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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Hereditary, 2018)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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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0

 

새롭게 느껴지는 공포감의 조성, 그러나 컨저링 유니버스에 대비된 조명은 아니었을까?

 

일단, 영화관에서 보지 않아서 솔직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봤으면 더 무서웠을테니까.

물론 최대한 공포영화를 감상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위해, 이른 저녁부터 불을 끄고 영화를 상영했음은 미리 말해둔다. 오히려 이로 인해 적막감이 감도는 장면에서, 더 몰입이 되긴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영화는 정말 정적인 공포감을 치밀하게 쌓아올린다. 귀신이나 과도한 cg, 폴터가이스트와 같은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현란함'에 기인한 공포와는 사뭇다르다. 제목부터 다가오는 '유전'이라는 개념하에, 희미한 불안감을 확고한 공포감으로 천천히 조여온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등장인물의 시각에서 느껴지는 다가오는 공포감이다. 

관객의 시각에서는, 점점 그 공포감이 확고해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적나라한 시점으로 보여준다. 슬래셔 무비와는 다르게, 잔인하고 끔찍하다기 보단 보기 불편한, 훼손된 객체들을 긴장감이 쌓여가는 순간에 보여주고, 이를 응시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불편함과 공포감을 연결 짓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고 느껴진다. 그렇기에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컨저링 유니버스로 대표되는 기승전결이 명확해져가는 공포영화 들에서, 사뭇 다른 시도는 분명하다.

그러나 순수한 '공포감'의 조성, 혹은 영화로서의 가치로는 다소 과대평가되기 쉬웠던게 아닐까?

유전에 대한 작은 기록을 시작한다.

 

 

 

1. 압도적인 비주얼, 정적인 공포

영상과 소리, 배우. 이 세 가지 요소를 이용해 영화는 정적이고 치밀하게 불안감을 조성한다.

먼저 영상, 혹은 조형적 요소에서는 그 유명한 잘린 머리 장면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잘려 남겨진 찰리의 머리는, 반쯤 부패하고 기괴하게 훼손된 체 길에 놓여있다. 그리고 우리는 감독의 악의, 혹은 애니의 절망감이라는 미명하에 그것을 따라 응시하게 된다. 세상에, 머리야. 잘려가는 머리, 터지는 머리, 피흘리는 머리, 좀비 분장, 프랑켄슈타인 등 우리는 많은 머리에 머리같은 것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는 그 중에서 가장 불편한 응시로 꼽힐만 하다.

 

 

 

이미 표정 연기의 정점이다. 존재만으로 무섭다. 

 

이 외에 도굴되어 왜인지 모르게 나타나는 시신이며, 피터의 빙의에 따른 기괴한 자세와 충혈 및 출혈.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 경배하는 장면까지. 이 영화는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딱히 하진 않는다. 귀신이 나타나는 장면들은, 오 귀신이네? 깜짝이야. 빙의가 드러나는 장면은 그래, 빙의가 나올 때가 되었지 정도의 느낌이지, 집을 부수고 세상 모든걸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친숙히 학습된 공포감은 자리를 잃었다. 무언가 튀어나오고, 불안한 현악기 리드로 감정을 교란시키고, 흉악한 모습의 귀신이 웃으며 집어던지는 모습은 이 영화의 지향점과 사뭇 다르다. 무언가 덤덤히 나오고 드러나며, 인물들의 불안감을 절절히 전달해줄 뿐이다.

 

이 불안감의 전달은 다시, 정적인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 두 가지로 확고해진다.

 

 

 

배우의 연기는 확고하다. 표정의 변화 등이 문제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을 연이어 잃는 상실감부터 일을 잘못 처리해 절박해진 모습. 가정 내의 다툼 하나하나까지. 뭐라도 해야돼 하며 발버둥 치다 덫에 걸림을 알고 급박해져가는 그 불안함이,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에서 전달된다.

물론 아역배우의 연기는 앞선 사진의 표정으로 설명이 충분히 된다 생각한다. 

 

 

 

정적인 전개는 다른 부분 보다도 소리에서 강조된다.

컨저링 시리즈의 배경음을 잘 이용한 불안감의 조성은, 근래 한국의 사바하(2019) 에서도 보이듯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유전에서는, 철저히 정적이고 고요한 상황에서, 고요히 울리는 똑 소리, 혹은 머리가 부딪히는 소리등을 통해 결과를 명확히 전달한다.

무엇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들지 않고,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와 같은 확고함.

궁금하고 긴장할 여지도 없이, 이 소리와 전개를 통해 관객은 등장인물과 같이 철저한 패배감, 무력감을 체험하게 된다.

 

 

 

2. 어디까지 이야기할까에 대한 고민, 또 고민

위의 정적인 요소들은, 영화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과 어우러져 느리다는 인상을 준다.

 

근래 친숙해진 공포영화들을 보면,

작은 사건으로 어떤 악령의 존재를 알게 되고 -> 사건 처리를 위해 조사하거나 일이 격화 되다가 -> 마침내 거대한 퇴치 의식 및 악령과의 접전 -> 그리고 반전 결말이나 후속작을 암시하는 결말까지.

공포영화과 영웅설화 혹은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닮아 해결까지 완성해준다.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끝나지 않고, 그의 해소까지 도와주는 친절함이 기본 장착이 되었다. 굳이 컨저링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지난날 극찬 받은 할로윈(2018) 도 있지 않던가? 이젠 이게 좀 더 트렌드가 된 것 뿐이지. 

 

유전에서는, 그 기승전결의 문법을 다소 빗겨 제시한다.

물론 사건이 격화되고 결론이 나타나는 이야기의 순서는 당연하지만, 이야기의 대상이 다르다. 악령을 드러냈으니 퇴치하고 가정과 영혼에 안식을 주는게 목적이 아니다. 철저히 한 가정을, 가계를 덮친 불행에 대해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지 않은가? 배우의 연기인지, 타고난 표정인지 모를일이다.

 

그래서 영화는 요약을 하면 간단해진다.

한 영매 가계가 있고, 악령을 강림시키며 죽어나갔다. 끝.

등장하는 악마가 누구고 퇴마는 누가하며 어떤식으로 퇴치 가능하고,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와 의지가 없다. 어떻게 이 가정이 파괴되는지, 앞선 불편함을 누적시킴으로 천천히 보여주고자 할 뿐.

 

패배에 대한 철저한 응시는, 그렇기에 악령을 퇴치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너무 느린 박자감으로 다가온다. 

좀 더 빨리 나타나서 구원자도 나오고 퇴치 방법도 찾아내고 쾅쾅 부수며 퇴치해야하지 않아? 아니다. 다른 영화의 기 - 승 정도에서 끝난다.

영화는 그렇기에 몰입하기엔 불편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느린 속도로 인해 지루해질 수 있다.

그 사이에서 잘 균형점을 찾아 영화를 따라가면, 시각적 불편함과 공포감 사이에 고뇌하는 본인을 발견하게 된다.

 

 

 

 

3. 결론

공포감의 결론은 눈을 돌리고 싶다, 눈을 감고 싶다, 혹은 보기 싫거나 도저히 볼 수 없다와 같은 행동 및 의지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불편함의 결론 또한 다소 비슷하다. 눈을 돌리고 싶다, 혹은 감고 싶다. 도저히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감각 혹은 감정을 잘 절충하면, 슬래셔나 고어, 좀비물과 같은 공포의 장르가 나타난다. 

 

'유전'은, 그 절충에서 '불편함'이라는 방향으로 좀 더 극단적으로 시도해본 영화로 생각된다.

이 영화가 무섭냐고? 무서울 때도 있다. 아니 그 전에, 불편하다.

하지만 불편함, 혐오감, 이런 류의 서술들에 대해 우린 무섭다고 말해도 되는걸까? 

 

공포영화에 대한 다른 접근임에는 수긍은 된다. 다만 이 방향으로 너무 나아서면, 더 이상 영화로서 사랑받기 어려운 기이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평점은 6.0. 더 낮게 주기엔 컨저링과 다른 지점에서 납득하며 경애를, 더 높게 주기엔 감독의 악랄함에 작은 지적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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