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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BURNING, 2018)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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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5 / 10

영화에서 왜 술에 절은 뇌냄새가 날까.


네이버 시리즈에 앞서 무료로 떴던 것을 기념하여, 짧게 보고 리뷰를 남긴다.
물론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다양한 젠더 이슈와 함께 배우와 영화 평에 대한 기록들이 엇갈림을 기록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볼만한 이슈가 있었음을 추가로 기록한다. 여러모로, 기록의 본질은 그런 것이니까.
대외적으로 인정 받았던 영화인 만큼 큰 기대를 가진 부분도 있었음을 시인한다. 대개의 경우, 이런 큰 기대는 그 만큼 아쉬움 혹은 의아함이 커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왜 앞서 개봉시기에 영화를 본 이들이 영화의 모호함에 대해 의문을 이어왔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기록을 남기는 만큼, 당시의 감각을 짧게 쫓아 기록 남겨본다.

1. 어딘가 이상한 대사.

유아인도 저런 자세로는 사람이 약해보이는구나. 일단 하나 배워간다.

지금 보니 일본어, 혹은 책에 쓰여진 대사를 옮기며 생동감이 떨어진게 아닐까 싶은 불안한 생각이 일렁였다. 특히 대사의 피상적인 감각이 강조되는 부분은, 역설적으로 도입부. 물론 대뜸 난 해미 사랑해요 하는 종수의 고백아닌 고백과 같은 대사도 같은 맥락이다. 무언가 전달은 되고 감정은 실리고 극에서도 중요하지만, 이게 한국어였나 싶은 기묘한 삐걱거림이 일렁인다.

2. 다른 고리의 파편들 줍기.

공간 내 좌석이 각각 어떤 입지인지를 보여주는 장면. 그러나 의자는 다소 부조리 하게 배치되어있었다.

일단, 벤이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극의 초점은 여기에 두어져 있진 않다. 이 모호함, 일렁임, 관측해야 답이 나오는 지점에 대한 고찰들. 벤의 집에 있던 고양이가 다가온 것이 우연인지, 진짜 이름이 보일이라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 않나. 그럼에도 작게 벤의 살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그럼에도 비닐하우스를 태웠다는 도발이 하나, 그리고 해미가 보자 하니까 나선 점 둘. 해미는 이 시점에서 예전 여행 동료, 혹은 전 여자친구 정도의 경계선에 걸쳐있다고 생각하는데. 아, 연애한건 맞나? 나의 연애 감각이 무뎌진건 아닌가? 하는 건 뒤로 하고. 종수가 해미가 같이 보자해서 나온 지점에, 나는 볼일 없다고 선을 긋는게 보통의 선이라 생각한다.

이 자세에 따른 위화감은 그 행 간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리고 악인에 대한 정의. 누가 악인가에 대해 고찰하면, 종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다 확고한 사실, 신념이 없는 채로 떠돌다 화악 불이 붙고 타버린 그 잔해는, 본인이 살해한 시신과 처절한 뒷처리 뿐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명확히 관측된건, 사람을 대뜸 찌른 종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앞선 벤이 살해하지 않았을까, 비닐하우스는 해미가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들은 단순한 추정일 뿐이지만, 종수가 누군가를 찔러 죽이고 불태운 것만은 확고한 관측값이니까.



3. 결론.


부에 대한 비틀린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영화 '기생충' 이 낫다 생각한다.
누가봐도 저 이선균의 중저음의 목소리와 기묘하게 훑어보는 화법을 듣다보면, 아니 저새끼. 하는 감정을 전이 받곤 하겠지.
반면 본작의 벤은 저 놈이 잘못했다 혹은 부유한 놈들은 왜 다 저모양이냐, 이런 감각을 준다기 보단 '알 수 없다'는 장막의 너머에 있는 느낌이다. 최대한 숨기려 들고 부풀리며, 신비로운 척하는 게 고스란히 보이다 보니, 그에 따른 역한 감정도 단계적으로 쌓이지는 못한 느낌이다. 저 놈이 잘못했을게 틀림 없지만 이건 괜찮나? 하는 죄의식 보다는 저 놈이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겠어? 하는 모호한 선에서 끝난 느낌.


어떤 영화는 연결고리의 사이를 비워두고, 관객이 추론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 보다는 그런 추론을 장려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미싱 링크를 채워나가는 과정은 연역의 과정이고, 영화에서 미처 회수하지 못한 복선을 잇고 영화의 인물의 세부를 추론하고 상상하는 것은 즐거우니까.

이 영화는 그냥 연결되지 않은 각각의 고리들을 모아서 순서대로 배치해놨다.
조금 더 간격이 길었다면 옴니버스였겠지만, 종수의 한발짝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불쾌할만큼 집요하다.

서사적으로는 연역적 추론이 뒷받침되기 힘든 이야기 구성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작은 고리를 모아 앞선 언급과 같이 이어낼 순 있지만, 사실 가치가 없는 추론이다. 정답이 없기에 추리가 필요 없고, 단순히 장면과 고민을 전달하는 영상 매체이기 때문이다. 종수가 악인인가? 그게 중요한가? 벤이 진짜 죽였나? 그게 중요한가? 해미는 진짜 죽었나? 그게 중요한가? 모든 영화 내 언급된 의문은, 그게 중요한가로 귀결된다.
영화의 초점이 묘하게 멤돌고 공허한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닿는다. 감독, 혹은 처음의 작가가 전하는 공허하고 불붙기를 기다리는 진한 기름 냄새의 어두운 방 안. 그곳을 헤매다 보면 우리는 답에 이른다. 아, 나는 무언가 찾아 나서려고 이 길을 떠난게 아니라, 작게 타올라서 사라지기를 바랬노라고.

평점은 5점 정도로 끝낸다.
더 낮게 주기에는 최근 영화들의 문법과 다른 점에 작게 기록할 의의를 주는게 맞다 생각은 든다만서도.
영화를 항상 이야기의 연장선이라 본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제작자의 공허한 감각을 전이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딱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끝내는게, 좀 더 영화에 이야기를 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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