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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리뷰

Traby 2022. 11. 9. 01:41

 

0. 들어가며

 

7 / 10

중 2병으로 짚어내는 중년의 삶과 고민인데 매우 쉽지 않은

 

영화관을 한동안 찾지 않은 것은, 블랙팬서가 11월 9일에 개봉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찾아서 볼만한 영화보다는, OTT를 통해 플레이리스트 마냥 음원 재생 시켜놓고 번쩍번쩍 화면으로 내 방 한 쪽 면을 수놓을 그런 영화들 뿐이지 않은가 하는 회의감에서 앞선 행동이 기인했다.

물론 영화 두 편 볼바에야, 저가 위스키 한 병을 사거나 그럴듯한 와인 한병을 사서 뱅쇼나 하이볼로 즐기는 것이 훨씬 심적으로 만족감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영화관람도 팝콘이며 음료수 가격 다 따지고 나니, 그냥 위스키 한 병이 뚝딱이었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인가? 그렇지 않다.

가격으로 따지기보다, 실질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특히나 영화나 책과 같은 것은, 기존에 알고 있지 못하던, 그 무언가의 외연을 넓히던 계기 아닌가.

 

그런 뻘생각과 영화와 내가 멀어지는 이유는 불과 3년만에 가격이 두 배로 올라서인가, 그래서 내가 김밥도 안먹나 하는 고민의 끝에 만나버렸다. 양자경, 그리고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짧게 기록 남겨본다.

다시보니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싶은 그런 대목

1. 여긴 한국이고, 쌍수 무기는 분노 전사와 악마사냥꾼만 허용된다 이 녀석들아

 

그렇다. 가뜩이나 쌍수 무기에 대한 혐오론과 외면이 깊이 자리하는 시대다.

물론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 하지 않은 입장에서, 내가 가진 쌍수 무기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은 깊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와우(World of Warcraft)를 놓고 생각해보면, 쌍수 무기란 모든 걸 버리고 극한의 딜링을 꽂아넣는, 그런 직군에게 어울리지 않는가?

어라 선생님, 도적은 쌍수무기밖에 없는데요? 우리는 도닥붕의 시대에 아직 멈춰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도적은 닥치고 붕대라더니, 양손에 무기끼고 깔짝깔짝 유틸과 딜을 날리는 녀석들은 알아서 상처 치료하라는 관습의 시대. 이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모습이다. 분노전사는 그 우람함 때문에 힐이라도 받고, 악마사냥꾼은 알아서 잘 썰고 다니잖아. 

 

이 쌍수무기론을 쓰고보니 이 영화의 쌍수 무기도 합당했다. 아니 무기인가? 무기네.

이 영화에서 쌍수 무기는 크게 두 씬에서 드러난다. 극 중 스테파니 수가 왼손에 큰 딜도 오른손에 큰 딜도를 들고 휘두르며 양자경과 주변의 경찰을 해치우는 장면, 그리고 양자경이 각각의 하수인과 대치하며 남성1과 남성2의 항문에 꽂힌 트로피를 뽑아내며 해치우는 장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보면서 식겁하고 쓰면서 다시 식겁했지만, 용케 한국에서 15세 관람가로 그쳤구나 하는 감탄이 먼저 그 식겁함의 공허함을 채워나갔다. 연이어 이러한 씬의 시나리오를 읽고서도 따라붙은 배우, 그리고 특유의 템포로 연출을 마무리 지은 감독의 역량에 일련의 감동이 일었다. 각각의 B급 영화도 B급 나름의 철학이 있다지만, 이 배우님들 모셔서 이걸 이렇게 하다니. 특히 세무 공무원 할머님 배우는 누구신가 했더니 할로윈 시리즈의 바로 그분이었다. 이야. 그런데 플라잉 니킥을 날려? 제이슨 마스크도 쪼개졌겠다.

 

이 씬에서도 일련의 병맛이 느껴지지 않는가. 뱅헤어와 기나긴 손가락. 사실 이 손가락도 외설적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외설적인 도구들의 쌍수무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경쾌한 소림풍 격투씬이 섞여들자, 지난 마블 영화 샹치가 어떻게 할리우드 감독들 - 아니, 할리우드의 투자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는지 새삼 다시 보이는 대목이었다. 기존에야 옛 홍콩 영화스러운 격투 장면을 넣고 싶다 한들 왜 넣어야하지, 넣어도 얼마나 팔리겠어 하는 관점으로들 봤겠지만, 마블의 다음 스테이지를 이끌 히어로 영화에 반영되며 재무적인 영감을 주자 감독보다도 투자자들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킨게 아닐까. 그렇기에 이 영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보다 증폭되는 것이다. 메세지 뿐 아니라 상업적인 면모에서. 

 

고로, 이 쌍수 무기는 B급, 무술 영화, 홍콩, 양자경, 마블, 공포영화, 할로윈 등등의 그 모든 접점을 담아낸 거룩한 쌍수 무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던전앤파이터의 웨폰 마스터도 한손엔 실물검, 다른 손엔 광선검이잖아. 그런 것이다. 양손 모두에 실물 검을 들면, 그 서사가 약해지는 법이다. 한손에는 실제 검, 다른 손에는 크큭, 흑염룡을 마법으로 검처럼 다룬다 정도는 되어야 그 시대를 관통하는 주인공이 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기사 쌍수무기도 인정하지 못하지마는, 이 정도의 역사가 아닌 서사를 쌓아낸 쌍수 무기는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그 뒤에 사회적 맥락을 덧붙인 무언가

양자경 배우도 멋있었지만, 장면마다 무게감을 다르게 가져가는 키 호이 콴도 대단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담아내는 시각과 편린은 쉽지 않다.

동양인, 그 중 중국인이 미국에 이민 직후 그들의 자녀인 이민 2세대와 충돌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민 1세대에 대한 기존 사회의 편견, 2세대가 정작 더 뛰어난 영어 능력을 보이며 사회에 적응하며 기묘하게 틀어지는 세대간의 갈등. 

그런데 이민 2세대도 막상 사회 주류층으로 편입되기에는 머나먼 현실까지.

이민 1세대의 업종인 세탁소도, 이제는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남을만큼 익숙한 직종이다.

세탁소라니. 한국인 이민 1세대가 줄곧 열던게 세탁소 아니던가. 미국에 세탁소? 하면 한국인이다! 하던게 엊그제 칼럼에서 본 것 같은데.

 

이런 부모 세대의 이민 정착 이야기가 자녀와의 갈등, 다시 그들의 부모인 할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이 켭켭이 쌓이며 이 영화는 허무주의와 만물의 베이글로 희화화한 asian-american의 SOS 신호를 성실히 담아내고야 말았다. 그것도 코로나 직후의 아시아인 혐오 시대에. 이야.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가, 공허함 그 너머에 무언가 있나. 어찌보면 중2병으로 치부될 법한 메세지지만, 이민 2세대의 시각이 덧씌워지며 이 메세지는 보다 깊어진다. 아무리 나이 먹고 사회에 투입될 시점이 되더라도, 근본적으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질문은 쉬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앞선 질문들에 살짝 거리륻 둔 뒤, 이 영화가 정직하게 그들은 그럼에도 미국인이지 않는가? 이 영화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영화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랬으면 좀 더 현실적으로(?) 미국인 특수부대가 투입되고 당신들은 미국 시민이고, 우리가 지킨다 하는 메세지를 던졌겠지. 이 영화는 그보다 조금 더, 중국 출신 미국인에 대한 편견을 완만하게 짚어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들이 겪었던 난관들을 짚어낸다. 가뜩이나 한국인이 한국어로 세무 이야기를 들어도 복잡한 마당에, 이민 직후 외국어로 듣는 세무 이야기는 어떻겠어. 

 

그렇기에 그 대안으로서, 가족의 의미, 부모의 희생, 부모가 자식에게 가질 수 있는 동질감들을 순차적으로 언급하며 결국은 가족이 정답이다..하는 대목으로 서사는 이끌어지지만. 이민 1세대가 건너간지도 한참 지난 지금, 미국 사회의 편린을 짚어냈다 정도로만 기록 남긴다.

이 영화는 그 서사의 독창성은 낮게 평가 받을 수 있을 지언정, 표현하는 방식이 대단했던 영화니까. 쌍수 무기와 짱구는 못말려라니. 세상에.

 

3. 결론.

이건 약한 수준이었다.

다시 돌이켜 봐도 메세지는 평이하다.

이민 1.5세대까지의 중년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민 한다고 고생 더 많으셨고, 기회비용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도 그만큼 컸을 겁니다.

그 자녀분들, 쉽지 않으셨겠네요.

그러나 가족끼리 으쌰으쌰 해야죠. 등등.

 

흔한 한국 신파, 혹은 그 여느 나라의 중년의 고충, 가장의 고충을 다듬는 영화도 이 정도의 메세지는 던질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서사 중에 쌍수 무기, 퀴어, 이민, 유색인종 등등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녹여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본작은 그 녹여내고 다시 묶어내는 과정 속에, B급 정서를 심지에 박아두며 완곡히 읽히도록 벼려냈다.

 

특히 그 심지, 본작의 축 중 하나는 홍콩 무술영화 향의 템포가 아닐까. 이 격투씬들이 주요 시점에 가미되며 영화는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독창성을 지니게 되었다.

다 보고나니, 왜 초기에 성룡을 섭외하려 고민했다 했는지 알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에 양조위가 다시 나왔으면 또 다른 감각이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럼 본작 극중의 웨이먼드 처럼 처량한 느낌이 나긴 쉽지 않았겠네. 

 

친숙한 신파의 반복, 그러나 재해석과 변주에서 예상을 벗어난 영화.

본작은 7점 정도로 기억에 남긴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구성하고 서사를 쌓아가는 걸 더 중요하게 보는 시각에서, 어딘가 공허함의 정점인 베이글에서 답안이 모녀의 눈물 상봉인 것은 다소 아쉽다. 이럴거면 그냥 블랙홀 소환했을 때 순간 멸망했어야지.

 

그래도 멀티버스 개념을 유쾌하고 유용하게 풀어나간 것은 감독의 상상력이 뛰어났다고 봐야하지 않나 싶긴하다. 그와중에 파리를 코로 들이키거나, 오줌을 지리거나, 항문에 트로피를 꽂거나 하는 것은 한국 내에서는 너스레 떨기 힘든 발상이 아니었나 생각든다. 아, 라따구리 번역은 좋았네.

 

 

영화 촬영 와중의 배우들의 행복감이 어느정도 밀려드는 영화였다.

이런 영화가 군데군데 촬영되고 또 관객들에게 와닿아야, 감독들의 복잡하고 자유분방한 사고가 실질로 만들어져서 와닿을 수 있는게 아닐까. 창작 문화에 어느정도 자본이 지배하던 시점에서, 다소의 여지를 남겨준 영화로 기억남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