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by 2021. 10. 28. 00:49

0. 들어가며

우주향 한 스푼 가미된 홍차향 왕자 이야기

6 / 10



아직도 그 일렁임을 잊지 못한다.
저 건너편의 우주 끝자락에서 별들의 전쟁이 처참히 터져나갈 무렵, 그래도 우리에게는 미처 완성치 못한 불후의 명작이 남아 있다는 그 일렁임을. 책으로서의 듄을 접할 나이는 차마 되지 못했지만, 영화로서의 듄은 그렇게 일렁이는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듄이 온다고, 듄이 곧 다가온다고.

그 믿음에서 살짝 빗겨나간 맹신은,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를 볼 즈음 완성되었다. 아니, 그래서 듄이 언제 나온다고? 분명 드니 빌뇌브와 티모시 샬라메 소리를 들었는데? 물론 그 시기, 다시 말해 19년도 말에서 2020년의 초입에 이를 때까지만해도,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어딘가 친숙한 감독의 이름과 주연배우의 이름. 그리고 우주적 SF라는 타이틀. 그 정도의 단서만으로 스타워즈의 악몽에서 벗어나 머무를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마주해 개봉 연기 입니다를 몇 번 보고서야, 드디어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짧게 기록을 남겨보자. 볼 때는 흥미진진했던 것 같은데, 어째 글을 쓰려다 보니 쓴 맛만 감도는데 말이지.

1. 다소 식상한 소명에 대한 고찰

스타워즈의 카일로 렌이 떠오르는건 기분탓일까

짧게는, 주인공인 폴이 정쟁으로 인한 상속자에서 예지력을 갖춘 메시아로 거듭나는 과정이 눈에 닿았다.
흔히들 영웅이나 예언자, 선지자는 초월적인 시점으로 나는 세상을 구해야겠다 하는 사명감을 연상하곤 한다. 적어도 본작의 폴은, 그 뛰어난 역량과 예언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내려 노력한다. 당장의 생존의 문제에 쫓기고 어머니를 보호하며 자신의 예지몽을 쫓아 다음 행보를 결정해나가는 모습들, 그 와중에 날 괴물로 만들었다며 절규하는 모습들이 선지자들의 인간적인 내면은 이렇지 않을까 그려냈다고 해야할까. 물론 이제는 식상한 대사지만, 소명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도 짧게 기억에 남는다.

엄밀히 말해 그 소명에 대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힘을 보면 다소 공허해지는 대목이다. 본인이 소명을 거부해도 남들이 찾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던가. 진짜 압도적이고 차이가 뚜렷한 재능이 주어졌을 때,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근육이 얇고 허약해보여도, 사막 부족 프레멘의 최고의 전사를 세 차례 제압하고 즉살할 수 있는 천부적인 감각, 여기에 목소리로 타인의 행동을 조작 가능하고 뛰어난 예지력을 갖추었는데.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수장으로 소명감을 논하기에 앞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를 먼저 말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덜익은 듯한 감각은 남는다. 예수야 인간의 몸으로 신의 뜻을 되물어가며 고행길을 걸었다지만, 폴의 고민에는 소명이나 사명에 대한 고민이 아닌 능력에 대한 의심만 공허하게 멤돈다. 하다 못해 옆옆동네 네오, 레이 등등. 모두 평범함에서 능력을 개화하며 소명의식을 얻어가는데 말야. 나는 위대한 운명인데 내 능력을 믿어도 되나, 하는 의문은 고고하다 못해 거만해 보이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2. 사막과 강습전을 비롯, 인상깊은 시각적 요소들

사막의 모래의 움직임과 스파이스의 반짝임까지. 사막을 다채롭게 묘사한 영화로는 기억될만하다.


주인공을 잠시 떼어놓고 보면, 영화에는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요소가 적당한 빈도로 배치되어 있었다.
앞서 다른 영화며 컨텐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더니, 여러모로 다시보이는 모습들이 있었는데. 작게는 모래폭풍에서 탈출하는 장면은 매트릭스 3편의 구름을 탈출해 추락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그 중력을 타고 거대한 비행체와 함께 떨어지는 감각이란. 그리고 거대한 모래벌레는 듄에서 처음 묘사된게 워낙에 유명하다보니 이렇게 다시보니 또 새로웠다. 그 크기의 묘사도 압도적이기도 하거니와, 유사에 대한 해석도 인상깊었달까. 벌레 자체에 삼켜지는 것만 조심하면 될줄알았더니, 지나가며 생기는 모래의 흐름에 잠길 줄이야.

특히 기지의 강습전은 와, 이게 스타워즈 시퀄에서 바란 그 대목인데 싶을 정도의 강렬한 기억이었다. 개인 단위로는 쉴드를 뚫기 위해 칼을 이용해 완급 조절을 하거나, 초소형 드론과 같은 암살 기구를 이용하는 대목에서 상상력이 구체화 되었구나 싶었지만. 기지 단위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로 확장되자 추진 장치가 달린 대형 폭뢰를 떨어뜨린다는게. 이야. 이거지. 쉴드가 있어? 빔 사이즈를 키워! 하는 닫힌 상상력의 옆동네에서 시야가 대뜸 넓어진 듯한 장면이었다. 여기에 더해 백병전과 그를 위한 대형을 이루는 대규모 강습전까지. 두 작품을 모두 찍은 오스카 아이작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묻고 싶어졌다. 어떤 영화의 전투가 좀 더 매혹적이었을까, 배우의 시각에선.

3. 사막 출신 푸른 눈의 그녀... 제국 출신 아버지를 잃은 상속남.. 어라 이거..


이 영화의 요소들이 연상시키는 대상에 대해 조금 더 기록 남겨본다.
황량한 사막 태생의 푸른 눈이 번쩍이는 여주인공, 그리고 도시적인 느낌의 아버지를 막 잃은 검은 옷의 남주인공. 이는 그렇다. 푸른 눈의 백룡.. 이 아니라 스타워즈의 그 분들을 여실히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건 아니겠지.

사실 푸른 눈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니, 푸른 광선검이라고 하자.

물론 영향을 받은 순서를 따지면, 그 역이 맞지 않을까 싶긴 하다. 듄의 원작과 첫 영화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고, 시기적으로도 스타워즈보다 앞서 있다고 기억한다. 거기에 더해 최근의 작품들인 스타워즈 시퀄은 팬픽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보니. 팬픽을 구성하며 듄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추론은 아닐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폴이 본인이 정복전쟁을 일으킨 본인의 미래를 예견한 대목에 이르자, 카일로 렌이 자연스레 겹쳐보였다. 카일로 렌이 시스 황제로서의 본인의 비전을 레이에게 어필했을 때, 스스로도 이런 모습을 그리지 않았을까. 사실 둘 다 칼가지고 싸움도 잘하고 미래도 내다보고. 목소리로 통제하던 포스로 목을 조르던 큰 차이는 없겠지 싶기도 하고.

킬리언 머피인 줄 알았다.

4. 결론.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던 작품이다.
영화 보기 전 나무위키를 둘러보니, 과거 듄의 영화화를 준비하던 이들이 끝내 이탈 후 다른 영화를 찍으며 재능을 개화했다는 말도 있더라. 그렇다면 시각적인 요소들이 겹쳐보이는 것도, 당연한 맥락 아닐까.
이는 한편으로는 이 영화만이 갖출 수 있던 특색이 이미 다른 영화에서 먼저 드러났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영화와 이야기가 갖는 고유한 색채가 옅고 익숙해 보일 수 있음을 내포한다. 분명 이야기 자체로는 한 시대를 연 작품임에도, 영화로 다시 거듭난 시기가 모호하여 새로워 보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구세주의 각성을 생각한다면, 그 대표격인 이 아저씨도 4편을 부던히 준비중이시다.


이 지점에서, 듄(2021)이 갖는 단점은 명확히 드러난다.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아무리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려 해도, 듄 시리즈, 그 첫 단추인 이 영화는 망명중인 왕자. 혹은 망명중인 선지자의 이야기로 고착화 될 뿐이다. 그래도 좀 차이가 있다면 행성 강습 / 기지 강습 전 만큼은 상상력이 돋보였다는 정도 아닐까.

이 아쉬움에 더해 사막의 힘이지! 하는 빈약한 대사는 제이슨 모모아의 불안한 시선과 마주하며 어라 이거 DC발 대사 아닌가 싶은 불안함 마저 안겨주었다. 은밀함과 기밀함은 프레멘의 강점이지 라던지, 사막의 힘은 모레벌레와 같은 기다림과 인내, 이후 단숨에 집어삼키는 면모에서 드러나지 라던지 세심한 묘사와 강조가 가능했을 텐데. 아트레이데스의 공군과 해군력에 더해 사막의 힘을 얻고자 한다만 부엉이처럼 반복하니, 그 왕자에게 단숨에 나가떨어지는 사막 전사를 보며 허탈감만 더해졌다. 아니, 굳이 이런 힘을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는 걸까. 분명 앞선 까지는 왕좌의 게임을 뺨치는 정쟁이 나오나 싶었지만, 사막의 힘 대사와 챠니에 관한 꿈이 나올 때마다 김이 새고 영화 흐름이 끊기는 감각이었다.

배우는 좋아하건만... 이 영화의 러닝타임 내에서 이렇게 자주? 싶었다. 


왕좌의 게임 초반 시즌과 스타워즈 시퀄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영화, 듄은 6점 정도로 먼저 매듭짓는다.
반지의 제왕 1편이 미래를 위한 포석을 놓았듯, 이 영화도 그 정도의 감각으로 도움닫기가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이 영화만으로는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약간의 불안감과 아쉬움이 남는다.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여러모로 혼란함이 남는다. 이렇게 다들 원작을 찾아 보게 되는걸까. 그리고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 사고관이 1960년대의 SF를 빙자하여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위험할거 같은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