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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 2017)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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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6 / 10

 

순한맛 스플라이스, 외로움을 물에 녹여내는 감각

 

주말에 또 비가 온다는 것에 대해, 무언가의 축복으로 생각하겠다 결심했다.

집에서 늘어져 영화를 틀어놓고 보아도, 누구에게도 설득이나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본 영화는 제목과 내용이 시기적절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물의 형태라니.  

 

짧게 기록 남겨본다.

 

 

 

1. 뮤지컬이 떠오르는 박자감 있는 전개

무대 장치의 한복판 처럼 보이는 묘한 감각

왜 뮤지컬스러운 느낌이었나.

위의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위의 기묘한 감각의 무대도 한 몫할 것이고. 대사를 읊는 이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카메라도 같은 맥락일 것이고.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엘라이자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엘라이자의 대사는 말이 아닌 수화로 전달된다. 이 특성으로 초점을 옮기는 순간, 영화의 모든 흐름은 엘라이자로 기울어진다. 소리를 잠시 극의 가운데서 밀어두고 인물 표정과 행동에 초점을 깊게 옮긴 것이, 하나의 동적인 연극을 보는 감각을 준게 아닐까.   

 

 

대사의 무게도  마음을 울리는 극화체로 와닿는다.

 

가끔은 너무 일찍 태어났거나 늦게 태어 났나 싶어
삶이란 부서진 계획의 잔해에 불과하다

 

삶이란 부서진 계획의 잔해에 불과하구나. 세상에. 

특유의 나레이션과 더불어, 잔잔한 스토리북을 보는 듯한 감각까지. 이렇듯 구전동화를 읽어주는 감각은 한 때 세월을 초월한 괴작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Pan's Labyrinth, 2006)을 떠오르게 하지만, 보다 잔잔하게 어른이 되어가는 마음을 품어주는 구석이 있다.

 

 

2. 그리고 피날레 뒤의 잔잔함

물속에 잔잔히 가라앉는데, 저 깊이감이 사뭇 무섭지만 또 아늑해보인다. 

위의 박자감과 감정의 격앙 뒤에는, 항상 물이 연상되는 잔잔함을 배치해 둔 게 인상 깊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물에 고요히 잠기는 장면이나 물의 색감은 인상 깊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교감을 통해, 정적인 장면과 상황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서 평온감을 안겨주는데, 보는 이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는 장면에서 안정감을 그려내는 것이 감독의 치밀한 배치가 엿보였달까. 

 

 

 

3. 결론

 

이념과 피부색, 장애 까지 유려한 기술로 영화속에 녹여낸 역량이 인상 깊었다.

심해 생명체나 괴생명체를 묘사하는 역량은 이미 헬보이나 판의 미로 등으로 충분히 검증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회를 품어내 서사를 쓴 기술보다는 주된 플롯의 허망함이 보다 깊게 남는다.

 

영화의 핵심 소재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나? 혹은 스플라이스(Splice, 2010)와는? 나를 알아봐주는 이와의 짜릿한 탈출극의 연장선상에서, 뒤집힌 듯한 알라딘의 향기마저도 느껴진다. 이 무수한 향기가 섞이고 보니, 알 거 같은 영환데? 하는 느낌만 남는 것이다. 물론 외향적으로는 헬보이(Hellboy, 2004)의 블루가 떠오르는건, 또 다른 이야기다.

작게 참조하는 수중전의 대명사 매트릭스3. 녹색 빛깔로 그려낸 물들은 또 상이한 감각을 안겨다 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특유의 비주얼적인 감각은 찬사를 받을만 하다. 물에서 함께 유영하는 장면도 좋았지만 특히 비 내리는 부두를 색감 있게 그려내는 것은 인상 깊었다. 채도는 매트릭스3이 연상되는데 연상되는 감각은 사뭇 다른게 신기하기도 하고. 비 오는 주말이다 보니 더더욱 몰입되는 색감이었달까.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존재에 대해 직관적인 전달은 되었다만, 그 결론이 사랑이라는 것은 쉬이 설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사랑의 본질이 형을 초월한 교감 능력이라 언급하기에는 사랑의 정의를 고민하는 장면이 부족했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논제는 영화에 크럼블처럼 흩뿌려진채 매끄럽게 붙여지지 않은 느낌이다.

엘라이자의 한번의 외침만으로는, 사랑은 인간만 가능한가, 사랑의 정의에 앞서 인간을 정의해야하는가와 같은 내재하는 문제가 선선히 전달되진 않는다. 거기에 소수자와 괴생명체를 교묘히 겹쳐놓은 영화로 나왔으니, 아름다움을 느끼기 이전에 불쾌한 골짜기와 정체성의 비난에서 영화 감상을 멈춘 이들이 나온게 아닐까. 아모르와 에로스의 교묘한 접합도, 현대에는 금기시 되는 내용이기에 시대가 지날 수록 영화의 주제의식은 산산히 바스라지는 느낌이다. 

 

평점은 6점으로 매듭짓는다. 

아마 보다 큰 극장, 재개봉의 시점에서 보았다면 좀 더 색감에 압도되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서사에는 특유의 독창성이 떨어진 느낌이다. 1시간 4부작 정도의 옴니버스식 드라마로 구성되어 단편으로 수록되었다면 납득되는 선의 내용이라 생각한다.

 

작게는, 신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치유의 기적은 머리와 탈모에도 닿았다. 탈모는 질병이고 치료 가능하다는, 거장의 울림 있는 메세지. 그렇기에 대머리와 숨은 대머리가 많은 아카데미에서 모든 이의 마음을 울린게 아닐까. 

정답은 심해속 기적의 민달팽이가 가진 점액질, 그것이 신의 정체성이었다. 바이오쇼크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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