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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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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8 / 10 

 

고독의 서사에 빛과 소리와 사회를 입혀낸 모습. 함께 겸허히 슬퍼진다.

 

덩케르크와 같은 어떤 것이 놓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자리에 앉았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시대적인 흐름, 막대하고 파급력이 예측되지 않는 프로젝트 앞에 놓인 각 작은 주체들. 사회적 요구의 결과로 그 파괴력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원자 폭탄과 그 허망한 잔재. 즉, 원자폭탄에 초점이 맞춰져 그 아버지가 설명될 줄 알았지만,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었다. 스크린에서는 영화의 제목에 걸맞게, 조금 더 고독과 공허함을 짊어진 개인을 풀어내고 있었다.

 

묘하게 영화의 본질이란 이런 것이다하고 미소짓고 있는 시선들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괜한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작게 기록 남겨본다.

 

 

1. 인팁의 사회화 과정과 그 해후.

배우들이 배우들이다 보니 어딘지 공포영화스러운 느낌도 살짝.

비 내리며 이루는 물의 파동이며, 오펜하이머가 빛과 항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작은 불꽃이 터져가나는 장면들이 매혹적이었다.

이 인물의 핵심적인 동작 원리는 이런 이미지의 상상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불필요한 대수적인 증명과 직접적인 실험을 통한 입증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동작이 숨겨져있는지. 이를 세밀히 측정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닌 상상하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오펜하이머는 여실히 이런 부류의 사람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이론 물리학자로 그 유형을 지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도의 한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분 INTP이구나.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이겠구나.

 

 

오펜하이머를 가까이서 응시하며 그 고독함을 짚어내기 위해서는, 천재성을 주시해서는 안된다.

통상의 흔한 맥락인, 너무 뛰어난 천재라 주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맥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논문이나 이론 물리학자로서 원자폭탄의 이론적 배경을 단단히 굳혀내는 작업은 덜 그려내지 않았던가. 오히려 중요한 것은, INTP성향의 인물이 기나긴 사회화 과정 끝에 어떻게 거대한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어 성과를 창출해냈으며, 이로 인해 타인들이 그를 어떻게 왜곡하여 바라보게 되었는지 이다.

프로젝트의 위업과 그의 역할 및 행동에 초점을 맞추게 되자,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리더, 지도자, 정책결정자 또는 선지자 등의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었다. 트루먼은 그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큼을 보고 징징거리는 애는 들여보내지마 하고 내치고, 스트로스는 그에 대한 적의에 더해 과학자들에 대한 감정에 휩쌓여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를 기획하게 된다. 사람을 깊게 파악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이자 양 쪽 모두에 안타까운 일이다. 저 앞에 놓인 몽상가를 정무적인 이용대상이 아닌 조언자로 생각했다면, 사뭇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텐데 말이지.

 

 

 

복장을 보면 추위의 문제는 아닌거 같은데. 담배의 변화를 주시하는것도 재미있다.

적어도 우리는 이 영화로 하여금, 오펜하이머에 대한 해석의 하나를 체험하지 않았나.

좀 더 다듬어지지 않은 청년기의 모습과 상상력이 이 사람의 본질이라면, 외향적이고 진취적인 프로젝트 리더는 이후에 학습되고 스스로 덧입은 모습이겠구나 추론할 수 있다. ENTP스러운 인물로 예측하고 행동했지만, 그 내면은 여실히 연구하고 탐구하고 공상하는 것에 만족하는 영역에 걸쳐 있는 것이다. 그 간극과 고독을 고스란히 공감하고 나면,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과 중압감, 외로움 등이 풍부하게 밀려들어온다.

 

INTP의 사회화 과정에서는 최소한 과도한 양의 담배와 광활한 뉴멕시코의 평야, 그리고 대외적인 면을 전담해줄 군인과 같은 파트너가 필요함을 잊지말자.

 

 

2.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내는 빛과 소리에 대한 애정

그렇다면 공감의 깊이는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단순한 서사만으로 저 공허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한다면 그것은 오만일 것이다.

사람의 모든 감정선과 상상력을 문자로 담아내긴 쉽지 않을테니까.

 

이 지점에서 감독과 배우들의 자부심, 애정, 몰입이 느껴지는 장치들이 담겨진다.

작게는 킬리언 머피의 얼굴, 눈에서 오는 입체감에 빛을 덧입히며 그려내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모든 고뇌를 짧고 명쾌하게 전달해주는데, 특히 청문회로 이어지며 그 창백함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게 탄탄하게 느껴졌다. 로스 앨러모스, 핵실험장 등 공간별 색채와 청문회의 톤이 대비되며 이러한 색채와 배우의 조화는 강렬하게 드러난다.

 

긴 호홉의 영화이니 좋은 지점을 하나하나 모아 나열해보자니 또 쉽지 않다.

큰 분류로는 음향의 활용. 핵폭발 실험, 실제 투하 전후의 소리의 활용도 몰입감을 높여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성공 축하 연설 직후의 공황감을 담아낼 때가 가장 강렬하지 않았나 생각든다. 이 외에도 원자폭탄의 연쇄 반응을 암시하기 위해 빗방울이 떨어진 뒤 그려지는 파동을 담아내는 부분은 클래식하지만 적절했고. 그럼에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초반의 오펜하이머가 우주 어딘가를 고민하며 일렁이는 작은 불꽃들 아니었을까. 큰 폭발의 묘사보다 작은 폭발들의 묘사가 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3. 결론.

세심히 관찰하면 나이들어 보이는데 전체적으로는 어린 티가 있는 묘한 느낌.

INTP 이 사회화 되면 INTJ가 되는줄 알았지만, 때로는 ENTP처럼 위장하여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이 지점이 캐치되어, 가장 유명한 과학 세일즈맨으로 불리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스트로스, 트루먼과 같은 이들과 가장 큰 차이가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라 생각한다. 오펜하이머와 같은 이들이 필요한 인정은 본인이 동류라 믿는 지성의 이들에게 받는 인정과 존중일 뿐이지 모든 이들, 모든 의사결정권을 갖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로스와 같은 인물들이, 그리고 모든 사회와 조직에 존재하는 권력지향적 인간들이 연구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여기라 생각한다. 똑같이 프로젝트의 리더가 된다 한들, 목적과 결과가 다를 수 밖에. 

이 미묘한 간극을 영화에서 담아낸게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을 담아낸 부분이 안타깝기도 하다. 결국 사회가 소모시켜버린 연구자일 뿐이지 않나. 여느 회사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탐구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이 영화는 바칠만하다.

 

 

반면 아쉬운 점 몇 가지는 분명 선선히 드러난다.

진 태트록과의 유대감은 조금 뜬금 맞게 강조되고 줄어드는 부분. 러닝 타임이 더 길었다면 아마 더 추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줄이고 줄여서 3시간인데, 그 간의 심적 공감을 풀어낼 길이 섹스 밖에 없어지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다보니 나만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나, 자살 소식을 듣고 절망하는 부분은 다소 급박하게 다가옴이 아쉬웠다. 저 유명한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를 함께 엮어냈어도 다소 부족했다.

 

 

비가 내려도 강력한 위기로 느껴지진 않는다. 감정의 충돌이 없는데 결과도 알기 때문 아니었을까. 신파없이 담담했기에 오히려 좋긴했다.

이러한 몇몇 인물들과 연결이 압축된 것은, 핵폭탄을 담아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적인 폭발력을 살짝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엇박자로 터진 감정선이라고 해야할까. 진 태트록, 케네스 니콜스, 에드워드 텔러 등에 시선을 옳길 때 영화의 흡입력이 떨어진다. 배우의 문제라기엔 180분이라는 작위적으로 맞춰진듯한 시간을 바라보며, 편집 되어야만 했던 이야기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오펜하이머-1, 오펜하이머-2, 오펜하이머-3과 같은 3부작 보단 이게 타당하긴 하니 어쩔 수 없지.

 

평점은 8점 정도로 마무리 짓는다. 

큰 화면, 좋은 음향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조금 적은 영화관과 시간대를 찾아보기를 권장한다.

함께 우주 너머의 어딘가를 공상하다 현실로 건너오는 체험을 할 수 있었고, 그게 더 이 영화를 보는 좋은 방식이지 않나 생각된다.

 

아, 멧 데이먼 닮은 사람인줄 알았다. 킬리언 머피만 생각하고 따로 어떤 배우들이 나오는지 찾아보지 않고 영화를 봤는데. 어딘가 긴가 민가한 얼굴이 자꾸 나오더니. 군인 같은 인상에 맞물려 신묘하게 듬직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체중 조절을 경이롭게 한건지, 옷을 잘 껴입었는지 인상 변화는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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