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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 (SVAHA : THE SIXTH FINGER, 2019)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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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공포영화가 아니었더라면 제약이 없었을텐데, 틀을 벗어나려다 분류에 갇혀버린 아쉬움이란

5 / 10

 

 

공포영화로서의 사바하는 아쉬움이 많다.

스릴러 영화로서는 어느 정도 충족을 시켜주려다가 갑자기 아쉬움이 놓이는 부분이 있다. 길을 잃어버린 경찰의 존재. 생각보다 쉽게 힘을 잃어버리는 범인의 동기라던지. 여기에 더해 긴장감을 조성하는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각을 쉽게 놓아버린 느낌이다.

반면 영화의 장르를 열어두고 다양한 해석과 사소한 상상을 덧붙이면, 확장의 여지는 많다. 만약에 페이크 다큐의 형식이었다면? 차라리 코믹 장르였다면 어땠을까? '무서운 영화' 시리즈 처럼 공포 기믹을 다루는 영화였다면? 아니면 조금 더 섬뜩한 장면들을 넣어 가차없이 연출했다면 또 어땠을까?

이 영화의 모호함은 단순히 플롯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 하는 장르적인 특성에서도 기인한다. 

 

해서 본 영화의 리뷰 또한 5점으로, 철저히 모호하게 시작하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10점 만점에 5점 짜리 영화면, 안 볼만한 이유가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도, 그와 같다고 말하고 싶다. '검은 사제들'의 2편을 기대한 이들에게, 5점이 가혹하다 여겨지면 안 보면 되는 영화, 그렇지만 이 모호함과 연속성을 파헤치고 싶다면 볼만한 영화. 사바하 리뷰를 간략히 남겨본다.

 

 

 

1.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

영화의 시작은, '한국형 공포영화'라는 이름에 대해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감독의 전작으로 대두 되는 작품이 한국 영화에선 신선했지만, 여전히 엑소시스트의 연장에 놓였다 이야기 되는 그 '검은 사제들(2015)' 인 만큼, 비교의 대상은 명확하다. 그리고 모든 관객과 투자자의 의문은 저기서 기인할 것이다. 이 장재현 감독의 '한국형 공포 영화'는 어디서 시작해야할까?

 

대답은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명확하다.

어딘가 보고 들은 듯한 공포 영화의 장면에 한국에서의 일상을 녹여낸 영화. 그게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공포 영화의 정론이 되겠다. 물론 이는 그 사이에 여느 외부인의 입김이 있었나 의심될 정도로 일관성이 없어보이니, 이는 차후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음악을 적극 활용한 기괴한 도입부는 어딘가 컨저링(2013)의 향이 짙게 나면서,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영상은 콘스탄틴(Constantine, 2005)의 색감을 조금 가미했는데, 배경은 철저히 한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영화의 철저한 약점으로 다가온다. 공포영화의 팬들에게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잡힐듯 말듯히 알랑거리는데, 놓여지는 주인공들은 그에 비해 철저하게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소 잔혹하고 기괴한 영상미에, 음악으로 강하게 감각을 사로잡는 도입은 컨저링의 시작 시퀸스에 나오는 그 불안한 음악 구성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시각적인 훅, 혹은 이 불안감의 시작을 음악으로 증폭시켜, '불안해질 것이다'와 같은 기묘한 감각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저 존재가 지구를 파멸시킬 것이다, 라던지. 저 인간이 아닌 작은 핏덩이가 너희를 무섭게 하리라 라던지.

그럼에도 이 연출이 철저히 컨저링의 아류일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극의 후반부에 가면서 이러한 음악, 혹은 소리를 강조한 연출은 희석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은은히 불러주는 자장가라던지, 나한이 잠에서 깨어날 때의 자극원이 되는 소리 등은 얼핏 섬칫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길고 큰 구성을 통해 불안감을 증폭 시켜주는 과정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도입부를 좀 강하게 끌어와볼까? 하면 어떠나 싶은 욕구가 컨저링을 만나, 이 구도 참 익숙한데... 하는 전체 영화와 사뭇 다른 구성물을 만들어버렸다. 영화 시작부의 화두는 철저히 쌍둥이를 씹어먹으며 태어난 '그것' 이 될텐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있었나 고민해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의 그것에 대한 불안감의 조성은 여느 퇴마 영화나 악령 영화 못지 않았는데, 논점을 능숙하게 이동시키지도 않았으니 보고있는 관객은 길을 잃기 쉬운 것 아닐까. 컨져링 따라서 불안감 조성해놨으면 악령 퇴치 하는 견적은 짜놔야 관객도 보고나서 납득이 될텐데. 

 

그리고 이러한 본 듯한 서순은 어디선가 본듯한 사실 추적 나서는 검은 옷의 훤칠한 인물 부터, 영화 도입부의 색감은 콘스탄틴의 소녀에 빙의한 악령 퇴치와 유사한 감각을 안겨주고. 연쇄 실종이야기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사실 관계를 추적해내가는 박목사역의 이정재는 익살맞은 콘스탄틴이라 하면, 좀 과도한 엮음일까 싶긴 하다만. 대학에서의 강연 장면은 컨저링 시리즈의 워렌 부부가 대학에서 강연하던 구도와 매우 유사하지 않던가. 

 

이 짤막짤막하게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는 것은, 다음의 특징과 함께 엮여 영화의 취약점이 커지는 계기가 된다.

 

2. 모호한 화자, 힘을 잃은 주인공

거 이래보여도 경찰이라니깐

 

이 영화는 모호함을 추구한 나머지, 주인공 마저 모호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은, 영화 전반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능력 하에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갈린다. 간략히 말해 주인공 없이도 진행될 사건들로 영화가 구성되어 있다? 코미디 영화 말고는 아무도 납득하지 못한다. 만약 영화의 주인공이 스파이로서의 역량을 드러내지 못한채 진행되는 스파이물이다?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고 관객은 먼저 느낀다. 히어로 물은 또 어떤가. 액션 연기가 어색한 격투형 히어로는 설득력이 있을까? 영화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판단하기 이전에, 관객은 주인공이 별로네, 하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앞선 예제들은 영화의 구성이전에, 배우의 역량에 의문을 갖게되는 요건들이다. 이 영화는 그보다 좀 더 안 좋은 위치에 놓여있는데, 주인공이 없이도 영화는 진행되었을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일단 영화의 주된 화자는 단언코 박목사다. 배우로서의 카리스마나 매력도 충분하고,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과정 또한 초반에는 그럭저럭 몰입이 된다만. 사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이었나 되짚으면 아니다라는 결론이 쉬이 나온다.

정나한이 의구심을 품게 전달한 것은 온전히 '그것'의 역할이었고, 박목사라는 인물은 관객을 위한 의문 및 해설과 추적. 그리고 마지막에 정나한을 그의 차에 도달하게 해준 것 뿐이었다. 마지막 역할이 중요하다고? 영화를 본 관객은 '그' 가 생각보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음에 공감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죽거나 안죽거나 큰 차이가 없었음 또한 느꼈을 것이다. 앞선 예시로 든 컨저링이나 콘스탄틴과 같은 영화들은, 과도하지만 세계 멸망, 혹은 거대한 악령의 해방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퇴마사의 이야기들을 다루며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바하는 글쎄. 누굴 막는지, 왜 막는지에 대해 설명을 늦추고 또 최대한 늦춘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보면, 영화의 시작은 태어나는 '그것'임을 상기하자. 박목사가 그것과 대면한 적이 있나? 아니 애초에, '그것'에 대해 조사한 적조차도 없다. 

 

그래서 영화의 주된 화자는, '그것'을 쫓고 추적하는 정나한의 시점 또한 포용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끌고 나가는 화자는 늘어나는데 사실 첫번째 주인공은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두번째 주인공은 관객이 몰입하기 힘들고. 영화가 진행되어가며 이 아슬아슬한 균형은 무너져 간다. 좋게 포장해주면 주인공이 두 명인 영화. 나쁘게 말하면 파워레인저 레드와 꼭 변심하는 그레이(혹은 블랙) 두 명을 모아두고 진행하는 영화 모습 아닐까. 하다 못해 배역의 무게감을 좀 더 줬다면, 따라가기도 편했을 텐데. 유지태와 이정재의 무게감 사이에서 너무 중요한 배역이 흩어지는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이정재라는 뛰어난 배우는, 계륵에 가깝다.

분명 각 장면에서 연기는 뛰어나다. 익살 맞거나 진지한 장면, 흔히 나오는 '판을 짜는 장면'까지 전달력은 있다. 문제는 이 주인공이 없다 한들, 영화의 모든 내용은 이미 진행될 이야기였다. 

그나마도 인간의 멸망을 막는다 라던지, 거대한 악을 대면한다가 아닌, 지난 실종 사건들에 대해 우연히 답을 얻게 되고, 그걸 막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되묻는다. 이 외침은 그렇기에 철저히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다. 박목사의 영화 내에서 쌓아올린 이미지는 철저히 돈이 될 일거리를 찾는 인물일 뿐인데, 갑자기 어떻게 그 무고한 생명들을 희생시키느냐 외치는게 배우의 능력으로는 수습이 될 수가 없지 않을까.

 

 

주인공은 계륵이고, 파워레인저 그레이는 주연으로 바뀌는데에 시간이 부족했다. 나머지 인물들은 무엇인가 하면 또 모호해진다.

조연스럽게 잘 다뤄진 인물은 해안스님 정도이고, 경찰은 안 나왔어도 되며 사이드킥 느낌의 고요셉은 그냥 잠입하는 장면에 한번만 나왔어도 상관 없다. 아니, 박목사가 혼잣말하며 영화를 진행할 수가 없으니 관객을 대신할 청자로서는 역할한다. 유지태는... 계륵이 문제가 아니고,   흑막이 드러나자마자 아스라질 흑막인데, 어떻게 100년을 버틴건지 상상이 안된다. 휴.

 

  

 

 

 

 

3. 따라온 압박감의 부재, 채우기 위한 조형들

앞선 주인공들의 혼란스러운 무게감에 더해. 이 영화는 한국형 공포영화로 광고 되었고 지금은 미스테리, 스릴러 태그를 달고 있음을 상기하도록 하자.

스릴러건, 공포건, 미스테리건, 그러기에는 앞선 이야기들만으로는 철저히 압박감이 부족하다.

공포 영화에는 관객을 끝임없이 긴장하게 만들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요소가 필요하다.

보통은 미지의 존재를 넣는다던지, 상상의 존재를 넣는다던지 해서 미지에 대한 공포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이어내고, 여기에 잔혹한 장면들을 더해 움츠러들게 만들곤 한다. 여기서 조금 조합 비율을 과도히 바꾸면 유전(2017), 미드소마(2019)가 되는 거고. 좀 잘 조합했다 싶으면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정도가 되겠다.

 

딱 이 정도의 표정을 안겨준다.

 

사바하는 앞서 나온 '그것'이 공포감을 주는 미지의 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극의 내용은 또 그렇지 않다.

해서 나온 미봉책이, 최대한 기괴한 장면을 포괄시켜 공포감을 주자로 변질되어 버린다. 물론 이를 극한으로 잘 수행하면, 앞선 '유전' 과 같은 평단의 찬사를 받는 작품이 나왔을 테지만.

대표적으로는 소녀 형상의 귀신 모습, '그것'의 탈피전 기괴한 모습의 단편, 4 보살 중 한 명이 자살한 뒤의 여과없는 연출, 나한이 잠들었을 때 악몽 등. 한국이라는 보수적인 국가의 허용선 내에서 최대한 분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이 사회적 제약선 없이 '불편한 감각'을 연출해낸 유전과 비교하면, 이 조형들은 맥락이 없던지 부자연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영화를 되짚고 나면, 다음의 의문이 남는다.

 

 

4. 왜 굳이 공포영화여야 했을까

왜 굳이 '공포 영화'여야 했을까. 영화의 본질적인 한계선은, 여기서 그어진다. 

영화에 공포감을 주기 위해 배치된 모든 요소들이, 영화에 부자연 스러운 조합이라는 감각을 준다.

 

열심히 이야기를 따라가다 아이고 저게 뭐야 한 번. 으 저게 뭐야 두 번. 갑자기 흑막 한 번. 철저히 인간스러운 결말과 영화 도입부의 갭이 허탈하며 종결.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굳이 영화에 필요했나 싶던 장면들을 다 오려 모아보면, '공포감을 주려는 장면들'이 바로 걸림돌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 '그것' 이 등장하는 장면들. 혹은 다른 심령현상이나 그러한 연출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특별한 종교 집단에 대한 추적, 그리고 그 흑막을 밝혀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흑막도 사실 특이한 인간이었을 뿐, 권능이라 부를만한 힘은 없는 결말이었고. 그렇기에 앞선 공포감은 의미없는 메아리로 다가온다. 미지의 존재도 아니고, 압박감을 주는 것도 '그것'에게 온전히 이양되는데 맥없이 죽어버리니.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허탈감은 다른 곳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사실 그 모든 '무서운 장면'이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이건 그래도 공포 영화니 널 무섭게 해줄께, 하는 정도의 연출이었음에 허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핵심 플롯만 모아 놓고 보면, 차라리 페이크 다큐의 형태였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먼저 들고, 저 공포감을 주는 장면은 외압이 아니었을까 의문이 따라서 든다. 거 왜, 공포영화인데 좀 악! 하는 장면 좀 넣어보면 어때요, 하는 목소리들이 어딘가 상상되지 않는가. 

 

 

 

5. 결론

여느 감독 인터뷰에서 선과 악을 특정짓기 힘든 이 모호함, 양면과도 같은 특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한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영화 주제 의식을 잘 전달해 모호함에 대해 고민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뭇 다른 이야기를 순서를 꼬아 섞어도, 이야기는 모호해진다.

하나의 이야기로서 남기 위한 핵심은 그 이야기를 여전히 하나의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가 이고, 그 곳에는 이야기를 진행할 인물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냥 혼재된 이야기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고 산만할 뿐이지만, 그 모든걸 끌고 나가는 주인공이 있다면 또 다르겠지.

이 영화는 다양한 장르를 섞을 수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려다, 주인공마저 극 내에서의 힘을 잃게 해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범해버렸다고 생각한다.

 

진짜 모호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으면, 저 블리자드사의 디아블로2 정도의 이야기는 가져와서 악령을 자신에게 봉인했지만, 이로 인해 주변에 자꾸 악령들이 나타나 이를 피하고자 방랑하는 인물을 만들고 사실은 이미 빙의되어서 부활하기위한 여정이었다. 정도의 몰입할 수 있는 여지는 줘야하지 않겠나. 선과 악이 무엇인지 사색할 여지도 없이, 모든 사건은 일어나고 우리는 멀리서 지켜볼 뿐인데 주인공이 왠 소용일지, 배우는 무엇이 더 가능하련지. 

 

사바하의 이 모호함에 대한 신념은 주인공의 부재, 영화 장르적 특성, 그리고 사용된 기법의 오려냄으로 허술하게 매듭지어진다.

평점은 5 / 10. 

더 다양한 해석이 나올법한 이야기가 '그래도 공포 영화 특색은 갖춰야 되지 않겠어?' 하는 메아리에 갇힌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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