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by 2021. 7. 27. 01:38

 

 

 

와 포스터가 더 무섭네

 

0. 들어가며

 

5 / 10 

 

 

혼종! 파괴! 망각!

 

모처럼 영화관으로 나선 이유는, 그 기묘한 쟁점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곡성(The Wailing, 2016)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며 한껏 바람을 불어 넣은 것도 있었고. 이 영화의 감독 또한 저 공포 영화의 명가 태국 감독 아니던가. 지금의 90년대생들이야, 다들 공감하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험 끝나거나 해가 넘어갈 무렵.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몰래 틀어 보는 그 묘미. 그렇게 쟁쟁한 공포영화들이야 샴, 셔터 등등의 영화가 있더랬지. 물론 영화 검색을 하면 무서워지니 인용은 생략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공포영화의 황금기 아니었을까. 한국에서도 장화홍련을 비롯한 공포영화와 맞물려, 다음에서 웹툰의 시조격인 강풀 작가가 공포웹툰 연작을 이어갈 때는 옹기종기 또 모여보고, 웹툰 원작 공포영화가 나왔다며 또 옹기종기 영화관 가고 했으니 말야. 또 기억속의 영화 라인업도 쟁쟁하다. 링이나 주온은 까마득하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 정도야, 우리세대의 공포영화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인시디어스와 같은 작품도 있었고 말야. 그 와중에는 다소의 괴작인 그루지, 드래그미투헬 같은 영화도 있었더랬지.

물론 영화의 정식 제목과 개봉연도는 생략한다. 무섭잖아. 포스터보면.

 

나이가 먹어감에 공포영화를 덜 찾게 되었다만,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그 영화들에 대한 다소의 동경이랄까. 묘한 감각이 남아있다. 이야, 그 영화들 참 묘하게 포인트를 잘 잡았더랬지. 마치 고향집에 내려가 자주 찾던 국밥을 먹을 때의 그 감각이랄까. 이야, 이 집 김치 여전하네. 딱 그 정도의 감각. 

 

 

그런 시절을 거치고 이 영화를 바라보니, 무언가 마음이 혼란한 감이 있다.

직관적으로는, 어디선가 본 구도와 연출을 얽어낸 향이 강하다. 물론 하늘 아래 순수한 창작물은 없을 것이고, 태국 특유의 문화를 그대로 녹여낸 이미지는 인상 깊지만, 딱 거기까지 인게 아닌가, 싶다.

다소 혼란한 연출 기법에, 종반부 상업성을 급하게 덧칠한 듯한 어색함까지. 기대가 컸던 만큼,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고 할까.

와, 이 먼 나라에서 한국 국밥을 수입해 재현 해냈다고? 하고 설레서 들어갔더니. 치즈 가루와 라임 즙이 들어간 국밥을 먹는 이 오묘한 감각. 설렁탕 빛깔의 똠얌꿍을 먹는 이 오묘함. 시큼하고 익숙한 맛은 나는데, 생각하던 그 맛이 아니라 이거지. 

 

짧게 기록 남겨본다.

 

 

1. 파라노말 액티비티, 유전, 곤지암 한 티스푼씩.

 

무서우니까 사진은 조금씩만 남겨본다. 

 

영화는 유전의 감각으로 시작해서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짧게 찍더니, 곤지암으로 마무리하며 끝난다.

다만 이 장르적 특이성은, 다큐멘터리임을 강조해가며 보다 강하게 단점으로 부각된다.

 

먼저 저주받은 가계와 영매의 집안은, 유전의 향수를 얼핏 드러낸다. 강인한 악령의 빙의와 그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까지. 앞단의 서사적 구조는 유전의 향수를 강하게 불러온다. 물론 그 빙의의 대상이 선하다고 믿는 신과, 악마숭배의 대상인 악신임에는 차이가 있긴해도 말야.

 

그렇기에 초반의 느릿느릿 조여오는 빙의에 대한 불안감, 신내림에 대한 암시는 더욱 더 끈적하게 감겨오는 느낌이다. 악령의 영향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고 기억을 잃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밍을 보여주며, 유전에서 파이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 가계의 모습이 쉬이 연상된다고 할까.

 

여기서 영화의 몰입도를 가장 끌어올리는 방안은, 역설적으로 그 연출 기법이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자의 시점으로 넘어와,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접목시켜 참여하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중계해준다. 중간중간 랑종인 닝과의 대담을 통해, 같은 장면을 되새겨주며 괴이감을 강조하고, 또 전문적인 영매의 주석을 달아주며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니. 태국 여느 마을의 문화와 더불어 생생한 괴담을 듣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각 공포영화의 핵심이 되었던 연출 방법이 오마주 된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에서 상징적으로 전달되는 카메라 설치와 관측. 곤지암, 또는 그레이브 인카운터를 떠오르게 하는 야간 투시 화면과 귀신과의 추격전. 다양한 연출기법이 덧그려지며 곳곳에 흥미 요소는 배치되었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2. 상업적인 안배가 엿보였던 패치워크

 

그래도 사진만 보면 무서우니 감독으로 대체한다. 열심이시네.

이 지점, 그러니까 님이 갑자기 죽는 시점에서 영화는 급격히 그 힘을 잃어간다.

앞서 랑종에 대해, 랑종이 모시는 신과 그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관객을 이끌어주던 님이 죽어버린 것이다.

왜 죽어야 했는가? 서사를 위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파운드 푸티지라는 장르적 특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파운드 푸티지, 다시말해 어느 촬영자의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본을 습득하였다고 주장하는 영화의 이 장르는, 근본적으로 촬영자가 죽었거나 이 영상물을 유실했다. 왜 그랬냐, 다급하게 생사를 걸고 쫓기는 상황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뛰어다니며, 아마추어가 직접 담아낸 현실감 있는 영상이라는 감각, 그리고 추격전의 생동감을 안겨주며, 공포영화에서 하나의 장르로 정착할 수 있었다.

 

이 앞선 다큐멘터리의 정적인 구성은, 님과의 대화로 완급조절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 필사의 추격전, 마지막 연속 촬영본을 찍어야 하는데, 님이 왜 남아있어야 하겠어. 다른 영매로도 극의 전개는 충분할 터인데.

그렇게 님이 소모되며 극의 분위기는 극적으로 바뀐다. 하루 건너 바로 퇴마 의식을 시작하며, 영화는 파라노말 액티비티에서 그레이브 인카운터로 바로 바뀌니까.

 

이 전환점 이후로는, 점프 스케어는 있으나 다소 조잡한 무언가가 이어진다. 온갖 잡귀가 들리자 사족 보행을 하며 서로 물어뜯는 사제들. 그렇게 뛰어드는 모습은 곡성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만은, 굳이 저렇게 우루루 몰려 다니며 뜯는게 K-좀비를 연상시키는 것은 과도한 국뽕이었을까? 촬영자의 내장을 선선히 드러내는 장면은, 굳이 저렇게 넣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어설프다. 

 

결국 이 공포 영화 연출기법의 실험적인 대통합은, 파괴적인 시너지를 그려내며 끝이 난다. 뭔가 망했어! 하는 결말인건 알겠는데. 파운드 푸티지인 것도 알겠고 하겠는데 말야. 그 초반부의 무게감있는 랑종 설명은 어디로 갔나 싶은 느낌. 님이 죽기 전과 후의 영화가 극명히 달라지며, 뒤의 반절은 외압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이봐요, 그래도 공포영환데, 좀 잘팔리는거 필요하지 않겠어요? 좀 좀비스럽게 물어뜯고 잔인한 장면도 넣고 그렇게 가시죠. 하는 대화가 배경에 들려오는 건 기분탓일까.

 

그 무수한 패치워크 사이에서, 곡성의 향이 덜한 것은 약간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부도 와서 퇴마하고 경쟁했으며는 흥미진진했을텐데 말야. 

 

3. 결론.

 

잘 마무리 되었다면 성공적인 혼합이었겠지만,

그래도 새로움은 없는 영화라 생각한다.

 

유전의 불쾌한 끈적임을 끝까지 가져오지도 못했고, 그레이브 인카운터나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같이 장르적 특이성을 끝까지 안고가지도 못했으니. 적절히 혼합하여 만족합시다, 하는 영화로 남아 그 정도 수식어로 기억 한 쪽에 자리잡지 싶다.

 

곡성과 비교한다면? 무당이라는 소재가 겹칠 뿐, 꿈보다 해몽이 앞선다고 생각한다. 곡성은 관객도 속여먹으려고 이 악물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진 못하다.

 

개봉 이후 한참 뒤에 보아서, 무섭지 않은 영화, 불편한 영화, 주연 배우가 아름다운 영화, 뜬금 맞는 성관계 묘사등으로 언급되길래 무엇인가 싶었는데. 그럭저럭 앞선 논점들에 공감이 간다. 컨저링 1편이 귀신 없이 무서운 영화로 강하게 마케팅 했던 것을 생각하면, 시사점이 다소 벗어난 것이 가슴 아프다.

 

평점은 5점으로 매듭 짓는다. 

막상 영화관에서 볼 때는 절반 정도까지는 재미있게 보았지만, 결말로 나아갈 수록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느낌에 좌절감이 컸다. 그리고 작게는, 청소년 관람불가로 나온게 아쉽다. 다음 세대에도, 내 유년 만큼 공포영화에 대해 어딘가 뭉근한 향수가 남았다면 좋았겠거니 싶었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들로 인해 나이가 그어져버린 느낌이다. 요새도 샴이나 셔터, 가발, 이런 영화를 옹기종기 모여볼까. 문득 궁금해진다.