걸까.

아, 숨겨진 지하실로 빠져들어가는 장면은 한 시대의 역작 Us(Us, 2019) 또한 떠오르게 해주었다. 숨겨진 이면 세계에 도달하는 입구와 출구가 하나뿐인 길이라니. 

 

 

영화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희극을 시간이 제한된 영상에 맞게 각색해 녹여낸 느낌이다.

극의 전개 속도와 관객의 응시하는 속도는 놀랍게 일치하며, 그렇기에 보고나서 뭔가 호흡이 빠르다. 쉴 구간이 없었다는 감각을 안겨주며 왜 얕은 것 같지 하는 의문을 남겨준다. 취업 사기 이후 단란한 술 파티를 하며, 불과 2일 내에 그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숨겨진 지하실, 가족들의 귀환. 긴박한 탈출. 다음날 약속.

 

이로 인해 무언가 다 보고 나서도, 이야기를 덜 들은 듯한 찝찝함이 남아 있다.

어느 오래된 집에 얽힌 이야기와 관해 3가지, 혹은 4가지의 옴니버스식 에피소드 중 하나로는 납득이 되지만, 이 작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달까.

똑같은 집, 혹은 옆 동네 사람의 이야기로 속편이 나오면 그제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평점은 8점으로 마무리 지어본다.

왜인지 모를 양적으로 아쉬운 느낌에 하나, 그리고 대만 카스테라와 향에 대한 집착에 하나.

다시 말하지만, 비겁하게 냄새로 공격하다니 말야.

에일리언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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