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by 2022. 12. 8. 12:39

 

생각보다 많은걸 담아넨 포스터였다.

0. 들어가며

 

7 / 10

 

기억해라 애송이들, 치즈버거는 미국의 라면이라는 것을.

 

 

2022년의 영화관람은 지극히 단순한 패턴으로 구성된다.

볼만한 영화 없나 -> 그냥 영화관부터 가보자 -> 어라 이 배우/감독의 영화가 나왔다고? -> 크.. 띵작..

돌이켜보면, 자본 투자가 위축될만한 코로나 이후, 영화라는 1~2년 정도의 투자기간을 요구하는 산업이 최적해로 빚어낸 결과다.

코로나가 2020년이었으니, 긴급히 투자를 축소하면 은근슬쩍 저 머나먼 한국의 극장에 까지 나온 영화들은 생각보다 투자자의 크나큰 의사결정, 거장의 손길, 뛰어난 배우의 의지, 그 무언가들이 모여 자아낸 영화 인 것이다. 그러니 실패하면 그 정도의 저자본인거고, 생각보다 매력있으면 그 정도의 영혼이 담긴 영화인 것이고. 물론 돈의 영혼이다. 설마 이 영화가 그렇게 까지 실패하겠어, 하는 의지가 담긴.

 

이번 영화도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본 영화다. 어라, 안야 테일러 조이는 눈에 확 들어오고. 엑스맨의 비스트 청년이 또 다른 영화로 돌아왔네. 알고보니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그 배우야? 그렇다. 이 즈음되면 영혼의 무게가 커져보이는, 도저히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영화인 것이다.

거기에 아메리칸 셰프마냥 음식 영화일줄만 알았는데.. 영화 티켓 구매 직전, 살짝 검색해본 영화의 장르는 또 스릴러다.

 

2022년, 어쩌면 그 마지막을 장식할 영화 관람 기록의 영화. 더 메뉴. 번역부터 정관사를 살려 담아낸 만큼, 쉽지 않다.

짧게 기록 남겨 보도록 분발해보자.

 

참, 필연적으로 스포일러가 많아진다. 쉽지 않은 서사, 그리고 스릴러 장르이니 만큼.

 

 

1. 요식업, 그 너머에 위치한 서비스업에 대한 고찰

유명한 부호가 7번도 아닌 무려 11번 방문했었던, 그 예약이 치열한 레스토랑에서, 과연 지난번, 그리고 그 앞전번에 무엇을 먹었을까.

그 정답은 아주 개같이 희귀한 가자미다.

대구가 아니고.

 

요식업, 음식점, 레스토랑, 그 본질은 알지 못하는 무수한 고객들에게, 그들이 익숙하다고 느끼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존중, 적어도 만족감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냥 맛있는 요리를 주면 되지 않나? 맛있다는 기준도 모호하고, 거기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기도 쉽지 않다. 치즈버거의 적정 가격은 9달러보다 크고 10달러보다 작은 그 어느 가격인데, 이게 스타 셰프가 직접 조리한 완벽한 치즈버거 및 프렌치 프라이 구성에 합당한 가격인가? 그럴 수 있지. 

 

영화를 보며 가장 몰입도를 끌어올려졌던 대목은 어디였을까.

그래도 음식을 기반으로 영화가 돌아가니, 요리 하나하나의 구성이 매혹적이었나? 아니면 셰프의 지휘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주방? 심지어 그 카리스마에 압도되는 레스토랑의 고객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매력적이었던 것은, 극 중 마고와 셰프의 대화였다. 아마도 성적인 산업에 종사한 듯한 마고에 대해, 어쨌든 서비스업이라고 존중하는 셰프. 그리고 동시에 잘 알지도 못하는 저 무지한 이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요리사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셰프의 모습을 공유하며 보이는 현대인의 피로함과 천재의 일면이 교차하는 부분이란.

 

마침내 마고가 잡아낸 셰프의 본질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들었고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가위로 아버지의 허벅다리를 찌르던 험난한 유년시절이 아닌, 치즈버거를 맛있게 만들어내던 종업원이었음은 아이러니하다. 아버지의 허벅다리를 찌르듯 가위가 꽂힌 오리 thigh 구이가 아닌 치즈버거를 만들고 제공하며 행복을 느낀 그 지점이라는게.

 

이게 아마 더 아일랜드 였는데. 가리비랑.. 얼려낸 채소였나. 돌은 돌이다.

 

각각의 메뉴들은 그 스토리나 내용물 또한 재미가 있었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셰프가 엄선한 재료가 아닌 그 서사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더 메스, 아마 난장판으로 번역되었던 요리. 요리 자체는 고기와 채소를 조화롭게 익혀내고, 무언가 골수도 익혀서 같이 곁들인 육류의 메인디쉬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서사는, 수셰프가 요리계의 현실에 현타가 와서, 셰프가 꾸며준 무대의 한복판에서 본인은 도저히 위대한 셰프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총으로 머리를 쏜 것이다. 그 모습도 무언가 구멍 뚫린 골 안에 담긴 골수를 연상 시키며, 이미지와 서사가 하나로 묶이는 기묘한 일치감을 안겨준다.

 

그 하나의 현장, 하나의 사건에서 요리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아니, 보다 풍부해지고 복잡해진다. 레서피를 고안해낸 셰프의 마지막 요리. 골수와 골이 뚫린 수셰프의 은유와 이미지. 사실 그 본질은, 셰프의 학대 아래 사람이 자살한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인당 1250 불에 달하는 시식회는 끝을 내고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말 연기인지, 소생이 가능한지, 본인이 위험하지 않은지 고민해야 했었지만.. 부유한 이들의 눈에는 이 또한 요리를 위한 하나의 연극일 뿐인 것 또한, 그렇기에 들어낸 의자로 셰프 대가리를 깨는게 아니라 강화 유리를 내리치는 지점이 기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정도면 동양인 스테레오 타입 아닌가. 지금 보니 스타워즈에서 본 헤어스타일 같기도 하고.

2. 치즈버거는 인정이지

이 결말이 명확한 다이닝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일 화났던 지점이 어디었나 다시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수셰프가 자살했을때? 본인들이 죽음의 직전에 놓였음을 알아차렸을때? 

개인적인 영화의 기억으로는, 빵이 나올줄 알았는데 없었을 때가 하나, 타코에 새겨진 기억이 고스란히 본인의 기억이었을 알았는데 노출되었을 때가 그 두 번째다. 

 

결국 내가 예상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저 한끼에 150 ~ 180만원을 태울 수 있는 부호들은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예상되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제언함으로서 기묘하게 식당은 차분함을 갖는다. 45초를 줄테니 도망치라는 대목은, 그 희극적인 모습의 정점에 다다른다.

 

아니, 장정 세명 정도 있으면 셰프를 붙잡고 인질극을 시도한다던지, 이번에야 말로 의자로 대가리를 깬다던지.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했을텐데. 혹은 한 곳에 뭉쳐 잠복해서 한명씩...은 너무 그런가. 인원 수가 차이 나긴 했네. 

이런 권위에 대한 기묘한 복종과 최적해 도출은, 극 중의 부유층들이 어떻게 남들을 통제하고, 또 스스로 부를 쟁취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위화감 없이 말을 따르지.

 

 

이 분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그 사람이라는게 또 믿기지 않는다. 박수 잘치시더라.

이 기묘한 대가리 깨기의 오류는 마고가 (왜 극 중 본명이 기억나지 않지) 마침내 결정적인 항의를 담아내며 닿게 된다.

니 음식이 개같이 맛이 없어서, 나는 아직도 매우 배가 고프니 음식이나 내와라.

그렇게 나오는 치즈버거 조리 장면은 솔직히 여느 요리 영화를 뺨치게 매혹적이다. 영화관에서 순간 패티가 익는 냄새와 치즈버거의 그 육즙이 느껴진다고 했을까. 심지어 더블 치즈버거였다. 아니, 주문은 치즈버거인데 생각해보니 더블패티인 것은 허용범위인가.

 

본인이 셰프로 불리길 바라는, 요리의 창조자에게 근원적인 항의를 던지는 이 대목은 어느 정도 예상도 되고 생각보다 그 결말이 허무하게 흘러감에도, 약간의 일렁임이 있다. 앞서 빵을 달라던 질문은 왜 무시되고, 지금의 치즈버거는 납득이 되었던 걸까. 왜 무수한 가게를 폐업 시킨 요리 비평가의 이멀전이 분리 되어있다는 말은 조소를 보내고 이 치즈버거는 허용된 질문으로 성심성의를 담아낸 치즈버거를 take away로 제공했던 것인가.

 

그것은 치즈버거가 맛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면서 배고파지긴 쉽지 않은데, 치즈버거 생각나더라.

물론 한입 먹고 배가 부르니 가지고 갈게요 포장해주세요는 좀 쉽지 않은 주문이긴 했다. 여기서 셰프가 참지 못하고 총을 꺼내서 얌전히 주는 대로 먹으라 소리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는데, 그렇게 넘어가는 순간 더 이상 셰프가 아니고 광기의 살인마가 되는 거니까. 빵이 없는 빵 플래터는 이미 고객을 크게 엿먹이는 행위였지만, 동시에 내가 먹을 응당의 빵을 달라는 말로는 설득되지 않은 장면은 다시 이 치즈버거에 두 쪽이나 사용된 번과 대비되며, 기억에서 무한한 치즈버거의 루프를 만들어 낸다. 

 

 

3. 영화가 거듭날수록 매혹되는건 기분탓인가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 2020) 은 안봤고, 라스트 나잇 인 소호(Last Night in Soho)로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시네 생각은 있었는데. 영화를 보며 셰프와 같은 시선에서 함께 매혹되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다른 배우의 면면과 연기도 매혹적이다. 랄프 파인즈가 박수를 칠 때마다, 그 울림과 주의를 끌어내는 일련의 동작이 영화의 관객의 주의 또한 함께 끌어낸다. 그 다음 인정과 애정 넘치는 눈빛으로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 마음의 겸허해지며 감사하게 요리를, 다시 요리를 그려낸 영화를 찬사담아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사이의 니콜라스 홀트는 너드한 과학자 역할만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이건 너무 괴이하게 나와서 영화가 영화다워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느낌이다. 니콜라스 홀트의 배역이 없었다면 아마 너무 다큐멘터리스러웠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의 감각. 지금 보니 매드맥스(Mad Max: Fury Road, 2015)의 눅스 역도 훌륭하게 맞았으니, 약간의 광증을 연기하는게 천직이 아닌가 싶긴 하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붉은 머리도, 극 초반에는 어딘가 어색하게 떠있는 느낌이었는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고 조명 톤이 낮아 지며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신기하네.

 

 

 

4. 결론.

구글에서 The menu cheeseburger를 검색해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파이브가이즈가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가는 명확하다.

치즈버거, 아니 모든 것을 넣은 그 버거는 매우 맛있기 때문이다.

포장도 잘해준다. 땅콩도 맛있다.

블랙, 레드, 전부 다. 세 가지 마법의 옵션만 기억해두자.

사실 이 영화는 치즈버거의 강렬한 이미지를 관객의 마음에 아로 새기고 180만원은 대략 120 치즈버거 세트임을 알고 겸허하게 치즈버거나 먹어라, 혹은 위대한 셰프의 근본은 최고의 치즈버거 부터 시작된다를 말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이 쇼를 탈출하고 싶었던 것은 유일하게 예일이었는지, 이제 본명도 기억나지 않을 마고 뿐이었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 한 끼에 180만원 태우는 것이나, 그 셰프가 연출하는 죽음의 결말에 함께하는 것이나 비슷한 레벨의 광기구나 생각해둬야겠다.

 

이렇게 한참 영화를 본 기억을 담아내고 나면 글로 정리해두자니 한편으로 우울해지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극 중의 셰프가 만들어낸 한 접시, 접시 사이의 간극과 서사는 사실 영화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걸까?

결국 비평이나 개인 후기를 담아내거나, 그 모든 행위는 전혀 알지 못하는 무한한 관객들을 끝도 없이 만족시켜야하는 창작가들의 고통을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일이지 않을까, 싶은.

 

물론 요리는 클레임이라도 걸 수 있지, 영화는 또 쉽지 않네.

니 요리가 개같이 맛없으니 치즈버거 달라는 말은 설득될 수 있어도, 니 영화가 개같이 재미없었으니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틀어줘 같은 말은 설득력이 없잖아. 심지어 얘는 포장도 안된다. 나중에 집에서 보는 버전을 재구매하세요지. 정말 쉽지 않은 시장이네.

아니 조리예 사진을 안담고 성분표만 보여주는건 뭐야. 그래도 그리운 맛이다.

 

평점은 7점과 8점 사이의 7점 정도로 기억에 남겨둔다.

극의 결말이 셰프의 권위, 통제 받는 상황에 도전하는 장면은 재미있게 읽혔지만 너무 허술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없지는 않다.

영화 포스터만 보고는 사실 요리에 담긴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흥미로운 남녀주인공 이야기를 생각도 했는데 (갑자기 마약성 재료라던지) 사실 그런 이야기보다는 훨씬 몰입감 있게 봤다. 너무 한국식 스릴러에 익숙해진걸까. 어딘가 비밀을 파헤쳐야할 것 같잖아.

서사의 필연적인 인과를 추적해내는 영화들 보다는, 이렇듯 하나의 사건만을 담아내는 영화가 좀 더 여운도 남고 영화관에서 관람하기에 좀 더 가치있지 않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영화를 만약 하나의 이야기책으로 담았다면, 서사집으로 담아냈다면 이만큼의 무게감이 있었을까? 모를 일이네. 

 

왜 한국에서 지금 많이 상영안하지 싶었다만, 미국에서 11월 중순 개봉이었으니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한동안 영화를 관심있게 쫓지 않아서 막차 타고 본건가 싶기도 하고.

치즈버거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