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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Babylon, 2023)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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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8 / 10

 

영화라는 현상에 대한 애수 어린 응시
퇴사하고 유튜브 찍으면 결국 복직해야한다를 1세기 전 사례로 보여주는 이솝우화

 

 

할리우드를 그려낸 라라랜드 감독의 뛰어난 어쩌구 저쩌구.

이 영화를 그리 끌리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한 설명이었다.

무슨 사극도 아니고, 또 할리우드의 뒷 역사야?

 

배우진도 녹록치 않다.

우선 우리 빵형. 갑자기 마피아가 개입해서 자자 선수 입장. 배우 들어갑니다 할 것 같은 이미지라 해야할까.

가뜩이나 할리우드인데 악동역에 친근하다보니, 파이트 클럽 모습의 연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하나. 

여기에 마고 로비까지? 또 어떤 광년이 역할을 시키려고 그럴까.

배우의 이미지들도 이만큼이나 짙은데, 감독의 색도 워낙 위플래쉬나 라라랜드로 음악적인 인상을 강하게 남겨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겠다 싶어지고. 

 

그러던 와중에, 어 이 영화 재미있다던데 하는 작은 추천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저녁 9시 30분께 영화관 자리가 넉넉하게 비어있어서, 혼자 고즈넉하게 보고와도 되겠다 생각이 퍼뜩 든 게 둘. 이 정도 맥락이 덧이어 지면 안 볼 영화도 생각없이 보게되는, 그런 흐름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딘가 이상한 지점이 많았다. 직접 보고 재밌다 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재밌다던데를 건네준 게 추천은 아닌거 같은데 말이지. 여기에 9시 30분대의 영화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그냥저냥 볼만한 시간대인데 재미가 없나 생각하며 영화 예매를 취소할 시간도 있긴 했다. 영화 런타임이 3시간에 달한다는 말은 당시엔 기억 못했더랬다.

 

결론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든 영화에는 보게 될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먹고 이 때 봐야지 하는 것 보다 어라, 봐볼까 하고 덜컥.

그리고는 새벽 1시에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걷게 되는 것이다. 와, 재밌었다. 하면서.

 

그렇게 와 재밌었다 카테고리에 합류한 영화 한 편이다. 작게 기록 남겨본다.

군데 군데 어쩔 수 없는 스포일러는 담겨있으나 그러려니 하자.

 

 

1. 지나쳐가는 영화인들에 대한 찬사

어느 작품의 토크였나, 어느 영화 유튜버였나 이런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영화 촬영장은 전쟁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어디었을까.

도입부를 장식한 광란의 퇴폐 파티? 철저히 망가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넬리 라로이? 잭 콘래드의 고독함과 최후? 다시 생각해봐도 유성 영화로 넘어간 이후 첫 넬리 라로이의 촬영 중, 카메라! 사운드! 액션! 하고 수 회, 수 십회를 반복하며 찍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영화를 찍는 자리는 전쟁터고, 감독은 가차 없는 폭군이거나 광기가 엿보여야 하는지, 왜 배우들과 기싸움한다는지 그 맥락들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이 영화가 그 모든 걸 설명해준다. 

거기에 더해, 찬사, 애잔함, 한 씬을 다시 촬영할 때마다 땀으로 젖는 대본집과 번져가는 화장 등. 기술의 변화에 따라 배우들이 어떻게 생존해나가야만 했는지 고스란히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다시 본다면 조감독, 혹은 연출을 맡은 담당자가 광기어린 웃음과 눈빛으로 카메라! 사운드! 액션! 하고 외치는 대목을 무릎 꿇고 보지 않을까 생각든다.

 

기술의 변화가 주는 권력의 변화도 흥미롭다.

단순한 외모, 강렬함, 자유분방함으로 대응할 수 있던 무성의 영역에서 음성 하나가 추가되자, 배우와 감독, 기술자의 권력관계가 순간 재편된다. 무성 영화에서는 훈련한게 아닌 주어진 스타의 자질, 관능미를 발휘했던 넬리 라로이가 음성 하나가 추가 되는 순간, 타고난 목소리, 대사의 암기, 자연스럽고 적절한 발성을 새로 요구 받으며, 사소한 씬하나를 쉽게 넘기지 못하는 대목. 그리고 감독의 컷 사인을 배우가 직접 받아내던 권력구조가 음향 기술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대목까지.

 

그리고 우리의 친애하는 영화배우들은, 저 변화의 시대를 살아남거나, 시대가 바뀜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만 남긴 채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영화배우들은 자신이 담겨있는 빛나는 영상물은 남아있는 것이고, 다시 기억될 수 있노라, 영화는 엘리노어와 잭의 대화를 빌어 덤덤하게 전달한다.

 

 

2. 아쉬운 번역과 미국의 생태계

영화 사진을 네이버에서 찾으니 자극적인 도입부 파티만 가져다 놨네.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영화판을 알아보는 영화인을 위한 영화인가?

너무 영화를 반복해놓은 질문이긴 하지만, 영화인이 아닌 그 이전에 미국인을 위한 영화라 생각한다. 영화 바빌론은 영화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수모 이전에, 미국의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살아오면서 겪었을 차별들을 언어에 녹여 표현한 흥미로운 근대사 영화다.

 

그래서 배우들의 억양, 그리고 매 순간 표현하는 자신의 출생지들에 대한 언급들은 왜 영화가 바빌론으로 이름 지어져야 했는지 전달하며 다가온다. 가장 직관적인건 매니가 자신의 출생지를 멕시코라 이야기하다, 영화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왔다고 거짓말 하는 부분이랄까. 강렬한 멕시코 풍의 영어는, 그 전후를 나누어 찬사와 멸시의 대상으로 나뉜다. 그럼에도 매니의 영어는 매우 흥미롭게 들린다. 강한 멕시코스러운 억양에 더해 흥분하면 튀어나오는 스페인어까지. 넬리와 대화를 조심스럽게 하는 것도, 단순한 사랑이 아닌 이민자로서의 조심스러움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다. 어휘와 문장이 풍부하지 않으니, 대사를 직관적으로 하는게 아닌가 싶은거지. 영화의 종반에 이르러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순간에는, 다시 본연의 언어가 나오는 대목은 인상 깊다.

 

작게 멕시코로 짚어냈지만, 이 영화 속 모든 계층은 각기 다른 언어와 억양을 사용하며,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 산업에서 언어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분짓고 계층화 했는지, 혹은 언어에서 계층이 드러나는지 여실 없이 보여준다. 특히 그게 강조되는 부분은 투자자와 부유층의 모임에 백인인 넬리 라로이, 흑인 연주가인 시드니 팔머가 초대되어 대화하는 부분이다. 대뜸 Enchantee로 인사를 화답하는데, 저 머나먼 미국 땅에서 고위층은 프랑스어로 인사하던 영국 문화 하나, 라로이라는 이름에서 프랑스적인 연관성을 짚어내기 위한 처절함 둘. 물론 번역에는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 정도로 치부되었지만, 사용된 언어가 다름에서 이 대화가 치밀한 신경전이 있음을 직감하게 해준다.

 

짜잔. 토비 맥과이어 형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온갖 영화에서 생각치 못한 배역으로 나타나준다. 감사합니다. 알고보니 제작자기도 했다.

 

언어적인 긴장감에서, 영화는 소리에 더해 다른 차원으로 미국 사회를 다시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스크립트를 미리 받아 단독으로 옮겨나가는 번역 작업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전달되지 못하고 놓치는 맥락들이 매우 아쉽다. 작게는 초반과 후반을 장식하는 레이디 페이 주의 나의 작은 고양이? 노래하는 씬. 이런 고상한 노래가 아닌데 말이지. 적어도 pussy는 정직하게 번역해주는게, 레즈비언적인 성격도 빨리 짚어주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번역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부모님께 찾아가지 않냐 물어보는 넬리 라로이와 매니의 대화에서도, 가서 say hi하지 않는다는 대화를 그대로 넘겨주는게 좀 더 직관적이었을 것 같다. 좀 더 격식있고 고풍스러운 단어가 아닌, 편안한 단어 선택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해야하나. 

 

각 인물에 대한 호칭도 매우 아쉬운 번역이라 생각한다. 초반의 매니를 언급하는 것도, 그 멕시코 인 어디갔어가 아니다. 치카로 부른다. 우리가 조센징을 한국인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잖아. 그 멕시코 출신 애새끼 어디갔어 정도 번역해줘야, 아 이게 비하하는 호칭이구나 하고 직감이 오고, 왜 매니가 코끼리 운송이 싫어서 탈출한게 아니고 좀 더 거대한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 마지막 대목에 영화 제작자도 아닌 CEO와 같은 직함에 집착하는지 전달이 되었을텐데 말이지.

 

흑인 음악가 시드니 팔머에 대한 서사도, 이 호칭에서 전달되는 서사가 사뭇 다르다. 앞선 부유층 파티에서 왜 표정이 굳고 먼저 떠났는지 이해하려면, 영화의 배역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때 한국어로 '흑인'으로 번역된 부분이 돈 많은 백인들 파티 한가운데에서 니그로라는 호칭이 나왔고, 그 와중에 우리를 위해 연주해줘야 하지 않냐며 파티를 즐기는 동료나 손님이 아닌 일꾼 대우를 받았기에 떠났음이 전달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술꾼이라더니 몸관리 대단한걸 보고 반성 중이다. 빵형은 롱런하는 이유가 있다니깐. 이 영화에서는 이경규 옹이 겹쳐보인다.

빵형이 연기한 잭 콘래드도 마찬가지다. 연극하던 피앙세와 대화하며 발성 지적을 받을 때는, 특유의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듯한 끈적한 말투에서 보다 영국스러운 강세를 쓰도록 지적받으며 충돌이 나타나고, 참다 못해 10만 이면 대작이었을 연극이 어딜 감히 영화 이야기를 논하냐 소리 치는 건데 말이지.  

 

 

다양한 언어, 다양한 발성, 다양한 억양. 이것은 영화인을 위한 영화 이전에, 그 미국의 혼란한 억양과 문화를 온전히 알고 있을 미국인 만을 위한 영화다. 그래도 아쉬운 건 번역에서 조금 더 천천히 검토하고 분석했다면, 억양이나 언어가 바뀌거든 이탤릭체를 쓴다던가, 노랑색으로 강조한다던가, [ ] 를 써 다른 언어라는 늬앙스를 보여줄만도 했을텐데 말이지. 

 

문화가 결코 섞이지 못하고, 위태롭게 쌓아올려진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각자 무너지는 대목.

이 영화의 제목이 바빌론이어야 했던 이유는, 이 언어의 차이와 한점 남김 없이 바스라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아닐까. 

 

그리고 놀랍도록 고요하게, 각 인물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 외로움을 영화가 해결해준다고 외치던 잭 콘래드는 스스로의 외로움, 그리고 그 반복을 버티지 못했다. 넬리 라로이도 본인의 처음 집에서 느낀 그 가난과 공허함을 벗어나지 못했고. 한때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이며 영화 제작사 CEO라고 스스로 소개하던 매니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멕시코인일 뿐이라고 생명을 구걸해야만 했고, 자신의 언어를 끝내 바꾸지 못했다. 그렇게 오래 미국에 살았음에도, 언어와 억양은 바뀌지 못했음은, 작게 일렁임이 남는다.

 

 

3. 결론

마고로비가 연상이라서 다행이다. 편안하게 누나라고 불러도 되잖아.

어딘가 대단한데 어딘가 결여감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전기영화인듯, 스릴러인듯, 뮤지컬 영화인듯, 온갖 요소를 담아내며 인물, 연출, 기법들을 하나씩 스크린이라는 대상에 올리고 내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보통 영화, 아니 서사는 한 사람을 지긋히 응시 하는게 정론 아닐까. 이 영화는 여럿의 배우들을 교묘히 다뤄, 지긋히 응시하는 척하며 그들이 올라가고 내려간 할리우드라는 장소를 공허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의도된 공허감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감독이 느꼈을 법한, 혹은 잭 콘래드와 넬리 라로이, 매니 토레스, 엘리노어, 시드니 팔머, 레이드 페이 주가 각기 느꼈을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 되고, 이 시점에서 영화가 주는 의미는 새롭게 재구성 되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까지 공감이 된다면, 외로움을 영화로 해결한다는 도입부의 잭 콘래드의 연설은 새삼 다시 보인다.

누군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고 새로운 미술, 새로운 시각을 고민한다면,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위로를 주지 않을까.

당신은 마냥 혼자가 아니고, 비슷한 고민들을 한 사람들이 할리우드라는 장소에 모였지만, 비슷하게 잊혀졌노라 하고.

 

평점은 8점정도로 마무리 짓는다. 

울림이 있고 매력도 있는 멋진 배우들이었지만 아쉬움은 분명 존재한다. 특히 영화의 길이 대비, 변주의 반복이 심한 느낌이다. 핵심적인 줄기가 되는 음악 두어곡이 편곡되고 재생되는데, 영화의 전체 길이와 더해 단조로움을 안겨준다. 이 단조로움의 무게는, 마고로비가 또 색기 있고 미친년 역할을 하네, 브래드 피트는 또 술취한 거만한 악동 역할을 하네 정도의 단조로움이다. 다시 말해, 영화를 보지 않음을 선택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하지만 드라마로 끊었다면 이 정도 무게감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쉽지 않은 영화긴 하네.

 

 

 

이후 찾는 이들을 위한 작은 팁 몇 가지.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 놉(2022) 정도 보고나서 이 영화를 본다면 또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도입부에는 여성, 남성의 나체, 광란의 환락 파티, 마약이 그대로 드러나고, 다소 충격적으로 더러운 시작부가 있다. 물론 종반에 다다르면 고어스러운 장면도 상당하다. 한국에서 18세 금지 정도로 붙어서, 어떻게든 극장에 올라간 것에 감사하자. 2000년도 초반의 한국이었다면 결코 극장에 오르지도 못했겠지. 

 

 

아, 배우들의 연기는 다시 찬사를 보낼만하다.

브래드 피트 억양, 마고로비의 목소리 갈라짐 등은 놓치기 아쉬운 부분 아닐까.

여러모로 소리에 강점을 가진 감독이, 어떻게 CG가 아닌 소리를 영화로 다시 끌어올렸는지 되짚어보면 흥미롭다.

집에서 보는 날을 기다리기보다 영화관에서 보는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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