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과 리뷰작성, 합쳐서 하루 4분의 1

본즈 앤 올(BONES AND ALL, 2022) 리뷰

Traby 2022. 12. 11. 13:05

 

0. 들어가며

 

7 / 10

 

자식 키우기 조심스러운 이유, 결혼은 두 집안의 만남이고 그래야 했다.

 

영화를 보는 일이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있는 만큼 연달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어쩌랴, 앞선 영화를 보려 영화관에 갔다가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었고, 11월 30일 개봉에 작품성에 초점인 영화라면 머잖아 내려가겠거니 싶은 예감이 밀어 닥치는 것을.

 

마음의 조급함을 더해주었던 것은, 배우들의 면면이 낯익어서 마냥 놓치기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여주인공인 테일러 러셀은 이스케이프 룸 시리즈의 주역이었고, 남주인공인 티모시 샬라메는 이제는 자주 봐서 또 익숙한, 최소한 듄은 또 기억이 나니까.

 

가볍게 보기에도 비범한 시각 밤 10시 30분. 

그리고 장르는 공포와 로맨스. 영화의 대략적인 소개는 또 식인이라고 하는 이 스산함을 안겨주는 소재까지. 마침 보름달도 청명하게 떠있는게, 보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무섭진 않겠다 싶다.

이 영화 꼭 보세요 하며 이끌어내는 자리는 다 구성되었으니, 남은 일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영화를 응시하는 일 뿐이다.

 

짧게 기록 남겨본다.

스포일러는 간헐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거 누가봐도 도시 슬럼에서 인디 음악하는 청년 + 상경한 시골 소녀 이런 구도 아닌가

 

 

1. 피할 수 없는 불운과 선택

휴대폰이 아니라 워크맨인 지점에서, 영화의 최소한의 합리성은 맥을 이어준다.

특이성의 유전이라는 관점에서, 자녀는 어떤 의미일까. 아무도 모르고 숨겨진 할아버지의 특이기질을 물려받는다면?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의 문제인가 혹은 배우자의 문제인지, 추정하고 판단해야하나? 그러던 어느날 배우자가 그 동안 숨긴 사실이 있다며, 미안하다고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면 또 어떻게 해야하지.

어쩌면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나 치료, 개선 가능한, 혹은 작은 해프닝일지도 모른다. 아니, 과연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까의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육아의 단계 이후 양육하고 교육하는 과정에 다다르기까지, 이 모든 일들은 한 길 아래를 추측할 수 도 없는 살얼음판을 걷게 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특이한 면모들이 누군가에겐 저주와 같을, 한편으로는 사회적 금기와 같은 부분이라면야.

 

이 영화는 아버지의 고백과 독백이 담긴 테이프로, 그 고민과 번뇌의 시작점을 짚어내고 매런에게 물려준다.

 

이게 케일럽이 게이같아보인다고 말한 셔츠던가. 긴가 민가하네.

아버지의 도주와 가정의 무너짐을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갑자기 식인증을 고백하고 떠난 아내, 첫 살인을 일으키며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게 만든 3살의 딸. 어떻게든 성년인 나이까진 버티고 수습하고, 우발적인 살인을 치워내고 또 자식을 보호해왔는데 말이지. 사회적 규범이 강조되는 동양적인 사회였다면 또 다른 평가를 받을법 하지만, 저기는 그 황량한 야생인 미국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식인 욕구가 없는 사람의 시각에서, 그 자식의 행동에는 본의를 알 수 없는 저 너머가 있다. 과연 식인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걸까,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또 다시 속이고 친한 친구들을, 가까운 지인들을 잡아 먹는다면. 그렇기에 아버지의 음성 녹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매런 보고 나이 들어가며 영악해졌다 하는 부분이다.

식인이라는 행위, 거기에 도달한 특이한 사람들. 그 내면은 피를 이은 부모조차도 쉽게 헤아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한참 일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말대로 테이프를 파기하는 대목.

이후 스스로 격리한 매런의 어머니를 만나며, 이 특이성은 다시 정의된다.

이해되고 공감받으며 교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랑의 세계에서는 죽음으로 처리되어야할 오류라는 것을. 같은 혈연의 어머니를 만나면 비로소 답을 찾고 일련의 이끌어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음에도 양손을 스스로 먹어치운 그 처참한 몰골, 그럼에도 자식에게 죽음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겠다며 달려는 모습은 안타깝다.

 

작게 일렁이는 의문은, 저들의 식인이라는 행위는 어느 정도 사랑하는 혹은 이끌림이 강할수록 그 욕구 또한 강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런의 어머니도 정기적으로 시체를 찾는다던지, 남편에게 어느 시점 사실을 고백하고 대응하려 했던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매런이나 리의 식인행위나 심지어 샐리의 광증어린 수집도, 같은 선상에서 읽히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야, 매런의 어머니가 다급히 떠난 것도 작게 이해는 된다. 최초 매런의 식인을 담아내는 장면도 가장 오랜시간 시간을 함께 보낸 아버지를 먹은게 아닌, 친구의 집에서 손가락 매니큐어 칠한 것을 보며 매혹된듯 씹어먹었던 것을 생각하면야. 그 대상이 보다 사랑하는 자식이게까지 퍼지지 않을까 무서울 순 있겠네.

 

어쩌면 정상인의 범주에 가진 기질을 강하게 물려받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본인만 조심하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이 영화는 그런 이들에게 어떤 류의 불운은 미처 피할 수가 없음을, 그 불운은 자녀와 가정이라는 모습을 덧입고 올 수 있음을 무섭게 보여준다.

 

그리고 매런에게 남겨진 것은,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고, 사람들을 판단하며 나아가는 길 뿐이다.

 

2. 미국의 서부로 가는 길

미국 가고 싶다.

일전 미국의 서부을 남북으로 이동할 때, 그 광활한 농경지에 압도 되었던 기억이 있다.

옥수수였을지, 밀이었을지 지금은 모를 그 농경지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한국과 같은 산맥, 큰 산, 언덕과 같은 게 없이 무한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듯 했다.

이 광활함, 그리고 그것을 사람의 삶으로 이어주는 도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그런 미국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주어 흥미롭게 읽힌다.

 

예를 들어 처음 매런이 다른 도시를 이동하려 버스를 타고자 할 때, 가출한 건가 의심하며 드라이버 라이센스나 임시 permit을 요구하는 장면. 나는 어라, 꽤나 예전 시대가 배경인줄 알았는데 자동차 렌트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 대신 출생 증명서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깨달았다. 아, 이 나라는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사회보장번호나 운전면허증으로 본인 증명을 한다 했지. 둘 다 갖출 수 없던 매런은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인 출생 증명서로 본인의 나이와 존재를 입증했던 것이구나.

 

한번씩 운전할 때 중간선을 물고 달릴 때가 보인다. 잘 찾아보자.

지명을 다 기억하지 못해서 아쉽다. 병원은 미네소타 쪽이었던 것 같고. 중간에 오하이오를 거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초반에는 아마 메릴랜드 동부에서 서부로 건너왔다 하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도로 고스란히 모아놓고 보면 동부에서 서부로 머나먼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부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라도 한 번 더 봐야 싶긴하네.

구글 지도로 어렴풋이 쫓아보는 지명들.

미국 동부는 초기 이민자들이 머물렀던 만큼 오래되고 인구가 많은 도시가 많다고 들은 반면, 서부로 넘어가기 위한 그 북쪽의 가운데 구간은 보다 인적이 드물다고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마 노스다코타, 사우스 다코타 이 부근이었을텐데. 구글 지도의 큰 축척에 잡힐만한 넓은 도로 또한 분명하게 드물어 보인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자동자가 퍼질 때까지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아닌 차라리 서부로 갔다면 어땠을까 생각은 든다. 63kg의 애티튜드만 강한 리, 그리고 사람도 직접 죽인적이 없던 매런은 저 황량한 대지에서 혼자 살아가진 못했겠지만서도. 정작 동부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고스란히 살아남기도 힘들었을테니까. 

 

영화 사이사이 지명을 보여주는 대목,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같은 방식으로 시점 - 6월, 7월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작은 울림이 있었다.

공간적인 전환과 시간적인 전환을 혼합하며 저 여행기간이 얼마나 길었을지, 그리고 잠시 보통의 사람처럼 생활한 기간이 얼마나 짧았을지 다시 느껴졌달까.

다시 본다면 꼭 지명 외워서 나와야지.

 

 

3. 결론

그 와중의 커피가, 모 뱀파이어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모든 것을 예측하게 해주는 단단함이 있다.

샐리의 괴기함은 첫만남에서부터 바로 결말에 또 나오겠구나 하는 불운한 직감을 안겨주고,

매런과 리가 본즈 앤 올을 처음 듣는 순간, 아, 둘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을 뼈채로 고스란히 먹겠구나 하는, 그런 직감들.

영화의 예상가능함은 스산한 소리, 배우들의 매력을 덧입히며 완곡하게 매듭지어진다.

 

원작이 청소년을 위한 소설로도 추천되었던 만큼, 괴기감은 하나의 흥미를 끄는 요소로 덧붙여지며 기본적인 이야기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설계된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식인이라는 요소를 강조하면 벰파이어 이야기, 식인이라는 요소를 낮추면 적절한 교육과 보장을 놓친 사회의 일면, 각 개인을 뜯어보면 가정과 가족이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보면 늘어나는 독거 노인 인구와 빈 집을 감내할 수 없는 치안 문제 등.

 

영화의 기록으로 돌아와 6점~5점 정도의 서사에 대한 고민을 덮는 배우들의 매력, 미국 내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들을 회고하며

7점 정도로 기록한다.

 

물론 재관람의 시점에는 처음 영화관에서 볼 때만큼의 강렬함은 남기지 못할 것 같다.

초반의 설리와 대면에서 이어지는 소리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들은 영화관이 아니면 전달되기 힘든 부분이 있었으니.

칼 소리, 새를 손질하는 소리나 직접적인 식인의 묘사, 기묘한 노랫소리와 눈에 대한 강조 등. 여러모로 감각을 자극시키는 영화고, 그런 관람 시간대였다. 밤 10시 넘겨서 혼자보고 나올 영화는 아닌데, 또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몰입 했을까 싶긴 하네.

 

 

한마디 더. 역시 나였다면 아마 서부로 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북부 보다는 또 다시 남쪽으로.

어찌되었건 미국은 넓으니까. 

작중의 마을에 잠깐 머무르는 대목들은 어딘가 한국 영화적인 냄새가 나는 반면, 이렇게 흔적을 고스란히 삼키고 떠나는 대목들은 일본스러운 맥락도 읽힌다. 왜냐고? 그냥 직감이다.

 

아, 작중의 영어 악센트가 묘하게 바뀌어 가는 느낌이다. 기분 탓이었나.

테일러 러셀을 다시 찾아보니 94년생, 30대의 코앞을 둔 상태였다. 극 중 18세라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게 위화감이 없다는게,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건지 싶기도 하고. 동양인은 나이드는 것 같지 않다와 같은 맥락인가?

티모시 샬라메의 돈 룩 업(Don't Look Up, 2021) 에서의 모습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본 작을 보고 더 좋아하겠거니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테일러 러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